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그리고 다시 시작이 반복되는 삶

박차고 나온 문을 다시 열어보다.

by 김파랑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딱 일주일만 쉬기로 했다. 식구들이 한 번씩 쯧쯧거리고 구시렁거렸다.

“사서 고생 많이 했다! ”

“좋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오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

나는 식구들의 말,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 말들이 너무나 싫었다.

인생 쉽지 않다.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순 없다.. 다들 참고 산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 구해서 사는 게 최고다.. 네가 멀 몰라서 그런다..

참 희한한 애다... 등등

귓가에 윙윙윙 거려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상태까지 치닫고 있었다.

세상과 문을 닫으려던 찰나..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낙담하지 마!! 나는 많은 걸 배웠어! 그게 중요한 거야.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밑자금이 없다는 거지, 너무 바위에 계란치기를 하려했던 거잖아. 가만... 그렇다면 어쨌거나 밑자금을 만들어야겠구나!!'

...음,아르바이트를 할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밑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목표가 정해졌지만 당시 내 나이가 스물아홉을 바라볼 즈음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심적, 체력적으로 불가능이었다. 일단 아르바이트로는 밑자금 모으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만 하다 탈진해서 다른 공부를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면서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공직을 다시 기웃기웃거려보았다.

이미 사정을 알고 들어가는 것이라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정의감이라 씌운 아집만 없애고 적당히 적당히만 하면 되지 않을까..?’란 또 한 번의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그렇게 다시 공직의 문을 향해 방향을 꺾어보았다.




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예전에 비해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공무원 시험이었지만 때마침 내년엔 대거 뽑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지역의 시험시기가 몇 달 미뤄진 참이었다. 이것은 들어가라는 신의 게시 같았다.

'그래! 여기서 시청으로 들어가면 예전과는 아주 다를 거야. 살만 할 거야.. 집이 있으니 그렇게 우울하지도 끔찍하지도 않을 거야.! 8월 시험에 무조건 합격한다.! 딱 일 년만 공부하고 그 뒤에 내 꿈을 위해 다시 달려갈 거야!'

바로 나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몇 년 전보다 더 처절하게 더 철저하게~!

최소한의 잠만 자고 기본적인 식사만 하고 아주 조금씩 뇌가 쉴 틈만 주고는 하루종일 공부만 했다.

그저 시험 합격이 아닌 꿈을 향한 징검다리였고 그리고 이젠 돌아갈 곳도 없다는 배수의 진까지 쳐놓은 상태라 더더욱 몰두가 되었다.

그리고.. 지원금도 없었다. 20대를 다 바쳐 내내 일하고 다녔는데 수중에 남아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나 홀로 공부해야 했었다. 일단 도서관을 이용하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면 동영상 강의 비용과 책값만 들이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방법은 그러하면 되었고 이제 기분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다.


기분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바로..


참으로 서글프다는 것.

다 함께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공부하는 세상에도 귀천이 있었다. 필기구와 머리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하는 세상이다.

강의 하나하나도 비싸지만 공부를 위한 아이템들에도 등급이 있었다. 일명 공부계에도 명품이 있는 것,,, 럭셔리하게 할 것이면 살 것이 끝도 없었다.

나는 가장 최소한의 돈으로 밀고 나갔다. 합격수기를 보면 그렇게 그렇게 처절하게 불쌍하게 공부한 사람만이 합격한 것처럼 보였는데 상황만 보자면 내가 딱 그 수기속의 주인공이었다.


모든 일이 다 피 터지는 경쟁 속인 대한민국에서 수험공부라는 것도 고통의 끝을 찍어야만 끝이 나는 정도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본능조차도 꾹꾹 눌러 담아가며 공부를 해야 그 어둠의 긴 터널을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확실하다.

매일 도시락, 집밥만 먹다 보니 도서관에서 파는 그 싸구려 라면이 스테이크보다 맛있고 어쩌다 엄마가 사 오는 닭강정은 나의 모든 고충을 다 날려버릴만큼 최고의 만찬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마음 편히 드라마 3편만 연달아 보기! " 라고 대답할 것이었으니..

공부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욕구를 눌러 담고 살게 하는지 알 것이다.


하루 공부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도서관에서는

~~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나가라는 뜻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청소아주머니들이 들어올 때까지 공부를 했다.

