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왜 해야 하나.
영국에 살면 99프로의 사람들은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한국에서는 멀어서 못 가는 곳들이 영국에서는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당연하다.
나 또한 유럽여행 한번 못해봤기에 유명한 유럽 곳곳을 여행하기를 꿈꿨다. 그리고 비행기가 값싼 시즌에 맞춰 가거나 지금이 아니면 평생 가보지 못할 곳까지 몇 군데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주변 한국 사람들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여행은 어땠었는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닌 편이었다.
그 여행의 90% 이상이 놀이동산이나 바닷가 여행이었지만 말이다. 항상 바쁜 남편은 잠시 시간이 날 때면 무조건 여행을 계획하고 돌아다니려 노력했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곳에 맞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유럽을 여행하면 한국보다 더없이 행복하고 좋을 것이라 감히 예상했다.
여행은 멀까?
여행을 왜 하는 걸까??
아마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럽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말이 안 통하는 나라를 가는 것 자체가 정말로 힘든 일이다. 공항에서부터 그 난관은 시작된다. 사실 도착하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조금 지쳐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획표에 짜인 명소들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 힘듦이 의미가 있고 정말 정말 좋고 가슴이 벅찼다면 만약 그렇다면 that' okay 다. 문제 될 것은 없다.
나는 가장 볼거리가 많은 파리여행을 하고 속된 말로 현타가 왔다. 애초에 우리 가족은 성당처럼 지루한 건 계획하지 않기에 다른 여행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파리는 달랐다.
볼 것도 갈 곳도 너무나 많은 파리에서 우리도 모든 것을 다 하려 했다.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거리, 몽마르트언덕, 루브르 박물관.. 유명한 것만 대도 끝도 없이 술술 나오는 곳이 파리이다.
솔직히 그 유명한 것들도 다 돌아보지 못해 선택을 해야 한다.
우왕좌왕하고 다닐 것 같아 가이드 신청을 해서 다니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들과 왔다면 가이드는 정말 비추이다. )
어쨌건 우리들이 하는 것은 깃발 꽂기이다.
가서 사진 찍고 이동, 도착해서 조금 보고 사진 찍고 이동!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명소를 다 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다닌 우리 가족인데도 저녁이면 지쳐 쓰러졌다. 굶다가 카페 가서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기도 한다. 숙소에 들어와 먹는 컵라면이 가장 맛있는 순간에는 더더욱 현타가 크게 오지만 가장 큰 충격은 바로 아이들의 반응이다.
유럽에 유명한 것들은 대부분 성당과 박물관,
아이들이 가장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성당과 박물관,
그렇지만 어른들이 가장 사진 찍고 싶어 하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곳은 멋진 성당과 박물관이다.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많은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다시는 여행을 안 한다고 했다고들 한다.
어른은 훨씬 더 힘들었겠지만 그 아이들을 야속해하면 안 될 것이다.
어른들은 진짜를 모른다.
아이들이 싫었다면, 행복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짜 여행이 아니다.
나는 많은 박물관을 가보진 않았지만 루브르나 작은 미술관을 들어갈 때면 느끼던 바가 있다. 아니 여행을 할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더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우리는 수박 겉핥기로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나오는 것이 전부인 듯한데,, 내가 본 나이가 지긋한 어떤 외국인들은 그 작품 앞에서 한참을 감상한다. 의자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곳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온전히 즐기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아마 하루에 그 정도 보고 밖에 나가 여유롭게 맛있는 저녁을 먹거나 와인 한잔, 커피 한잔 하며 또다시 머무르다 하루를 마무리 할 것이다.
진짜 여행을 한다..
우리는 진짜 여행이 아닌 일을 한다.
그 어떤 날보다 기합을 주고 긴장을 하고 끝나지 않는 리스트에 줄을 그어가며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며 돌아다닌다. 가장 열심히 일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매번 그렇지는 않다. 어떤 멋진 광경을 보고 감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온전히 그것을 느껴봤을까??
10가지의 관광지를 다 포기하고 내가 마음이 가는 어떤 곳에 머무르며 그것을 온전히 만끽해 봤는가?
그곳의 여유로움과 사람들을 느긋히 지켜본 적이 있는가??
