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람들의 마인드는 참.. 편안하다.

by 김파랑

불편한 것 투성이에 매일매일 비가 오는 나라.

물기가 마를 날이 없어 집안에 곰팡이가 잘 지는 나라.

세탁기도 엉망이고 건조기도 엉망이고, 살림하기 너무나 힘든 곳

이 작은 개수대에서 한식을 해 먹고 설거지하기는 노동인 곳

집안에 보온이 하나도 되지 않아 밖과 집안의 온도차이가 없는 훈훈함이 없는 곳..

한국사람으로 살다가 마룻바닥이 아닌 카펫에서 맨발로 다니지 못하는 곳..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국의 집이 그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가기 싫은 순간도 수십 번씩이다.

바로 그건 바깥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이다.

가까이서 부딪히는 순간마다, 문을 열고 닫는 순간순간 이 사람들의 품격에 감동을 받는다.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Thank you. "와 "Sorry" 듣는다.

이 사람들은 생활이라지만 이런 소리를 몇 번씩 듣다 보면 마음이 동요된다.

가끔은 그 인자한 표정과 함께 보다 보면 감동을 받는다.

할머니가 손녀에게나 지어줄 법한 표정으로 양보를 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이 나라가 참 좋아진다.

내 성인이고 개인적인 거리를 항상 두던 나에게나 맞는 생활방식 일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거리를 지켜주는 이곳이 잘 맞는다.



어쩌면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고생하며 살 때 이 사람들은 영국에서 부유하게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진짜 부자의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여유를 볼 때면 감동과 함께 한국 사람들이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부유하지 못한 나라에서 죽도록 일해야 먹고살 수 있었던 부모님들의 그 시절,

거저 받은 것 하나 없이 내 힘으로 피 터지게 살아가야 잘 살 수 있는 우리 세대들

언제나 삶이 힘겨워 마음에 남을 위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었다.


마치 가난뱅이가 부자를 부러워하 듯 나는 이들의 마음의 여유를 참 부러워하고 있다.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이 최첨단이고 빠르고 편안하고 좋다. 내가 사는 영국(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곳이다.)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90년대와 조금 비슷하다.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많이 한다.

그래서 한국사람으로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일을 잘하는 나라가 없다더니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도로공사라 하면 하루이틀에 뚝딱뚝딱,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몰려도 뚝딱뚝딱 재빠르게 서비스를 진행한다. 그것이 식당이든 공항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진이 빠질 만큼 일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나를 혹사시켜 가며 일하지 않는다.

적당히.. 천천히 일한다.

학교 선생님부터도 다르다. 주 5일을 담임선생님이 모두 수업하지 않는다. 3일 2일로 두 사람이 나누어서 돌아간다.

여유가 있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유머와 사랑을 가지고 교육한다. 물론 훈육도 아주 잘한다. 잘못된 건 호되게 혼을 낸다. 부모님 눈치 볼 것 없다. 부모들은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해 준다.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 할 말이 많지만 사람의 여유에 관해 말하자면 빼놓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누린다.

그저 서로 간의 거리를 존중해 주고 거리에서 "Thank you"와 'Sorry'를 잘 건네주기만 한다면 그 작은 것들이 품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음식과 편안함 그리고 부지런함 속에서 이런 품격까지 갖춘다면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도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살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꿈꿔본다.


서로의 직업을 존중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존중하지 않는 자는 모두가 존중해 주지 않지만

노력하는 자와 그 결실은 충분히 박수치며 인정해 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겠지?


대한민국의 장점이 셀수없이 많다지만 사람사이에 존중이 없다면 그 어떤 풍족한 환경이 되어도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우리의 부지런함과 재능 사이사이에 품격을 갖추고 노력하다 보면 아마도 진짜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내가 영국에서 느끼듯이 불편하고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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