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숨기고 평온한 가운데이고 싶다.

그냥 사회생활 못하는 엄마일 뿐입니다.

by 김파랑

나는 내성인이었지만 그것은 성격일 뿐, 누구나처럼 아니 그 누구보다도 노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조용한 내 모습을 보면 공부하고 책만 읽는 삶 같아 보이겠지만 아마도 책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며 친한 사람들을 웃겨주고 싶은 개그욕구가 충만하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보다는 놀고 싶었고, 남자도 만나고 싶었고, 화장도 해보고 어른흉내도 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탈선은 싫었고, 공부를 손놓기도 싫었다.


잘노는 아이들과 어울리면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야 했기에 떠나야했고

공부하는 아이들과 어울리면 내 지적수준이 그 아이들을 맞추지 못해 떠나야했다.

그야말로 가운데 범주에 들어가는 아주 평범함 그 자체..라고 혼자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나보다.


내성인이지만 놀기도 좋아하기에 정확한 내 캐릭터가 없어서였을까? 내가 설 곳이 없어진 것 같다.

엄마가 되면 나처럼 어린시절 친구들은 당연히 만나지 못하는 것이고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는 깊게 사귀지 못한다는 것은 나만의 오해인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같은 또래 엄마들은 아직도 베스트프렌드는 정기적으로 만나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그룹을 형성해 외롭지 않게 살아간다.

(물론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겉보기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겉보기조차도 다른 모습이다.)


그들과 굳이 비교해보자면 나는 학창시절 친구도 다 떠나갔고, 사회친구도 없다.

둘러보니 친구라고는 남편 뿐이고, 마음 맞는 친언니 하나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다, 결국은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 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은 어느정도 해나간다. 나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사람도 드물다.


학창시절에 그랬듯이 지금도 과묵하지 않고 놀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반이나 자리잡고 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속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스스로 찾아냈다.

그렇기에 언제나 내 마음에 빨간색을 빨간색이라 말하지 못한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고 또 행여나 우스워보일까란 여러가지 고민이 짬뽕되어 빨간색을 이상한 색으로 말해버린다. 그리고는 오해를 사는 것 같다.


어쩌다 말을 내뱉고 반응이 미지근하거나 표정이 조금이라도 굳어진다면 금새 그것을 느끼고 혼자서 말을 하지 말자라고 또 반성하고 다짐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하는 나. 수다떨며 놀고도 싶고 지성인처럼 무겁고도 싶은 나였다.


그렇기에 진지하고 성숙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 가벼워 어울리지 못하고,

정말로 노는 것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 조용하여 어울리지 못한다.

게다가 마음이 미약하여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또 하루는 미친척하고 주절주절 수다를 떨어보면 상대편은 더 지쳐보이고 나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집에 돌아오면 하루 일과들 돌이켜보고 되내이는 시간을 가진다. 의식적으로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다보면 나의 행동에 반성도 하게 되고 소위 '이불킥'도 몇번씩 한다.

이불킥 10번의 끝에는 결국 나의 행동을 수정하게 된다.

'말을 하지 말자....결국엔 말이 문제구나...'


어린시절에는 반 아이들을 모두 주도하며 리더형으로 노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지금은 과묵하게 무게를 잡고 앉아 함부로 주절거리지 않는 여자들이 부럽다.

나도 그런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 입을 항상 조심하고자 한다.

하지만 친목이 다져진 이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 보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나는 주절주절 수다를 떨고 있다.

겸손을 떤답시고 나의 치부까지 살짝 드러내면서 나를 낮추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돌아오는 날이면, 나도 이미 지쳐있다. 기가 빨린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다음 모임은 의식적으로 피해본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난 뒤, 뒤돌아보면 내 주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같이 시작한 모임이었지만그 안에서 삼삼오오 소그룹으로 친목을 다져가고 있고 나는 그 어떤 소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결과의 원인을 나의 '말'이라 생각하고 말하는 법에 대한 영상들과 책들을 살펴보았다.

아주 방대한 양으로 결론을 내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화방법론의 서적을 보면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말을 줄이고 경청하라고 되어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경청도 하려했고 특히 내가 말할 땐 절대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거르고 걸러서 한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선인을 따라하다보면 분명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경청이라는 것을 시크하게 대함으로 잘못 표현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서운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꼬리들도 결국은 아마 나의 망상일 것이라는 것도 안다.


혼자이면 될 것을 자꾸만 나에게 상처받은 얼굴을 떠올리고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지만 나만 알고 있는 답 '열등감'

열등감이 있는 사람의 말은 아마 가시가 있거나 유쾌하지가 않다. 다른 이의 기분을 생각하고 경청하고 말을 내뱉으면서도 결국은 나만을 생각한다.

어울리고 싶지도 않고 어울리고 싶기도 하다. 참으로 어렵다.

역시나 가운데 서서 이쪽도 저쪽도 가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나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란 열등감이 드러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다가가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저의 모습에 기분이 상한 그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악의도 없습니다. 단지 사회생활 못하는 엄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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