많은 것을 포기해 보는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한 번도 그래보지 않았다면 나는 단연코 여행이 아닌 고된 일을 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극기훈련 정도??
아이들에게 세상사는 지루함과 힘듦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진짜 교육과 행복을 주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면 명소를 찍는 유럽여행은 목적달성 실패일 것이다.
이곳에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두세 번 그런 여행을 하고 와서는 열심히 준비하고 다녀왔는데 아이들의 반응에 조금 실망한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나 프랑스 파리 다녀왔어~ 독일도 갔다 왔어~ 동유럽의 야경은 정말 최고야. 그곳의 빵은 인생 빵이야.. 황홀한 건물이었어.
이것들은 그들의 진심이다.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길 바랄 뿐이다. 남에게 자랑하는 그 맛에 정말로 좋았던 것은 아닌지...
나 또한 자랑하고 싶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여주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식도 없고 허세도 다 버리고 내 날것의 그대로 유럽여행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하자면
이제는 너무나 발전한 대한민국이 있기에,
파리의 크루아상보다 서울의 어느 골목길 작은 빵집에서 아침에 구워낸 크루아상이 훨씬 맛있고
스페인의 하몽보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만들어낸 햄들이 훨씬 맛있으며
그 어떤 나라의 샌드위치보다 성심당의 샌드위치가 100배 맛있었다.
또 포르투의 뽈뽀보다 우리나라 낙지볶음이 더 맛있고 문어샐러드가 훨씬 더 맛있다.
그 어떤 곳의 파스타보다 우리나라 인기 이탈리아 식당의 파스타가 우월하다고 확신한다.
영국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 가장 유명한 화덕피자를 먹은 적이 있다. 그 맛이 우리나라 동네에서 파는 화덕피자와 비슷하다. (이건 영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나라 어떤 레스토랑을 가도 그러하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는 이미 우리가 먹는 기네스와 맛이 비슷하며 와인도 그러하다.
먹을 것은 수없이 비교할 수 있다. 결론은 대한민국에 모든 세계음식이 더욱 맛있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기에 비슷비슷하게 생긴 모든 유럽을 다 찍으며 고생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부모라면... (그 고생은 젊은 시절 혼자 또는 친구랑 하자.) 부모 욕심에 아이들을 희생시키겠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또 모르겠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겠다는 교육차원의 여행이라면 그만두는 게 맞다.
에펠탑 앞의 잔디에서 적당히 맛있는 빵과 음료를 가지고 여유 있게 앉아있기
포르투의 모루광장에서 츄러스와 나타를 먹으며 해가 질 때까지 많은 사람들과 있어보기.
빅벤을 볼 수 있는 어떤 곳에서 버스킹을 즐기며 맥주 한잔 해보기
아이가 없다면 어떤 박물관에서 아주 늘어지게 제대로 작품을 감상해 보기.
스페인의 해변에서 비키니도 입어보고 햇볕도 맞아보며 마음 편히 낮잠 자기
나무가 울창한 시원한 공원 속 벤치에서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독서해 보기.
하루에 하나 감상, 그리고 음악과 풍경이 좋은 곳에서 긴 여유를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을 하나라도 제대로 해본다면 아마 진짜 유럽여행의 맛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본 자의 거만한 깨달음으로 글을 쭉 써 내려가고 이주를 묵혔다. 함부로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라 괜찮다란 생각이 함께 했다.
어찌 되었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보지 못하는 영국에서 살아가며 유럽을 여행하는 호사를 다 누린 내가 깨달은 바는 그러하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유럽여행은 정말 앙꼬 빠진 단팥빵을 먹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여행 한번 하기가 참 어렵다. 비행기를 잡고 숙소를 잡고 일정을 잡는 일조차 쉽지가 않다.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여행을 준비해서 딱 그 나라에 기대감을 가지고 갔지만..
고생고생해서 따먹은 열매 맛이 그리 좋지가 않다.
탐스러워 보이지만 맛있지 않아 새들이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그 과일을 어리석은 인간들이 다 따먹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든 유럽 여행을 다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이 있는 곳만 두세 번 다니고 영국에 사는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보다 집 앞 잔디밭에 도시락을 싸서 나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을 가장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허세 없이 순수하게 느끼는
아이들의 말이 정답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