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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우 Oct 31. 2022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숨 쉬기 어려운 밤, 혼란스러운 머릿속

 스티븐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소식을 들었다고, 정말 유감이라고. 소심하고 나약한 나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도, 후속 보도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어 애써 무던히 버티려 했는데,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온 친구에게서 너무나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막막한 심정에 눈물이 나는 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뉴스를 봤고, 이 비극적인 기사는 아마 전 세계로 퍼지고 있겠지.


하며 내가 몰랐던 당시의 자세한 사연까지 들려주었다. 그것이 나의 고국 이야기임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옆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와 내 친구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주저앉아 통곡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잠든 새벽, 또다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슬프고 화가 나고 어리둥절하고 계속 숨이 다. 아무 관련이 없는 나조차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친구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기분이 어떨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나처럼 아무 관련이 없더라도 훨씬 더 괴로워하 사람들도 많겠지. 무섭고 고통스러운 날들이다.  한낱 무력하고 게으른 인간이라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더 자세히 알 길 없지만, 힘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두 번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무책임하고 방만했던 관련자들은 제대로 처벌받길 막연하게나마 바란다. 거듭 말하듯 힘도 없고 의지도 약한 나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리라 다짐도 한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좁고 낡은 그 땅이, 우리나라가,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수도 서울이 사무치게 원망스럽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내며 코스모스가 핀 등하굣길을 걸어 다니고, 잣나무가 우거진 교정에서 청설모가 떨어뜨린 잣을 주워 간식 삼던 나에게 애초부터 서울은 쭉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가 시작됐지만 다행히 기숙사를 포함한 캠퍼스는 이동이 불편할 만큼 넓었고, 가끔 수업에 늦어 기숙사에서 강의동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는 기가 막히다며 한탄도 했지만 대체로 참 좋았다. 은 개인 공간은 큰 혜택이었으니까. 그러다 한번쯤 사람이 붐비는 신림역이나 강남역 같은 곳에 가면 잠깐 흥미롭다가 곧 숨이 고 지치기 일쑤. 사람도 차도 불빛도 소음도 너무 많은 그 도시를 향한 내 감정은 애증이라고 공평하게 말하기엔 증에 무게중심이 확 쏠려있었다. 불행히도 선택지가 별로 없고 용기는 더 없었던 나는 그 도시를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고, 아이들도 그곳에서 차례로 태어났다.


 2019년 여름 낭군님 덕분에 플로리다의 주도로 이사 왔을 때 느꼈던 환희와 전율이 떠오른다. 말만 수도지 그저 시골 대학 도시에 가까운 이곳엔 나무가 참 많고, 뒷마당에 토끼와 반딧불이가 살며 하늘이 맑고 공기 깨끗하다. 태어날 때부터 피부병을 앓았던 둘째의 증세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호전되기 시작해서 가끔 너무 거나, 너무 춥고 건조해 피부 장벽의 균형이 깨질 때를 제외하고는 정상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데, 눈을 들어 주위를 볼 때마다 하나쯤은 꼭 보이는 나무의 초록빛, 높고 맑은 하늘빛, 도처에 널린 물빛, 밤이면 별빛, 뒷마당의 반딧불이 빛 등이 3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여기 온 이후 말버릇이 되었는데,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혼자 오래 생각해왔고 이곳의 주변 사람에게도 공언해왔다. 이제 내 글쓰기 공간이 생겼으니 더 확실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못이라도 박아 새기고 싶은 기분이다. 한국을 떠나 살겠다. 설령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난 또다시 떠나고, 계속 떠날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도 안 나는데 (아마 대학시절 방문했던 사주카페 아저씨의 말이었나) 어차피 역마살이 2개라고 했으니까 떠나는 것 내 운명과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좁은 공간, 셋째가 걷기 시작하면서 하루 걸러 한번 층간소음 항의에 시달리던 아파트, 번잡한 거리, 경쟁과 비교가 휘몰아치는 사회, 슬픈 뉴스들. 정말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나는 뉴스들을 견디며 살기가 힘들다. 늙어가면서 더 참을성이 없어지니까, 작지만 손에 쥔 행복에 더 집착하게 되니까.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게다가 나와 가족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꽉 찬, 숨 막히는 도시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덜 붐비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마음으로. 애국심을 장착하고 전선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문제를 뜯어고치고 책임을 지는 방법도 어쩌면 있으려나. 허나 돈도 능력도 지위도 뭣도 없는 나는 이런 수동적인 대안이 떠올릴 뿐이다. 한국을 떠나자. 남아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기적이고 지탄받을 만한 일일 수도 있겠지. 근데 뭐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니 떠나도 티 하나 안 날 거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어려움을 비롯해서 비싼 병원비, 총기 사고 등 어딜 가나 발목을 잡는 무수한 단점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통곡하며 보낸 어제오늘, 또 한 번,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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