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과 영조에게서 얻은 교훈.
2024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는 상당히 낮다.
그와 동시에,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언론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검사나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에 대한 탄핵을 언급하거나, 실제로 몇몇에 대해서는 다수 의석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뭔가 급해 보인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또는 “노 저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을 때”의 상황 또는 “물 들어올 때”의 상황을 지속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임금이 있다. 세종과 정조다.
그리고 그 두 성군의 앞에는 태종과 영조가 있었다.
태종은 사대부의 나라이자 신하의 나라인 조선에서 왕권을 강화하여, 군왕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 그를 통해 세종은 사대부(신하)와 임금이 국정을 조화롭게 운영하는 체제를 만들고, 나아가 백성들이 국정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인 한글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태종은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궁중 기술자로 발탁하여, 나라 일을 보게 하였고, 세종은 장영실의 능력과 업적을 높게 사 그에게 관직을 주었다.
이러한 태종의, 사대부를 견제하며, 군왕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개혁과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있으면, 발탁하여 나라 일을 보게 한 개혁은 세종에게로 이어졌다.
그에 반해 세종의 개혁은 그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세종 사후 훈구파가 국정 운영을 좌지우지하였고, 노비들이 능력이 있어도 장영실과 같이 나라 일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영조와 정조도 마찬가지다.
영조는 하나의 당파가 국정을 독점하는 폐단을 막고, 숙청으로 대표되는 당파 간의 극한의 대립 상황을 완화시킴으로써, 왕권 강화와 고른 인재의 등용이라는 개혁을 추진하였고, 이 개혁은 정조에게로 이어진다.
그에 반해 정조는 왕권 강화와 더불어 서얼에게 국정 참여 기회를 넓히는 등 사대부의 기득권 타파를 위한 많은 개혁을 하였지만, 이러한 정조의 개혁은 세종의 그것보다 더 비참하게 퇴색해 버린다. 아니 오히려 세도정치라는 더 심한 반동이 일어났다.
태종과 영조는 선명성보다 지속성을 더 중요시 여겼다.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개혁이 후대에도 지속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그 두 임금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개혁의 지속성을 위해, 친인척을 죽이고, 본인의 아들까지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과 오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은 세종과 정조의 시대에 대한 박수 세례에 앞서, 태종과 영조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고, 또한 세종과 정조 시대 다음에 이어졌던 탄식과 안타까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탄식과 안타까움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속성을 좀 더 고민할 때라 할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변호사가 보는 우리 사회·정치의 세태. 변호사 김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