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구

by 루아 조인순 작가

운동할 때 이웃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가 멍구라는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시츄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예전엔 주택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이웃에게 민폐를 주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크고 작고를 떠나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 울리면 머리가 흔들거렸기 때문이다. 개에게 "엄마다. 아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개를 낳았다는 건지? 이게 뭔 개소리? 개는 개일 뿐인데 주인님이지 엄마 아빠는 또 뭐야?’ 이런 생각을 했다. 개 키울 돈 있으면 결식아동들이나 도와주지 뭐하는 짓인가 속으로 경멸하며 왜 사람과 친하지 못하고 개일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멍구를 보면 더욱 그랬다. 몇 년 전부터 녀석이 나에게 알은체를 한다. 안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보다 낫다. 운동 중에 마주치게 되면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이름 한 번 불러주고 지나갔다. 그렇다고 그 녀석이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몇 년간 지켜봤는데 예의도 바르고 사회성도 뛰어나 잘 짖지도 않고 까다롭지도 않다.


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포근해지니 멍구가 주인을 따라 운동을 나왔다. 겨울 동안 추워서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녀석이 알아보고 지나가다 가까이 와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한다. 나도 운동을 멈추고 쓰다듬어 주고 "잘 지냈느냐 오랜만이다" 인사를 했다. 이웃에 살면서 몇 년 동안 마주쳐도 눈인사도 안 했는데 녀석 덕분에 주인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나 짐승은 모두 그 주인을 닮는 법이라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 사나우면 그 주인 또한 사납다고 하셨다.


현대사회는 집을 지키는 개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기에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라 한다. 이해가 간다. 인생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면 삶을 함께하는 반려견이라고 하겠는가. 어느 노인은 하루 종일 애완견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이웃에도 그런 분이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짠한 이야기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도 반려견이라도 옆에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개를 무척 좋아해 아버지가 사다 준 셰퍼트 새끼를 킹이라 부르며 키웠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너무 무서워 킹을 데리고 갔다. 볼일을 보는 동안 앞에서 꼼짝도 안 하고 보초를 서곤 했다. 어린 주인이 무서워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쥐가 지나가면 순식간에 물어 먹지 않고 쓰레기가 있는 곳에 놓아둔다. 고양이만 쥐를 잡는 줄 알았는데 개도 쥐를 그렇게 잘 잡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훈련을 혹독하게 시켜 집을 비우는 날에는 풀어놓고 나갔다. 혼자 집을 보면서 신문이나 빨래가 땅에 떨어져 있으면 모두 물어다 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요즘은 애완견을 너무 사랑해 지나치게 상전 대우를 하며 키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개에게 정체성 혼란을 가져다준다. 아무리 사랑해도 개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는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이라 서열을 정확히 정해줘야 한다. 개는 상대에게 자신의 배를 보이는 것은 복종을 의미한다. 성격이 사나운 개는 강제로 배를 만져 복종과 충성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라 함은 가족이라는 뜻이므로 개의 모든 행동은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식을 가르치듯 사랑과 애정으로 반복된 훈련과 습(習)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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