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24)-광주(光州)
전라남도의 중심 도시인 광주는 부산, 대구, 울산, 대전, 인천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6대 광역시의 하나이다. 광주 지역은 고대국가인 백제가 성립하기 전까지는 마한(馬韓) 54개국 중 장성군 진원면 일대나 광주광역시 북쪽 극락강 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과 나주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미국(不彌國) 등에 속하는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군 진원면은 광주광역시의 북쪽과 맞닿은 부분이고, 나주는 서남쪽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그 중간에 광산구가 있는데, 이런 점으로 볼 때 광주는 마한 시대에는 이 두 나라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광주에 대한 땅이름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백제 시대였다. 백제 시대에는 무진(武珍)으로 불렸는데, 노지(奴只)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무주(武州)로 고쳤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甄萱이 세운 후백제 시대에는 무주와 광주를 함께 쓰다가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가 공식적인 땅이름으로 광주를 사용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광주라는 땅이름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무진주, 혹은 무주와 광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야 비로소 광주라는 땅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진주, 혹은 무주라는 지명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武’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자가 가진 기본적인 뜻은 혼란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창 같은 무기를 들고 다른 지역을 정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명 표기에 쓰일 때는 한자의 뜻(訓)과 소리(音)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고구려에서 창안했던 이두(吏讀)의 용법으로 쓰였다. 이두에서는 우리말에서 표현의 핵심을 이루는 명사나 어간(語幹)은 글자의 뜻을 취하고, 조사나 어미 등은 소리를 취하는 표기 방법이다. ‘武’와 ‘武珍’ 등은 모두 명사이므로 한자의 뜻을 취해서 표기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우리나라 옛 지명에서 ‘武’와 같은 뜻을 가진 글자라고 언급된 것으로는 ‘武(굳셀 무)’, ‘康(편안 강)’, ‘沙(모래 사)’, ‘無(없을 무)’, ‘昇(오를 승)’, ‘欿(구할 감)’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자들은 모두 고움, 아름다움, 빛남 등의 뜻이 공통으로 들어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다. ‘武’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밝고 빛나는 덕(武有七德)을 가지고 있으며, 곡식의 껍질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 ‘康’은 아름다움, 즐거움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沙’는 색이 곱고 빛나는 비단을 지칭하는 ‘紗’의 원래 글자이므로 빛남, 고움 등의 뜻을 가진다. ‘無’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것을 지칭하므로 빛남, 머리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하는 ‘元’과도 통하는 글자이다. 또한 이것은 ‘武’와 소리가 같은 데다가 의미상으로도 서로 통하는 글자이기도 해서 무등산(無等山) 명칭과도 통한다. ‘昇’은 해(日)가 솟아오른다는 것으로 밝음, 빛남 등의 뜻을 가진다. ‘欿’은 ‘坎’과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는 것인데, 빛이 나는 물을 지칭한다.
‘康’, ‘沙’, ‘無’, ‘昇’, ‘欿’ 등의 글자는 모두 우리나라 땅이름을 표기하는 이두에서 쓰였던 것들인데, 이것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우리말로는 ‘물’을 꼽을 수 있다. ‘물’은 빛을 낼 수 있는 물감이 물건 같은 것에 묻어서 드러나는 빛깔을 뜻하는 말인데, 조선 시대의 표기로는 ‘믈’이며 현대어로는 물감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물이 날다’, ‘물이 곱다’, ‘물이 바래다’ 등의 표현에서 ‘물’이 바로 ‘빛남’, ‘때깔’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물’이라는 말은 ‘물감’ 정도에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여러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였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감’은 한자 ‘資(바탕 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부 명사 뒤에 쓰여서 그것의 재료나 사람 따위를 나타낼 때 쓰는 것인데, 앞말이 붙여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물감’은 무엇인가에 색을 입혀서 그것을 빛나게 만드는 재료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珍(보배 진)’은 옥돌로 만들어진 주옥(珠玉) 종류의 보물을 지칭하는 글자로 믿음의 징표(信物), 아름다움 등의 뜻을 가진다. 이 글자가 이두 표기로 쓰일 때는 옥돌(玉石)이라는 뜻을 취해 와서 ‘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 기록에는 지금의 무등산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한 것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백제 시대의 지명인 무진주(武珍州)는 ‘아름답게 빛나는 돌이 있는 고을’로 풀이할 수 있게 된다. 신라 경덕왕 때에 와서는 무주(武州)로 바뀌었는데, ‘아름다운 고을’, ‘빛나는 고을’이라는 뜻이 된다.
