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학생활 시작, 제2의 공직생활 시작
학교로 돌아온 나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걸어도걸어도 즐겁고 돈이 없어 라면만 먹어도 즐겁다. 휴직하는 대신 생활비며 학비는 일절 안받겠다는 야속한 약속을 엄마와 하고 왔기에 학업에 알바까지 해야했다.
그래도 좋다. 일자리는 넘쳐나고 버스도 넘쳐나고 밤까지 네온사인이 밝혀 이제는 귀신나올까 무섭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아프고나면 걷고 먹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다고 했던가..
내 눈앞에 다니는 수많은 버스가, 그리고 저녁을 밝혀주는 전등불 하나하나가 다 눈물나게 고맙다.
치킨집과 슈퍼가 많은것도 좋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과..가족이 있는 평범한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들이..
항상 당연하듯이 누려온 것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나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 **
이제 힘들어도 멋진 것이 하고 싶다.
꿈많은 젊은 여성을 시골에 1년 남짓 박아둔 부작용이랄까.. 그냥 가장 멋진 것, 화려한 것,그런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본 직업중 가장 멋져 보이고 가장 화려해 보이는 승무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더 하고 싶은게 있었다.
시험공부하느라 그냥 흘려보낸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듯 놀고도 싶었던 것. 마구마구 흥청망청 놀고 싶다.
왜냐면 그럴 수 있는 시간은 대학생활이 유일하다는 것을 이른 직장생활을 하며 알아버렸기에..
사람은 그 순간에, 그 나이에,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한다.
사실 나는 모든 것이 다 어긋나면 돌아갈 곳이 있었다.
실직자는 아니었다.
지원한 모든 회사에서 다 떨어진다해도 그래도 공무원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배수의 진을 치지 않는다는 것은 ..
엄청나게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그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남자도 만나고 술도 먹고 뒤늦은 소개팅 미팅 다 해보고, 그러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2년이란 황금같은 시간이 그리도 쏜살같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휴직하면서 차고 온 쇠사슬이 슬슬 다시 잡아 당겨질 때였다.
나이는 그사이 20대 중후반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그냥 그만두기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사실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나보다 3학번 후배지만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나이 많아 학교 다닌 이유가 있어!! 내가 너희보다 언니는 언니라고~! '
먼지 모를 열등감에 찌질이처럼 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멋드러진 곳에 취직하고 싶지만 그것도 안되고 ..
3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취준생이 되기는 싫고 ..그놈에 커리어우먼은 되야겠고
그런 우왕좌왕 바보같은 생각만 하면서 머하나 제대로 확실히 해논 게 없이 휴직기간은 끝나갔다.
‘하늘이시어...너무합니다. 이 많고 많은 우체국중에 왜 또! 당진으로 저를 부르싶니까..?’
당진은 신규자들에게 기피지역이기 때문에 인력충원이 항상 안되는 곳이다. 휴직기간이 끝난 내가 돌아갈 자리가 남아있댄다. 어마어마한 늪이다.
복직할 우체국은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오시게’ 당진우체국!
.
.
이번엔 귀신숙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원룸을 구했다.
그 사이 당진은 군에서 시로 바뀌어 원룸부터 아파트까지 많은 것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근무지는 열두자녀 우체국 중 한 군데로 발령받았다.
답답이는 없었다.
평생을 이곳에 뼈를 묻을것처럼 뉨뉨뉨들에게 충성을 다하더니 다른 직렬의 기관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속 하나 모른다더니 틀린 말이 하나없다.
엄마우체국이 있던 곳은 그나마 시내중의 시내였던 것인가.. 발령받은 우체국과 비교하자면 휴직 전 있던 엄마우체국은 도시같은 곳이었다.
내가 앞으로 일할 우체국은 말그대로 논밭이 있는 정말 시골이었다.
읍도 아니고 리이다. 시골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도 없었다. 평화롭고 조용하고..아늑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생각은 생각일 뿐,
아침에 드넓은 논밭을 가로질러 버스에서 내리면 퇴비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집한채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작은 우체국이다.
그나마 다행인지 인구가 적고 워낙 규모가 작아서 이번엔 우편물도 받고 금융업무도 하고 서무 업무도 하고,
하루가 바쁘다.
진짜일이라는 것이 대부분이라 하루가 잘 가고, 힘들지만 그나마 보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공직을 유지하는 길이 이런것일까? 2년전 그때와 변함없는 것은 자잘자잘한 것들에 목숨을 건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 참 견디기가 어렵다.
특히 점심시간이 곤욕이다.
직원1: “이리와 밥먹어~”
“괜찮아요, 제가 민원보고 2차로 먹을게요~!”
직원: “아니야 얼릉와. 그냥 와~ 식기전에 먹어 ~!”
매일매일 반복되는 점심시간 대화이다. 제발 먹고 싶을 때 먹게 해줬으면 좋겠다.
먹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챙겨준다고 하는 말이라 뿌리치지도 못하고 그득찬 배에 꾸역꾸역 매일 밥을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잘 해낼 수 있다. 이번에 진짜 나를 괴롭히는 것은 보험판매이다.
여기는 보험도 가입시켜야 한다! 남에게 부탁같은 거 한번, 권유같은 것 조차 제대로 안하고 산 소심하고 어리숙한 나에게 보험판매는 그 자체로 벅차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명절마다 쇼핑실적도 거두어야 한다..우체국 쇼핑이란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인당 100건씩 ...가장 쉬운 방법이라 불리는 것은 김 판매.
일단 김을 100박스를 산다. 그렇게 내 실적을 올리고 사놓온 김은 우체국에 전시하여 판다...
모두다 팔리면 땡큐고 아니면 내가 가져가 가족들과 다 먹는다. 먹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보험팔고(실적을 위해 본인거 집어넣고), 남은김 사먹고 ...그나마 쥐꼬리만한 월급 다 사라지겠네....’
우표도 팔아야한다..연말에는 연말카드도 팔아야한다.. 모든 것이 다 실적이다...모두 다 팔아야한다...내 영혼까지 팔아야 여기서 버틸 수 있다..
이번엔 3개월만에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휴직 2년 사이에 와있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가끔은 모여 이 곳이 얼마나 거지같은지 질겅질겅 씹어가며 조금의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 위안은 단지 그때뿐이다. 달라지는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