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디즈니 크루즈 예매. 우리는 거의 1년 반 동안 가격을 추적하며 고민하다가, 저렴한 가격을 만드는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9월을 택했다. 바로 A. 허리케인 시즌에 B. 평일을 골라 학교를 빠져가며 4박 5일로 디즈니 크루즈 드림호에 탑승하는 것. 아이들이 학교를 빠지면서 디쿠(디즈니 크루즈의 줄임말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디크가 아니고 디쿠지?) 탑승을 하는 건 종종 보아왔지만 허리케인 시즌에 예약을 하는 건 사실 긴가민가했다. 플로리다 하면 허리케인이고 허리케인 하면 크나큰 피해인데... 그래서 A 조건은 추천하기 어렵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허리케인의 , 'H' 자도 안 보고 아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 앞뒤로 출발한 배들은 경로를 수정했다고 들었고, 우리가 집에 온 뒤 곧바로 허리케인 IAN 이 포트 로더데일과 네이플스 등 플로리다 옆구리의 잘 사는 동네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에, 우리는 그저 출항지인 마이애미에 가까이 살고 무식하고 용감한 주제에 아주 아주 아주 운이 좋았을 뿐. 멀리서 비행기 타고 큰돈과 오랜 시간을 들여 도전할 경우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렸다.
예매 사이트도 잘 골라야 하는데 당연히 공식 홈페이지가 있지만 다른 크루즈 가격비교 사이트들도 많고, 그런 곳에서 잘만 하면 좋은 딜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코스트코 트래블을 통해 예매하면 얼마 정도를 Shop card라고 하는 상품권으로 돌려주니 무작정 공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플로리다 주민이라면 주민 할인도 꼭 챙기자. 우리는 5인 가족이라 7박 이상부터만 플로리다 주민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눈물 꼭 참고 제값 주고 가야 했지만, 선박에 따라서 그리고 출항 날짜에 따라 5인의 짧은 여행도 할인해 준다거나 다른 옵션이 가능할 수 있으니 고객센터 직원을 귀찮게 해서라도 확인해 볼 것을 권한다.
예매가 끝나고 해야 할 일은 디즈니 크루즈 앱을 설치하는 것. 앱에 들어가 예매 정보를 넣으면, 디데이 기능이 있어서 내 배의 출항이 며칠 남았는지를 아기자기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배에서 먹고 자고 노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 조차도 앱을 통해 디데이를 자꾸 보니 괜히 기다리는 양 기대되는 양 설레는 느낌이었다.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도 서두르자. 페이스북 그룹에서 배 이름과 날짜로 검색하면 한날 한배에 타는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는 그룹이 뜬다. 가입 신청을 하고 승인이 나면 그때부터 정보 교환도 하고, 들뜬 마음을 공유하며 함께 주접도 떨고, 좋아요도 누르고, 질문도 하고 할 일이 많지만 여기서만 가능한 일 중 하나는 바로 Fish Extender 그룹을 짜는 것.
Fish Extender는 선실 앞에 생선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쇠로 된 장식에 주머니나 가방을 걸어서 승객끼리 기념품을 교환하는, 일종의 마니또. 크루즈 측에서 장려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배에 함께 갇혀(?)서 사육(??) 되는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깜찍한 전통이니, 선물 교환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나는? 그런 열정도 시간도 없었고 페북 그룹에 가입했을 땐 이미 팀이 다 짜인 상태여서 안 했다. 물론 늦게 그룹에 가입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공지가 있었음에도 안 한건 안 비밀. 하지만 막상 배에 타서 다른 사람들 문 앞에 걸린 갖가지 Fish Extender들을 보고 배가 하나도 안 아팠다면 거짓말이다. 주머니들 자체도 보기에 흥미로웠고 상호 교류 문화가 왠지 따뜻해 보였으니까.
문 앞에 꾸밀 자석도 미리 준비하면 좋다. 크루즈의 선실 문은 단단한 철문이라 자석이 아주 짝짝 붙는데, 그걸 본 승객 중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기념품 가게 자석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디즈니의 상술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은 승객들이 문을 각종 자석으로 꾸민다. 주로 디즈니 관련 자석이지만 우리 배는 할로윈 배여서 디즈니와 할로윈이 결합된 자석이 많았다. 물론 이것 또한 물고기 익스텐더(?)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면 일단 자기 방문 알아보기가 편하고, 아이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안 할 이유도 없다. 기성 자석을 그냥 사 붙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안을 직접 그려서 자석을 만들거나 자석 용지에 출력하기도 하는 등 온갖 금손들이 많다. 우리도 우리집 대표 금손 큰아이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려 집에 있던 자석에 붙이는 만들기를 했더니 시간도 잘 가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돈도 물론 굳었다.사랑한다 딸아. 너는 대단한 예술가야.
자석의 쓰임새가 또 하나 있는데, 안 쓰는 기프트 카드나 기한 만료된 멤버십 카드에 자석을 붙여서 가져가면 아주 유용하다. 몇몇 호텔들이 그러하듯 디즈니 크루즈의 선실은 카드키를 꽂아야 불을 켜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방키를 꺼내서 넣었다가 나갈 때 빼고 하는 게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하지만 자석이 붙은 카드 하나만 있으면, 카드를 꽂는 곳 근처에 철썩 붙여놓았다가 방에 들어오면 끼우고 나갈 땐 빼서 철로 된 벽에 다시 붙이기만 하면 된다.
방 카드키를 보관할, 카드 수납목걸이 줄도 필수. 가족 수대로 필요한 건 아니고 문 열고 다닐 사람 것만 있어도 된다. 일단 그 키를 잃어버리면 방에 못 들어가니까 (게스트 서비스 가면 바로 재발급 가능하지만, 보통 게스트 서비스 앞엔 낮이나 밤이나 사람에 많다. 즉, 시간낭비가 클 수도 있다는 것) 디즈니 크루즈가 비슷한 스펙의 타 크루즈에 비해 짜증 날 정도로 비싼 이유는 배 곳곳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한몫하는데, 그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을 때도 방키를 스캔해야 한다. (키 이름도 아주 현란한데, Key To The World였나. 페이스북 그룹의 멤버들이 그걸 줄여서 KTTW라고 부르는데 처음엔 알아듣지도 못했다) 물건을 살 때도 방키가 카드 역할을 대신하니, 괜히 목걸이 줄 안 가져갔다가 불편해서 기프트샵에서 (물론 예뻐서, 혹은 기념으로 사는 건 문제없지만) 싫은데 억지로 사지는 말아요.
아, 사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애도 아닌데 캐릭터들이랑 사진 찍을 일 없다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어차피 직원이 탈 쓴 거잖아.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완선 언니 노래처럼 탈은 항상 웃고 있지만 그 속에 피로와 더위에 쩔어 고달픈 직원이 껌 또는 저주를 씹으며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음... 그런데 시간마다 의상을 갈아입고 여기저기 출몰해서 오는 사람 안아주고 포즈 취해주고 사인까지 해주는 캐릭터들을 보니 '어머 이건 찍어야 해' 팬심이 안 생기기도 참 어려웠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길게 줄을 서서 미키마우스나 벨 공주와 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촬영 직원이 카메라로 찍어주는 사진을 돈 주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때 또 필요한 것이 본인의 의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드레스를 포함해 예쁘고 재밌는 의상을 입은 승객들이 정말 많았다. 꼭 드레스가 아니어도 사진 잘 찍히는 옷이 필요하다.
해적 파티를 위한 해적 의상이나 소품도 가져가면 참 좋은데 일단 눈이 너무 감기는 관계로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