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31)-수락산

by 죽계

땅이름문화사(31)-수락산(水落山)

서울특별시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접하고 있는 수락산은 도봉산과 더불어 서울 근교에서 최고의 명산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글자의 뜻만으로 단순하게 보면 물이 떨어진다(水落)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그런지 명칭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민간어원설이나 설화가 전해온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비교적 근래에 생긴 것으로 이론적 근거가 매우 약하다.

수락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한 것으로는, 첫째, 수락산 내원암 일대 계곡에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굴러떨어지므로(水落) 수락이라고 했다는 주장,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셋째, 신라 때 원광법사가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고 해서 수락사라는 절을 짓고 머물러서 생긴 이름이라는 주장, 넷째, 범에게 물려 간 수락이라는 아들은 부르면서 찾았던 사냥꾼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뒤 비가 올 때마다 수락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런 주장들은 ‘落(떨어질 락)’이라는 글자를 일반적으로 알려진 뜻으로만 해석해서 생긴 오해, 혹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이전의 기록에는 위에서 말한 내용들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니 이런 주장들은 모두 근래에 와서 호사가들이 편리한 대로 갖다 붙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산’은 평평한 땅보다 높게 솟아 있는 것을 지칭하므로 ‘수락’이라는 말이 무엇에서 왔으며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혀낸다면 수락산의 정확한 어원과 뜻을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락’이라는 표현에서 ‘落’은 ‘떨어진다’라는 뜻이 아니라 ‘줄어들다’, ‘빠지다’, ‘낮아지다’ 등으로 이해해야 한다. ‘떨어지다’는 어떤 사물이나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하나의 단위로 된 것 전체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줄어들다’, ‘빠지다’, ‘낮아지다’는, 부피나 분량 따위가 적어지거나 짧아짐, 어떤 공간에서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고 있던 액체 따위가 흘러 나가서 줄어듦, 어떤 사물이 지니고 있었던 원래의 높이에서 더 낮은 높이로 됨 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떨어지다’와는 그 뜻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을 지칭하는 ‘水’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내, 강 등의 흐름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면서 물이 있는 모든 공간을 지칭하기도 한다. 글자의 가운데에 있는 ‘丨(뚫을 곤)’은 물이 흐르는 중심을 나타내고, 양옆의 점 네 개는 물방울을 형상화한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바로 물의 기본적인 속성인데, 그것이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 양이 많으면 높이, 혹은 깊이는 높거나 깊어지고 양이 줄어들면 낮거나 얕아진다.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은 양이 많을 때는 여러 가지 사물 현상들을 덮어서 감출 수가 있고, 적을 때는 덮어서 감추었던 것을 드러나게 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水’가 ‘落’과 결합하면 ‘수위가 낮아지다’, ‘물이 빠지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된다. 물이 빠져서 수위가 낮아지면 높은 수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나타나거나 보이게 된다.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나 돌 등이 물이 빠져 수위가 낮아지면 드러나는 것 같은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을 가리켜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고 한다. 이 말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중국 송(宋)나라 때 인물인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취옹정기(醉翁亭記)’에 처음으로 나온다. “들꽃은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아름다운 나무는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는데, 바람과 서리는 맑고 깨끗한데, 물이 빠져서 바위들을 드러내네. 이것이 바로 산간의 사계절이다(野芳發而幽香,佳木秀而繁陰,風霜高潔,水落而石出者,山間之四時也).” 또한 이 표현은 구양수와 더불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면서 그와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었던 소식(蘇軾)이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에도 나온다.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강가 절벽 천 길 높이인데, 산이 높으니 달은 조그맣고, 물이 빠지니 돌들은 드러나네(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조선시대의 사대부 문인들은 구양수의 ‘취옹정기’보다는 소동파의 ‘후적벽부’가 문학적으로 더 아름답다고 여겨 시에서 이 표현을 용사(用事)로 즐겨 썼다.


‘수락석출’이란 표현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물이 줄어들면서 모습을 드러낸 돌의 모습이다. 물에 잠겨서 씻기고 깎여서 부드러우면서도 만질만질하게 된 돌의 모습은 흰색을 띠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물의 색은 검어서 그와 대비되어 더욱 희게 보이므로 한층 화려하다. 더구나 소동파의 글에서는 산이 높고 달이 조그맣게 보이는 상황에서 물 위로 드러난 흰 바위의 자태를 강조하고 있으니 어쩌면 작가는 천상의 아름다움이 달빛에 실려서 땅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수락산’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산은 2억 5천만 년 전인 중생대 시대에 마그마가 지하에서 관입(貫入)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화강암이 중심을 이루는 바위산(巖山)이다. 화강암이 오랜 시간 동안 풍화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이 잘 발달 된 산으로 유명하다. 산 정상 부근에서부터 흰색의 바위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자리하고 있는데, 바위와 바위 사이는 소나무 같은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바위는 흰색에 가깝고 소나무는 검푸른색을 띠는데, 이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물이 빠지면서 그 위로 드러난 아름다운 바위 같은 느낌을 준다. 색의 분화가 현대처럼 되지 못했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숲과 물 등은 모두 검은색으로 인식했다. 조선시대의 선인들은 이런 모습에 착안하여 이 산의 이름을 수락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수락산’이란 글자만으로는 숨겨진 뜻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도록 이중의 장치를 한 셈이다. 물이 빠지니 바위가 드러나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 바로 수락산이란 명칭이기 때문이다.


수락석출(水落石出)이란 고사성어를 가져와서 아름다운 산의 모양을 이처럼 섬세하면서도 절묘하게 표현한 이름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선인들의 감성과 지혜가 거듭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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