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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r 17. 2024

붉으락푸르락


  전국을 혼자서 차를 끌고 돌아다녔더니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몸에 신호가 오면 그냥 좀 쉬면 되는데 미련 곰탱이처럼 쉬지도 않고 계속 장거리 운전을 하며 버텼더니 왼쪽가슴에 훈장처럼 떡하니 대상포진이 생겼다. 유리구슬 같은 맑은 물방울이 연어 알처럼 다닥다닥 맺혀있다. 으,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사람의 피부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겁도 났다. 어찌나 욱신거리는지 미칠 것 같았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이 민망한 부위를 어떻게 의사에게 보여줘야 할지 난감했다. 외간남자에게 은밀한 곳인 가슴을 보여주자니 아픈 것보다 민망함 때문에 생각만 해도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필이면 젖가슴에 대상포진이 생길게 뭐람.

  생각 끝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되겠지 하고 사진을 찍어 갔다. 혹시 몰라 훌러덩 걷어 올리는 티셔츠 말고, 조신하게 단추를 하나씩 푸는 블라우스를 입고 갔다. 대상포진을 봐야 한다면 별수 없이 가슴을 열어야 하는 상황을 대비했다. 최소한 부분적인 곳만 살짝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는 대상포진이 발생한 부위를 직접 봐야 한다고 했다. 머뭇거리는 필자에게 의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어서 빨리 옷을 벗으라고 쳐다보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왜 의사들 앞에서는 자동으로 옷을 벗어야 하는지. 최대한 덜 민망하게 돌아 서서 단추를 조심스럽게 하나씩 풀어 외간남자에게 은밀한 곳을 보여주었다. 한순간 수치심이 몰려왔다. 의사는 가슴 가까이 얼굴을 갔다 대고 한참을 유심히 봤다. 순간 필자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수치심보다 분노가 살짝 일어났다. 의사씩이나 데서 척하면 척이지 남의 여자 젖가슴을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지…….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젊고 싱싱한 여자의 가슴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비싸게 구느냐고. 의사도 눈이 있어 피곤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여자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여자가 아닌 것도 아니고,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다.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치심이란 그런 것이다.

  어쨌든 의사는 대상포진이 맞기는 한데 혹시 모르니 검사를 해야 한다고. 그래야 실수가 없다고. 검사는 바늘로 포진을 찔러 피고름을 짜냈다. 가슴에 돋아난 맑은 물방울을 바늘로 여기저기 찔렸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이 절로 나왔다. 왜 이런 것이 자구만 생기느냐고 물으니 면역력이 약해서 생기는 거란다. 의사들은 할 말이 없으면 면역력 탓을 하니, 그놈의 면역력을 끌어다 패대기를 치고 싶고, 욕이 나올 것 같았다. 벌써 세 번째다. 예방주사를 맞아도 소용없고, 한번 생기기 시작한 대상포진은 몸이 피곤할 대마다 몸 전체에 생겨났다. 그나마 예방주사를 맞아서 이 정도라니 할 말이 없었다.

  필자보다 먼저 대상포진 때문에 고생을 한 올케는 더 심했다. 올케는 허벅지에 대상포진이 생겨서 잘 걷지도 못했다. 당황한 올케도 민망한 부위라 사진을 찍어가지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는 직접 봐야 한다고 바지를 벗으라고 했다고. 치마를 입고 가야 하는데 사진을 찍었으니 아무 생각 없이 바지를 입고 갔다고. 수치심에 어찌나 민망하던지 속옷이라도 좀 예쁜 것을 입고 갈걸 그랬다고…….

  이주가 지나자 상처는 거의 나았는데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는 다시 젖가슴을 보자고 했다. “또 보시게요? 뭘 자꾸 보자고 해요.” 필자는 좀 뻔뻔스럽게 의사에게 말했다. 수치심도 퇴색되니 여유가 생겼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를 보고 이제는 됐다고. 상처는 나았지만 필자는 거의 한 달이 넘게 통증에 시달렸다. 겨울 내내 몸의 충전을 위해 휴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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