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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Feb 11. 2024

욕망에 대하여

  욕망이 우리들 곁으로 걸어올 때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며 터부시 한다. 왜 그럴까? 첫째, 그것은 자기 자신이 욕망덩어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그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싫기 때문이다. 우린 남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쪽같이 숨기고 있지만, 사람들은 상대의 욕망을 정확히 알아본다. 바로 자기 자신이 욕망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의 일부를 잃고서 욕망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이란 사회에 던져진다.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다. 욕망이란 쉽게 말해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원초적인 본능의 욕망이고, 둘째는 건강한 욕망이고, 셋째는 건강하지 못한 욕망이다. 첫째, 원초적 본능의 욕망이란 아기가 배가 고파 우는 것처럼 먹고, 자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둘째, 건강한 욕망이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모방하며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이다. 셋째로 건강하지 못한 욕망은 노력도 안 하면서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남의 것을 탐하며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경로당에 멋지고 근사한 싱글 할아버지 한분이 새로 오셨다고 한다. 그날부터 할머니들의 눈빛이 달라졌고, 그 할아버지 옆에 서로 앉으려고 할머니들끼리 경쟁을 하다가 결국엔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노인네들이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멋진 할아버지로 인해 할머니들은 잃어버렸던 원초적 본능을 일깨워 잠시나마 활력을 되찾은 것이고, 터줏대감인 할아버지들은 경쟁자가 나타나 긴장했을 것이다.

  필자는 어느 날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갔다. 조금 있으니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도 할머니는 필자 옆에 앉으셨다. 사람이 그리워서 그러나 보다 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필자가 들고 간 미니 백 팩을 유심히 보시더니 관심을 보였다. “백 팩이 참 예쁘네요. 이런 백은 어디서 사요?” 할머니의 뜻밖의 질문을 받고 필자는 좀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다 귀찮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도 이런 사물에 관심을 보이시니 의아했다. 할머니는 계속 예쁘다고 백 팩을 만지며 어디서 샀느냐, 어디 거야, 값은 얼마냐 꼬치꼬치 물으셨다. 보다 못한 아들이 엄마 내가 사 줄게 실례니까 그만 물으라고 말릴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필자는 친절하게 답을 하면서도 신기했다. 거동이 불편한 졸수에 가까우신 할머니가 무엇을 갖고 싶다는 것은 아직도 내면엔 욕망이 있다는 것. 사람의 욕망이란 늙음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초적 욕망과 건강한 욕망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설레게 하며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활력소를 제공한다. 만약에 욕망을 우리 인생에서 빼버리면 우린 살아갈 수가 없다. 욕망이 없으면 우린 무료한 날들을 보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 않아도 되며, 그것은 곧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건강한 욕망은 필요하다. 또한 원초적 본능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적인 것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욕망이 우리 곁으로 걸어올 때는 건강한 욕망이 오는지, 건강하지 못한 욕망이 오는지 잘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욕망은 양날의 칼날과 같아 가끔씩 욕망의 아버지는 쾌락이란 어머니를 맞아들여 파멸이라는 자식을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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