가을이 깊어 감나무에 빨간 감이 탐스럽게 달려 있다. 사과 다음으로 감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감을 많이 먹고 자란 탓일 게다. 본가와 외가에는 집안과 밭두렁에 감나무가 많았다.
할아버지는 가을이면 삼촌들이 따온 감으로 제사 지낼 곶감을 만들어 말리고 나머지는 계란 엮듯이 짚으로 싸서 볏가리 속에 넣어 둔다. 그러면 살얼음이 살짝 얼어 겨우내 맛있는 홍시를 먹을 수 있었다. 따다가 흠집이 생긴 것과 작은 감들은 썰어 말려서 감말랭이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 역시 맛있었다.
감을 한 박스 주문해 택배를 받고도 시간이 없어 처리를 못하고 현관 입구에 놓아두었다. 덕분에 벌레까지 덤으로 따라와 깊은 밤 물 마시러 나왔더니 거실에 시커먼 큰 벌레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잠자는 가족들이 놀라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일어났다. 범인이 벌레라는 것을 알고 불청객을 잡느라 쌩 난리를 쳤다.
4~5센티 정도 되는데 너무 커서 처음에는 지네인 줄 알고 어찌나 놀랐던지 허겁지겁 벌레를 잡아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던져 버렸다. 놀란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하고 이리저리 벌레를 찾는데 저쪽에서 또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놀라 새벽에 온 집안의 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켜놓고 벌레를 잡느라고 초긴장 상태로 전투준비를 했다. 어디서 이렇게 끔찍하고 커다란 벌레가 뜬금없이 나왔을까 생각하니 감 박스가 범인임을 알았다.
벌레는 두 마리가 전부였고, 그 뒤로 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벌레도 진화를 하는지 토종은 다 어디 가고 신종인지 변종인지 너무나 끔찍해 알 수가 없다. 가끔 시골에서 보내온 박스에 벌레가 무임승차해 따라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징그럽고 큰 벌레는 처음이다. 흙에서만 살던 벌레가 미끄러운 거실 바닥에서 흙을 찾아 기어 다니다가 사람 눈에 띄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콘크리트 공간에 흙이 있을 리 만무하고 고향을 떠나와 숨 돌린 틈도 없이 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사람 손에 의해 저세상으로 간 것이다.
이처럼 동물과 벌레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안전하다.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면 불의의 사고와 직면하게 되고, 그 사고는 유동적이라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하다. 오직 본능에 의해서만 대처할 수 있고, 때론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셨다. 곤충이든 짐승이든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개미 한 마리도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치셨다. 길을 가다 곤충이 지나가면 일부러 밟지 말고 피해서 가라고 했다. 길이란 인간에게만 허락된 길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식물인 꽃과 나무도 함부로 꺾지 말라고 하셨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길 때가 있는데 그것은 집안에 돌아다니는 벌레를 도저히 용납이 안 돼 인정사정없이 박멸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벌레와의 공생은 생각할 수도 없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비싼 차비내고 트럭 타고 먼 길 온 벌레를 환영은커녕 냅다 잡아 죽음 속으로 던져버렸다. 혐오스럽고 징그럽다는 본능적 느낌 때문에. 살생할 생각은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살생한 죄로 벌레에게 애도를 표한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징그러운 벌레 말고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하여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