무진주, 무주, 광주 등의 지명이 만들어지는 데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무등산(無等山)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등산이란 이름은 고려시대부터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시대에는 서석산(瑞石山)으로 부르기도 했다. 무등산의 꼭대기 부근에는 용암이 식어서 오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여럿 있는데, 서석대와 입석대가 대표적이다. 특히 서석대는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 붉은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상서로운 돌이라 여겼다. 그러므로 서석산이란 명칭은 이 산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백제 시대에는 무진악(武珍岳)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진(武珍)’의 뜻은 이미 위에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서석(瑞石)과 무등(無等)의 뜻만 고찰하기로 한다. ‘瑞(좋은 일 있을 조짐 서)’는 옥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람이 서로 만날 때 변함없는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옥(玉)으로 징표를 삼았던 일에서 유래된 글자이다. 믿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므로 길조(吉兆), 빛깔, 밝음 등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石(돌 석)’은 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딱딱한 물체로 순수한 무기물 흙이 뭉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서석’은 ‘물돌->무돌’, ‘빛돌’, ‘아름다운 돌’ 등의 뜻이 된다. 무등산 정상 부근에서 동쪽을 향해 있는 서석대를 지칭한 것인데, 이것으로 산의 이름을 삼았다고 볼 수 있다.
‘無等’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글자의 뜻으로 보면 등급이나 ‘차별이 없다’라는 정도로 풀이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無’는 없음, 머리, 완전한, 비어 있음. 아름다움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하는 글자이다. ‘無’는 원래 ‘즐거움’, ‘춤추다’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 글자였는데, ‘없다(沒有)’라는 뜻을 가지도록 가차(假借) 되면서 부정의 용도로 쓰였다. 그러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최고, 최상, 유일무이한 것 등을 강조하기 위한 용법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等(나란할 등)’은 대나무 조각(竹簡)에 글자를 써서 만든 책(簡冊)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모양을 지칭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가지런한’, ‘나란한’, ‘같은’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하는데, 후대로 오면서 등급, 계급, 수준 등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무등’은 이것과 어깨를 견주어 나란하게 할만한 것이 없다는 뜻으로 되어 비교의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지칭한다. 따라서 무등산은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혹은 빛나는 뫼’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는 ‘무진주’를 노지(奴只)로 부르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것의 뜻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서 아쉽다. 다만 ‘奴只’는 ‘놋’의 음차(音借)일 수 있다는 정도의 추정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놋’은 구리에 아연을 넣어서 만든 것으로 녹이 슬지 않아서 언제나 빛나는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놋쇠’라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奴只’를 ‘놋’으로 본다면 ‘빛남’, ‘색깔’ 등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어서 ‘물’과 같은 뜻이면서 그것에 대한 별칭으로 표기했을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추정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후백제 시대에는 무주와 광주가 함께 불리다가 고려 초기에 이르러서는 광주(光州)로 고정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정치적, 문화적 상황과 배경에 따라 해양(海陽)ㆍ익주(翼州)ㆍ화평(化平)ㆍ무진(茂珍)ㆍ익양(翼陽)ㆍ서석(瑞石) 등으로 변경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지 않아 모두 광주로 복구되었고 이 지명은 조선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光(빛 광)’의 초기 형태는 머리 위에 불꽃(火)을 이고 있는 사람(人)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회의자(會意字)인데, 이것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빛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光’의 기본적인 뜻은 ‘밝음(明)’, ‘빛’, ‘빛깔’ 등이 된다. 옛사람들은 해, 달, 별(日、月、星辰)을 빛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해(日)를 지목하기도 했다. ‘州’는 물(水)과 물 사이에 있는 높고 평평한 땅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지칭하므로 ‘고을’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광주는 ‘빛고을’, 혹은 ‘아라ᆞ감(아름다움)고을’ 등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무등산, 서석산 등으로도 불렸던 무진악이란 명칭에서 무진, 혹은 무진주라는 지명이 유래되었고, 그것이 다시 광주라는 땅이름으로 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광주라는 지명이 해당 지역의 문화적, 지형적 특성을 정확하게 짚어서 붙인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아꼈던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공간적, 문화적 특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삶과도 관련성이 희박한 것들을 가져다가 지명으로 붙이는 지금의 방식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