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끝내주는 나의 첫 독립생활

거머쥔 철밥통과 씨름하다.

by 김파랑


3년간의 쇼생크와 다름없는 굴을 지나 다다른 곳 , 바로 공무원 연수원이다. 3년 동안 숨막히는 고시생활, 그 굴을 파고 나오느라 똥물을 뒤집어 쓰고 흙탕물을 파헤쳐 나왔기에 그 끝에 나의 몰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곱슬곱슬 한 검은머리는 힘을 잃은 듯 쉰 곱슬머리로, 낯빛은 팩트 호수로 따지면 25호 정도 되는 구리빛도 아닌 검누렁 색이라고 할까?

만원짜리 하얀 셔츠에 만 오천원짜리 정장 바지.. 열심히 힘을 주었지만 부족한 돈으로는 온실 속 화초를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잡초같은 나의 모습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날것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연수원에 들어와 인간다운 생활을 하며 반짝반짝했던 청춘의 예전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 기쁨도 잠시 한통의 문자가 나의 모든 혼을 빼앗아 버렸다.

합격이라는 문을 향해 끝도 없었던 굴을 빠져나와 잠시 동안 쉬고 있던 곳. 공무원 연수원...

그저 한치 앞도 못보고 하루하루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띠리링~~! 김**님이 근무할 곳은 당진우체국입니다.

두둥 !문자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말도안돼 , 당진?? 당진이 어딘데??? 서해안?? 태어나 한번도 발도장도 안찍어본 곳이다.

중도 포기한 죄가 나를 바다 끝까지 몰아 붙일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방직, 국가직, 서울시 모든 공무원 시험은 다 봤는데 가장 가고 싶은 지방직은 똑 떨어지고 국가직과 서울시 시험만 붙었었다...게다가 서울시는 영어면접에서 망해 두 번째 똑 떨어져버렸지.. 그만 포기하고 국가우정직 공무원을 마지못해 선택했었다. 3년이란 그 시간이 너무나 길었기에..그만 이 굴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곳이 허허벌판이든 사막이든..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목적지를 포기한 죄값을 서서히 받아가는 중이었다.

꽃도 피우지 못했던 20대 파릇한 청춘에 벌써 인생의 진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주일 뒤

그럼에도 나의 첫 직장이니까..나는 공무원!이니까 !! 설레는 마음으로 당진을 향해 간다..

차를 타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참으로.멀다멀당의 당.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 인사담당자가 나와 함께 간 가족들을 맞이하였다. 금방이라도 침 흘릴 것 같은 입술과 눈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작은 눈으로 웃는것도 찡그린것도 아닌 채 나를 맞이한다.

당진우체국을 잠시 보여주며 소개하고 내가 지낼 숙소로 향했다..

대답도 뜨뜨미지근하고 멀 물어봐도 흐릿하게 대답하고 밥을 사준다는데 메뉴도 못고른다. 아니 안고르는 것인가? 아무튼 답답해 죽을 것 같다. 한방에 별명을 지어버렸다.

답답이.(이 사람은 앞으로 나의 공직생활이 어떨지 보여주는 대표인물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논밭이 펼처진다. 여기는 읍내도 아니고 작은 시골동네 같은데 직장과 숙소를 이렇게 오랫동안 달려야 함에 머리가 멍해진다.

이 논밭을 20분을 내내 달리고 달려 매일 출퇴근을 해야한다..온지 한시간도 되지않아 계속되는 충격에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숙소는 우체국 옥상 위에 콘테이너 박스식으로 지어 집3채 아니 방3칸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그렇게 집을 만들어 놓았다.

멧돼지 몇 마리가 내려와서 들이 박으면 금방 무너질 참이다. 물론 멧돼지가 내려와도 이상할 것 없는 동네.

그래도 깨끗해서 좋아보였다. 밤이 되기 전까진..

몇 가지 급한 생필품들을 마트에서 사다 놓고, 텔레비전 하나만을 주문해 준 나의 엄마는 같이 온 언니와 함께 덩그러니 숙소에 놓고 돌아갔다.



밤이 되었다. 칠흙같은 어둠이 깔렸다. 국어책에서만 보던 ‘칠흑같은 어둠’이 무엇인지를

나의 첫 독립생활을 해야하는 집에서 보았다.

