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받지 못하는 마음

양파 같은 엄마, 복숭아 같은 시어머니

by 김파랑

나는 오랜 세월 매우 강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강압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나의 엄마는 다섯 딸을 낳아 기르셨고 내가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휘청거리는 집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기둥이 되어야 할 아빠는 그 빚을 남긴 채 본인의 마음 다지러 유유히 떠나셨고, 아이들을 길러내는 건 온전히 엄마의 손에 맡겨졌다.

그래서일까? 원래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몰랐던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보육원 원장님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소임은 적은 밥을 먹이고도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한 그릇 밥과 김치를 밥상에 올리는 것, 등 붙이고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에 평생을 바치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주신 밥 한 그릇에 만족하며 엄마의 따뜻한 마음 한편 따위는 바라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물론 누군가라면 도망갈 수도 있는 환경에서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엄마의 대단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실로 평생 엄마를 존경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점점 자신옆에 있어야 할 아빠의 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주길 바랐고, 그것을 채워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엄마의 나약함이 딸들의 마음에 엄마를 채워야 한다는 무엇보다 무거운 짐덩어리를 안겨주셨다..


나의 앞길을 바라보고 살아도 하루가 모자란 한 아이가, 엄마의 고됨과 그 노고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그 마음에 짐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되기에 어떤 일도 남보다 쉽게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장 속에 갇혀 그 작은 어깨에 엄마의 마음의 짐까지 짊어져야 했던 그 작은 새는 날갯짓 한번 할 때마다 철장에 부딪히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그 안에 주저앉아 우는 날이 반복되었다.

꿈을 향한 한 번의 날갯짓은 엄마의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으로 언제나 실패했고, 그럼에도 나가보려는 두 번째 날갯짓은 엄마의 강압으로 결국 꺾여버린 채 살아갔다.

그렇게 오랜 세월 새장 안에 살면서 나는 그것이 효도라는 이름으로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작은 새장 안에서 받은 세뇌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문이 열려있어도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연약한 파랑새로 만들어 버린 효과.. 결국은 엄마 곁에 그저 머무르게 만드는 효과.. 자식을 자신의 옆에 아바타로 묶어둬야 하는 엄마에게는 성공적인 엄청난 효과..



그러다 나는 정말 행운의 파랑새였을까?

그 새장에서 나를 꺼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과 결혼했고 나는 넓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하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온실 같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온실을 만들어 준건 바로 시어머니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 시어머니가 자신을 새장에 가두려고 한다고 불평하고 힘들어한다.

모두 다 시시 시, 시자로 시작하는 것은 말도 듣기 싫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는 공감을 하지도 , 공감을 받지도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시어머니가 그 새장에서 꺼내준 사람이기에.. 새장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은인 같은 분이기에..


온실 속에서 자란 나의 분신 같은 남편은, 내 새장 속에서의 생활을 언제나 나보다 가슴 아파했다.

온실을 맛보지 못한 나는 사실, 새장 안의 가혹함을 잘 몰랐다. 그래서 슬퍼할 줄도 몰랐다.

오히려 온실에서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새들을 많이 본 남편은 항상 말했다.

파랑새로 태어나 누구보다 반짝반짝했을 내가, 그 윤기 나던 깃털 한번 펄럭여보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지내게 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처음에는 나의 보금자리였던 곳을 욕하는 남편과 잦은 다툼을 하기도 했다.

왜 나의 환경을 욕하냐면서.. 나의 가족을 나쁘게 보냐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알아버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완벽히 알아버렸다.

남편의 말이 옳았음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마음에 상처를 조금 내고도 잠 못 이루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거늘,, 짐을 지어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꽁꽁 싸여 보이지 않던 양파의 속살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나는 그 매운맛을 보아야만 했다.

그 속에 숨겨두고 보지 못했던 우리 엄마를 향한 매운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는 복숭아 같은 시어머니를 보고 진짜 달콤함을 알아버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복숭아라 이름 지어진 양파를 먹고살 때는

‘복숭아는 다 그런 것이다. 먹다 보면 달콤하기도 하다. ‘ 싶기도 했다.

쓰라리면서도 모른 채 이것이 원래 복숭아 맛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진짜 복숭아를 먹어버린 지금은 양파를 복숭아처럼 먹을 수가 없다.

정말 달콤한 복숭아를 매운 양파보다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처럼 복숭아 같은 엄마,

단단하지만 맵지 않은 그 달콤한 맛의 엄마가 되고 싶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매운맛인 나의 엄마보다 점점 더 달콤해지는 복숭아 같은 시어머니가 더 좋다는 감정이 점점 커지는데 나는 잘못된 것일까?


절대 공감받지 못할 마음이란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마음이 그렇다.

나는 양파보다는 복숭아가 더 달콤하고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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