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는 안 먹을래!!

어리석은 다짐

by 김파랑

영국으로 오기 한 달 전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서도 한식은 좀 해 먹겠지만, 웬만하면 거기 사람처럼 빵 먹고살자~! 적어도 된장찌개는 안 해 먹을 거야!"

남편은 머 마음대로라며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었다.


이곳에 도착 후 한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된장은 사들이지 않았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 결국 김치까지 다 담가먹는다고 하는데, 외국 가서도 맨날 밥이나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김치는 사서 먹었고 김치찌개도 끓여 먹었지만, 된장찌개만큼은 먹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오기가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아마도 아이들에게 된장냄새가 베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할까 봐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자꾸만 예전 습관을 고집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음식도 바꿔보고 싶었다.


한 달이 지났고...

남편은 음식 때문에 속병이 났다. 빵과 치즈만 먹으면 울렁울렁거리는 병...

두 달이 지날 때쯤...

나도 병이 났다. 울렁울렁병...


우리나라 종갓집 김치를 사다 먹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김장김치가 너무나 그리웠다. 외국인용으로 맵지 않게 나온 이 김치, 사 먹는 김치는 우리의 울렁병을 극복시켜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된장과 고추장을 모두 사들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우리들은 아침엔 빵을 먹고 점심엔 라면을 주로 먹었다. (아이들은 급식 또는 도시락) 그리고 저녁은 무조건 한식이었다.

그렇게 된장찌개를 한 세 번은 끓여 먹고 울렁병이 조금 나아졌다. 울렁병이 나아지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울렁병이 심할 때는 아메리카노만 먹어도 울렁거렸다. 먹지 않던 주스를 그리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레드와인도 먹지 못했다. 산미가 조금 있는 화이트와인만 사들였다. 물에도 레몬즙을 듬뿍 넣어 마셨다.

그 정도로 토종 한국인인 나는 두 달간 원래 먹던 음식을 멀리하다 단단히 속병이 난 것이다.


된장찌개 몇 번이면 나을 줄 알았던 우리들의 울렁증은 그리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짬뽕을 먹고 살아왔던, 그만큼 얼큰한 음식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본격적으로 나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한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거나 밖에 나가면 빵만 먹어야 했기 때문에 평소 집에서라도 풀어야만 했다.





한국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너무나 맛있었고 맛있는 빵도 많아서 한식의 소중함을 잃었던 것이었다. 외국인처럼 먹고 적어도 된장찌개는 버리겠다고 다짐한 내가 참 가소로웠다.

겪어보지 않고는 이토록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 같다.

40년간 한식으로 다스린 이 몸이 하루이틀 만에 갑자기 바뀌지 않는 것이거늘 욕심이 과했다.

나는 어떤 로망이 있었던 것일까??


영국에 와서 영국사람처럼 먹고 영국사람처럼 생활하면 내 몸이 영국인처럼 건강해지고 아이들의 키가 쑥쑥 커지길 기대했던 걸까? (사실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도 조금 했다. )

막상 와서 현실을 보니 이들을 따라가다가는 나는 병들고 아이들도 아마 병들어 갈 것이 분명했다.

서양인들과 동양인의 차이는 그저 머리카락과 피부의 색이 다른 것처럼 외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몸에 깔려있는 에너지 자체도 달랐다.

이들은 정말로 빵과 고기 조금, 요거트 샐러드 치즈만으로 평생을 배를 채우며 살아온 이들이었다. 반면 특수한 경우를 빼고 우리 한국인들은 아침, 점심, 저녁을 든든하게 먹어야만 잘 살아왔던 민족이다.


그 한국인 중에서도 나는 특히 뱃속이 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재된 에너지가 심히 적은 사람이건만..

현실을 깨닫고 나 자신을 깨닫고 나서야 나의 속병이 다 나았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생활에도 한층 더 적응할 수 있었다.




허세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을 비워내니 오히려 내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외국물로 가득 채워 가겠다는 어리석은 다짐을 버리고 나니 한국으로 한 번씩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목표를 잡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찾는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모든 힘을 다 뺐을 때 내가 향하는 곳이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국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먹고 싶은 것 좀 먹고살면 되지,

살 좀 찌면 어때??

된장냄새 좀 나면 어때??

운동을 좀 하면 되고 냄새는 빼면 되지~! 문제 될 건 없다.


가만히 있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이 낯선 땅에서 발버둥치다 또 한번 진리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간다.

남들의 시선을 거두고
그냥 힘 좀 빼고
자연스럽게 나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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