그 어둠속에 현관문을 열면 귀신머리처럼 휘날리는 나무가 한 그루 있어 마치 손을 저으며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날 잡아갈까 무서워 내 집이지만 해가 뜰 때까지 현관문도 열 수가 없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철커덩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갈 수도 없는 것이 교도소가 따로 없다.


‘그래도 공부하던 날들과는 다르겠지, 그래! 훨씬 나은거야~ 집도 있고 맘 편히 티비도 볼 수 있고 ’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먹고 씻고 잠만 자야하고...게다가 요즘같은 세상에 보기드문 기름보일러라 조금 따뜻하게 살면 쥐꼬리만한 월급 기름값으로 다 나갈판이다.

자고 일어나면 부엌과 거실을 분리하는 창문에 서리가 맺혀있다. (허탈웃음만 난다.)

한겨울엔 집에서 손에 입김을 불어 넣어야 한다..

도저히 안되겠다! 집안에 히타를 들여놓기로 했다..

촉촉이 생명인 20대 여자의 얼굴이..찢어질 것 같지만 따뜻하다. 촉촉하면서 따뜻해 지기란 이곳에선 애초에 불가능.이다.





관공서는 몇 번 안들어가 봤지만 항상 들어가면 느껴지는 시멘트의 차가움이 있다. 그 특유의 어두움과 쾌쾌함이 있다.

나는 드라마에서 보는 멋진 건물에서 또각이를 신고 커리어우먼처럼 일하고 싶었다

‘또각이는 개나줘라...’ 또각이 신고 돌아다니다 넘어져 온몸이 다칠 곳 같다.

내 인생의 설레이는 첫 직장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운동화나 신자‘였다..

하아,,,,,,,,,한숨이 절로 난다

'그래도 난 아직 청춘이다! 다 괜찮다. 파이팅이다!!!! ' 하고 억지로라도 힘을 내본다.

그런데.........


파이팅 할게 없다..전임자가 일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전임자도 자기 일 배우느라 연락도 없고 아무일도 없다..

그냥 방석밑에 폭탄을 놓고 평화로운 척 앉아 있는 기분이다.

언제 터질세라...분명 터질텐데...저 핀을 언제 뽑는지 제발 빨리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그 폭탄은 퓌식퓌식 김을 새내며 폭발하지 않을 만큼 조금씩 일을 해나갔다.


이곳은 엄마역할의 우체국 하나에 12명의 자식 우체국이 있다. 나는 엄마우체국에서 서무를 보게 되었다.

당연히 자식 우체국들간에 서열이 있다. 이 곳은 사람이건 기관이건 실적이건 모든 것을 줄을 세운다.

어느 줄에 몇 번째 있는지가 굉장한 관건이다.


어렵게 이틀이 지날때 쯤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서열2번째 우체국의 2인자가 전화를 한다.

다가오는 회의 참석자명단을 불러달라고 했다. 명단에는 이름으로만 적힌 20여명의 사람이 적혀있다.

먼지 모르지만 허둥지둥 찾아네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또박또박 이름을 불러준다..나름 뿌듯했다.

...................이상하다....

말이 없다...불길한 3초가 흐른 후

나지막하게 깔아놓은 목소리로 잘근잘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지금 머하는 겁니까.? 국장님들이 친굽니까? 이름을 그렇게 불러대다니요? 일은 아직 몰라도 적어도 그 정도 상식은 가지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안이 벙벙하다. 영문을 모르겠다.

내가 부른 명단의 이름들이 바로 귀하디귀한 12명의 자식 우체국의 장(우체국장)님들 이라는 사실도 그 분의 비난속에서 알게 되었다.

감히 이름을 불러댄 것이다..

침착하지만 칼로 쑤시는 말만 하는 전화를 간신히 끊고 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우체국 앞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간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의 귀신교도소 같은 숙소 적응을 위해 며칠 같이 있어준 언니에게 전활건다.


“당장 짐싸..난 그만 둘거야 ! ”


그러고는 엉엉 울은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언니가 번개보다 빠르게 왔다 .


“무슨일이야?? 무슨일인데 이래??응?? 그래그래 어쨌든 일단 들어가~ 그만두더라도 정리는 하고 끝내야지~!”

언니가 나를 달래고 얼러서 들여보냈다.

흑...

그때 나왔어야 했다. 들어가서 정리하지 말았어야 했다. 언니가 미웠다. 홧김에가 아니라 침착하게 끝을 잘 맺어야하는 어른처럼 굴려다 인생 몇 년 말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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