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이 아니야 어원
정확한 연도까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장난(이) 아니야’라는 표현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21세기에 들어와서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전에는 이런 말이 없었다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이 되었다. 이 말은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이나 짓궂게 하는 짓거리 정도의 뜻을 가지는 ‘장난’과 어떤 사실에 대해 반대(否定)하는 것을 강조하는 뜻을 가진 ‘아니다’가 결합 돼 만들어진 표현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매우 진지하다, 정말이다, 정도의 뜻이 되겠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장난’이란 말을 살펴보자.
‘장난’은 한자어 ‘作亂(작란)’에서 온 것인데,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원래의 뜻과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作亂’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인데, “윗사람에게 거스르기(犯)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亂)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직 없다(不好犯上而好作乱者 未之有也)”에 나온다.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차마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하는 것이 ‘作亂’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안녹산(安祿山)의 반란 같은 것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이 말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亂’이므로 먼저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亂’은 ‘순리, 질서, 체계, 규범 등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지는 ‘�(어지러울 란)’과 ‘다스리다’는 뜻을 가진 ‘乙’이 합쳐진 글자로 규범, 질서, 체계 등이 무너진 상태를 가리킨다. 모든 것이 무너져서 다스릴 수 없어야 다스려지는 상태로 가려는 바람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즉, ‘亂’의 본래 뜻은 ‘다스려지지 않는다’이지만 그런 상태가 되면 다시 다스려지는 상태로 가려는 욕망이 생겨서 안정된 상태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기본적인 뜻은 어지러운 상태, 질서와 체계가 무너진 상태를 나타내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作亂’은 어지러운 상태, 질서와 체계가 무너지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 혹은 그런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식적이지 않은, 정상이 아닌, 장난질하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짓거리 등의 뜻으로 확대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장난이라는 우리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데다가 ‘作亂’이란 표현은 모든 기록에서 ‘난을 일으키다, 어지럽게 만들다 등의 원래 뜻으로만 쓰였다. 지금의 ‘장난’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표현을 든다면 ‘노라ᆞ갓(노릇)’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장난, 농담, 놀림 등의 뜻을 나타내는 용도로 이 말이 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제 ‘장난’으로 돌아가 보자.
‘장난’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첫째,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 둘째, 짓궂게 하는 못된 짓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 쓰이고 있는 ‘장난’의 용례를 보면 못된 짓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놀이, 놀림 정도로 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장난’이란 표현은 상식적이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놀리거나 놀이처럼 하는 행동 등의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 정상이 아닌 상태 등으로 만들어가는 말이나 행동에 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장난’이란 표현에 ‘아니다’, 혹은 ‘아니야’라는 말이 붙어서 된 것이 ‘장난이 아니야’인데, 매우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다. 특히 자신이 강조해서 하고자 하는 말을 매우 강하게 긍정하기 위해 쓰는 표현인 ‘정말’보다 한층 더 강력한 어감을 주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어떤 음식이 아주 맛있거나 맵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장난이 아니야’라는 표현을 썼다면 맛이나 매운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장난이 아니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으로 되면서 무엇이든지 엄청나다는 것을 나타내고 강조하기 위한 최적의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폭넓게 쓰이고 있는 ‘장난이 아니야’라는 표현의 어원을 찾아가다 보면 이것에 딱 맞는 일본어를 만나게 된다. 일본어 중 ‘冗談じゃない(죠단 쟈 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농담이 아니야’가 된다. ‘冗談’은 주로 일본어에서 쓰는 한자 표현인데, 농담, 놀림말, 희롱하는 말, 장난으로 하는 말 등의 뜻을 가진다. ‘冗’은 ‘나머지, 여분, 쓸데없는 것, 한가함’ 등의 뜻을 가지는 글자이다. ‘談’은 여러 사람이 함께 자기의 말을 한다는 뜻을 가진다. 즉,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말한다는 뜻이다. 두 글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冗談’은 엄숙한 말이 아닌, 정색하고 하는 말이 아닌, 쓸데없는 말, 놀리는 말, 희롱하는 말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冗談じゃない’는 ‘농담이 아니야’ 정도의 뜻이 되는 것이다. ‘冗談’이란 말이 일본어에 나타나서 정착된 시기가 대략 20세기에 들어와서라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정확한 연도나 날짜는 알 수 없지만 1912년에서 1926년까지 사용되었던 대정(大正) 연호의 시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이를 근거로 해서 볼 때 ‘冗談’이란 표현은 영어를 기반으로 번역하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게 된다.
‘冗談じゃない’에 맞는 영어 표현으로는 ‘no kidding’이 있는데, ‘정말이야, 진짜야, 농담이 아니야’ 등의 뜻을 가지는 말이다. 이 표현은 하고자 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하는 말이 사실임을 강조하거나 상대방이 하는 말에 대해 놀람, 공감, 비꼼 등의 어감을 나타내기 위해 쓴다. 또한 상대방이 하는 말이 정말로 사실인지를 물을 때도 사용한다. 그 외에도 너무나 당연한 말에 대한 반박으로, 아이러니한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冗談じゃない’는 ‘no kidding’을 그대로 직역해서 만들어낸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冗談じゃない’라는 표현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부터 방송 같은 언론에서 우리말로 만들어낸 것을 누군가가 쓰기 시작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점차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장난이 아니야’라는 말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본어에서는 ‘kidding’을 그대로 직역하여 ‘冗談(농담)’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난’이라는 말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장난이 아니야’만으로 볼 때 우리말에서는 ‘농담’이 아닌 ‘장난’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면서 이 표현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과 어감 등을 훨씬 더 정확하면서도 폭넓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통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이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볼 때 ‘농담’보다는 ‘장난’이라는 말이 훨씬 폭넓은 어감을 표출할 수 있는 데다가 매우 정감 있는 말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진전된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장난이 아니야’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쓸 정도로 유행어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어감을 잘 살려서 적절한 표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오타쿠(御宅)라는 일본어를 순화시켜서 우리말처럼 쓰고 있는 덕후(德厚) 같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말은 방송에서는 가끔 쓰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 바로 ‘장난이 아니야’라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