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에 업은 부모의 선택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이 말을 참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날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먹을 식료품조차 생소하다. 쳇 GPT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그 옛날 먼 이국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아이 두 명이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보내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리고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하는지도..
내가 사는 곳은 사실 동네만 보면 한국인이 양옆 앞뒤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한국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숙사를 배정받았는데 한인들을 한 곳에 몰아넣은 것 같다. 그래서 여기는 영국이지만 자그마한 한국이다. 내가 이 일기를 써야 했던 이유도 아마도 낯선 땅에 적응하는 문제보다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들과 부딪히며 느끼는 심리적인 불편함 때문에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는 꼭 보내야 하는 학교가 정해져 있었다. 법칙이라기보다는 한국인이라면 줄을 서서라도 들여보내고 싶은 좋은 학교라고 하면 맞겠다. 우리들도 저 멀리 한국에서 알아볼 때면 듣는 정보로만 학교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1순위 지망을 했다.
역시나 인기가 많은 이 학교는 자리가 별로 나지 않았고 둘 중 한 명의 딸만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한 아이는...
아무도, 그리고 영국에서도 인기가 그리는 좋지 않은 학교에 배정받았다. 이 나라 시간으로 메일이 왔으므로 우리나라 새벽 2시에 학교배정 통보를 받고는 밤새 남편과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그때 그 학교를 상상하기로는 미국 할렘가에 있는 질 나쁜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그런 학교인 것만 같았다. 학교 출석률이라던지 여러 가지 지표들만을 보았을 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두 아이를 다른 학교에 보내기로 하고 이곳에 왔다.
말 그대로 인기 1순위 학교와 가장 인기 없는 <?> 학교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영국땅에 떨어져 시차적응도 되기 전에 아이들은 바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첫날의 두근거림이란... 좋은 학교에 간 아이보다도 가지 못한 아이의 걱정이 더 컸다.
하지만 첫날 학교를 둘러보았을 때 나의 걱정보다는 괜찮았다. 일단 시설이 조금 더 안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 보였다. 아이가 들어갈 반 창문너머 같은 반이 될 아이들을 보아도 반짝거리는 눈으로 새로 온 아이를 반가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때는 이마저도 내가 내 마음 편하자고 합리화시키고 자꾸 좋은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결론은???
걱정했던 아이는 첫날부터 너무나 좋았다라며 나왔고 좋은 학교라고 들여보냈던 아이는 조금 힘들고 적당히 괜찮았다가 첫날의 소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간을 두 아이에게 각 학교에 대해 듣고 궁금한 것들을 캐묻고, 등하교할 때 선생님과 학교의 분위기를 유심히 살피며 보냈다.
인기가 너무 많아 기대가 컸던 것일지 모르겠으나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 학교는 사실, 방과 후 과정이 있는 것과 학교 운동장 등이 잘 되어 있는 장점 말고는 딱히 더 좋은 점은 없어 보였다. 등교시간에는 학교문 앞에서 교실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이상한 시스템과 한국인들을 약간 차별하는 듯한 느낌 등이 가득했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너무나 많아 우리 아이 반에만 한국인이 3명이나 되었다. 외국땅에서 얼마 안 되는 한국인들을 마주치면, 알지도 못하지만 인사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익숙지 않은 인사에 낯가리는 나는 한 달간 너무나 불편했다.
반면 인기가 없어 한국인이 한 명도 없던 곳으로 등하교를 할 때면 그리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엄청나게 밝은 모습으로 매일매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엄청난 고민이었다.
인기가 많은 무엇인가를 저버리고 혼자 블루오션으로 뛰어들 때의 마음이 아마도 이런 것일까? 그때의 두려움이란 정말 이루 말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이의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는 결국 두 아이를 한 학교로 합쳐야 했고 한국인이 많은 불편함과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 그리 밝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인기 없는 학교로 합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학교로 들어갔다 나온 날 아이가 어떠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처음 이곳에서 학교를 들여보냈다 나올 때보다 더 궁금하고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만약 별로..라고 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새로운 학교의 하루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반응은, 좋았다고 한다. 일단 언니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고 언니가 단점이라고 말한 것들이 사실상 원래 자기 학교와 비슷한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좋은 사람인 것도 엄청난 장점이었다.
휴..
가장 골칫덩어리였던 과제를 해결하고 한 달 만에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지금도 사실 의문이다.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그리 큰 차이점도 아니었다. 다만 이 학교는 조금 가난한 동네에 있었고 외국인이 많았다. 한국 말고도 호주,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은 영국인이고 반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 지표들이 형성된 것이다. 출석률 또는 장애의 분류(이곳은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도 장애 범주에 넣는 듯하다.)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물론 시설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리 문제 될 만큼의 차이도 아니다.
사람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이 이리도 다르다.
여전히 내가 특이하고 내가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인기가 많은 그 학교는 공부를 좀 많이 시키고 방과 후 과정이 잘 되어있다. 역시나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에게 이런 점이 가장 장점으로 통하지 않았나 싶다.
내 교육관 하고는 맞지 않았다. 어차피 10년 넘게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이 현실 속에 영국에서까지 공부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자유롭게 놀면서 영어나 좀 배워가면 그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친구들과 더 많이 놀 수 있는 지금의 학교에 아주 만족한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 것이다.
내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모두가 미쳤다고 할 결정만 내리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힘들었다. 내 인생이 아니라 아이의 인생이 달린 문제였으므로..
모두가 가는 길에서 혼자 뒤돌아 다른 길로 갈 때의 두려움은 사실 엄청나다. 이번에도 그 두려움에 휩싸여 그냥 한번 꾹 참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대로 그냥 적응했을 것이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아서 더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길은 아니고 또 매번 이 길이 맞나?를 되뇌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의 젊은 시절, 그저 사람들의 생각과 대세에 따르다가 결국 물음표만 남기고 후회로 끝난 내 커리어처럼.. 아이들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두려웠고 정말 힘들었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나에게 토닥이고 싶다.
이번엔 정말 잘했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결정하는 것
그것으로 된 거야.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