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면 살아지지 않아.
살면 살아져..
얼마 전 인기몰이를 했던 폭삭 속았수다. 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들어온 대사이다.
"살면 살아진다..."
많이 들으며 살아왔던 말이지만 이토록 와닿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시골로 이사를 가야 할 때에도, 영국에 와야 할 때에도, 언제나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몰아닥칠 때면 어김없이 그 말을 떠올렸다.
세상의 잣대로 재어보면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어야 할 내가 지금 이 말이 또 떠오르는 이유는 멀까?
40년간 살아오던 방식에서 완전히 바뀐 지금의 내 생활 때문일까?
아니면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느끼는 향수병?
적응과 불편함은 이미 살면 살아지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나는 인생이 힘들어진 20대부터 자기 계발서적이며 동기부여 될 만한 것들을 버릇처럼 달고 살았었다. 나에게 열정이 사라져 간다고 느껴질 때쯤 떨어진 기름을 채워넣 듯 그렇게 열정을 채워 넣고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엄청난 성공을 꿈꾸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생기 있게 매일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그저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몇 개월간 그 연료를 채워 넣지 못하고 있다. 단순하고 그냥 살아가는 삶...
삶의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하루 종일 고민은 물론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멍하니 할 일만 하며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힐링이 되고도 남아 에너지가 풀풀 나야 할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처음으로 아주 평온하게 돼지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눈뜨면 아침은 멀 먹을까, 시간이 지나면 저녁은 멀 먹을까, 집안일하면서 볼 드라마나 찾고 보지도 않던 쇼츠를 그렇게 많이 보며 시시덕거린다.
허덕이며 살 때에 항상 그려오던 내 삶인데 자꾸만 마음이 텅 비어 간다.
그래서 예민해질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시점에 혼자 화가 나고, 우울하다 말하면 욕먹을 수도 있는 나의 상황에서 홀로 와인을 따르는 횟수만 늘어난다.
아이들에게 모진 말투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차려보기로 했다.
아마 살면 살아진다는 것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 길이 멀 때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어떤 짐이라도 지고 싶고, 어떤 길이라도 열심히 가고 싶은 빈털터리 방황자같은 나에게 그 말은 아마도 적합하지가 않다.
할 일이 없어 궁상이다.
지금 이게 내 현실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든지 혼자 찾아내서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를 채워 넣었다. 게다가 남편은 항상 바빠서 아이 둘을 혼자 허덕이며 키웠다. 내 시간을 쪼개어 내야 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재충전을 위해 소중하게 보냈다. 우울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여기에서는 나만을 위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온기가 있는 따뜻한 방한칸이 없다. 햇볕은 몇 개월째 보지 못하는 중이다. 내가 이뤄내야 할 학업이나 책임감이 따르는 일거리는 당연히 없다. 심지어 엄마가 하던 일의 반은 남편이 하고 있다. 나는 그저 밥만 잘해주면 그만이다.
아마 나는 지금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
내 존재 자체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엄마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것에 의미를 큰 의미를 부여해 보았지만 내 깊숙한 내면을 채우기엔 부족하다.
압박 속에서 힘이 들어 대충 살아가기로 마음먹고는 너무 많이 비워내다 보니 이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냥, 살아가기로 했던 것을 안다.
막상 내 텅 빈 공간을 보니 정신이 차려지는 것이 아니더라.
두둥실... 어깨에 짐이 너무나 가벼워져서 내 몸이 정착을 못할 지경이다.
중력을 잃은 사람 같다.
이래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나 보다.
아니, 나는 일을 하고 살 팔자인가 보다.
안주보다는 나만의 일을 해야 하나 보다.
한 번쯤은 일 걱정 안 하고 주부로만 마음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인생에 한 번이라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건만 그 일도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인간이라는 것이 참으로 복잡하다. 편안하게 놀고 싶다 해서 놀게 두면 놀고 싶어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두면 그 일이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갈증이 생길 때에서야 그것이 참... 하고 싶어지는 복잡 미묘한 마음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최선을 다해 질주하고 나서 즐기는 휴식이 진짜 휴식이고
굶고 굶은 뒤 맛보는 음식이 최고의 만찬이고
자유가 없는 시간이 지난 후 가지는 자유시간이 진짜 행복이다.
상식적이고 단순한 이론이지만 알아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불이 뜨거운지 만져봐야 아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약간의 허세와 욕심을 가져보는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활기찬 인생을 위해서 나는 그만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욕심껏 무언가 쟁취할 것을 찾아야겠다.
내가 욕심을 낼 만한 것이 무엇일까??
이제는 달콤한 그것을 그냥 먹지 말고 힘겹게 정한 목표물 뒤에 두어야겠다.
참 웃기게도 먹고 싶은것을 맛있게 먹으려면
스트레스를 받고 땀을 흘려야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워가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