'왜 끝날시간이 될수록 집중이 잘되고 더 하고 싶어 질까..? 하루종일이 이 시간만큼의 집중력이면 참으로 좋겠다'

아쉬울만큼 공부를 하고 마지막으로 나와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간다.

그 시간만큼 그렇게 쓸쓸한 시간이 없었다..

이어폰을 꽂고 귓속에서는 윤권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합격하면 윤권같은 남자를 만나야겠다.'라고 윤건의 노래에 빠져서 매일 하는 생각이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데이트도 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어둡고 쓸쓸한 길을 헤쳐나간지 꼬박 8개월,

드디어 시험날이 왔다.




예전에는 시험 기간이 도래하면 볼 수 있는 시험이 5~6개가 되었다. 나의 본적지 해당 지역, 현재 사는 주소지 지역, 서울시, 국가직, 공사 등등

그래서 무엇이든 하나만 합격해!라는 심정으로 시험 뺑뺑이를 돌곤 했는데 이제는 정확히 일하고 싶은 곳에 붙어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에서 잘 알고 있었다. 나의 고되었던 당진생활에서 건진 값진 교훈으로, 내가 사는 지역의 시험합격만을 목표로 왔다. 한우물만 판 것이다.

아, 물론 서울시도 함께 본다. 서울도 주거비용까지 하려면 빠듯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시장 근접성이 매우 좋으니까..

그만큼 나는 공무원이 되는 것을 쇼핑몰을 준비하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단단한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을 걸으며 상상하다 보니 또 다른 인생의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결혼...

나이가 이제 30을 눈앞에 둔 나는 현실적인 내 상태를 알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만 결혼도 잘하는 이 사회.. 그래서 시험을 합격하지 않으면 직업도 없고 쇼핑몰도 없고 결혼도 못하는 아주 절망적인 상태를 염려하며 터지지 않는 코피가 터질 때까지 열심히 달려왔던 것이다.


'공무원이 꿈과 목표인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이 사회는 너무나 절망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던 나였다.

그런데 결국은 나조차도 이렇게 마지막 끈으로 이 길에 들어서보니 왜 공무원의 인기가 많았는지 이해가 조금은 되었다. 아마도 다른 세상은 너무나 폭풍이 몰아치기에.. 그 세상에 비하면 공직은 잔잔한 파도뿐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나는 잔잔한 파도는 싫었다.

'비록 지금 나도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꿈 위에 진짜 나의 꿈이 있다.'

이 마음을 단단히 새기며 이 길을 인생의 마지막길로 단정 짓지 않았다.


꿈이 있다는 것은... 희미하고 어둑어둑한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된다!!


내가 20대 내내 모르고 한 고생과 사서 한 고생 도합 10년을 해가며 얻은 참된 교훈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심정으로 집 근처에서 목표로 한 첫 번째 시험을 치렀고 며칠 뒤 서울시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 서울시 시험 당일

새벽 5시 기상.. 간단히 세수하고 밥을 먹고 몇 가지 책과 필기구를 챙겨 기차역을 향해 간다.

그렇게 6시 기차를 타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영어 단어장을 손에만 든 채 생각에 잠겼다. 이런저런 파란만장한 서울생활이 지나간다..

“참으로 파란만장했지 흐흐흐...”

그 힘든 시절이 추억이 되어 미소짓게 했다.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어딘가에 내려 오르막길을 올라 힘들게 도착한 시험장에서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나왔다.

1년을 공부하고 몇 시간 만에 그 결과를 내야 하는 무서운 시험이다. 물론 1년이면 짧은 축에 속하지만...

군중들이 가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내려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도 힘들고 따사로운 햇살에 어지럽기까지 했다.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게 대장정의 서울시 시험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시험을 치른 나는 시험합격자 발표 날만을 기다렸다.

8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온 나에게 터널 끝 밝은 빛을 볼 수 있을까?

드디어 탈출을 할 수 있을까?

대학생활 도중 처음 공무원 공부를 했을 때도 너무너무 힘은 들었지만 그때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합격만이 목표였다면 지금 나에게는 불합격이 주는 그 앞날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합격에서부터 시작되는 앞날을 다 그려놨기 때문에 불합격은 그 길에 한 걸음도 못 내디디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근두근두근....

이렇게 시험결과에 두근거려 본 적이 없다...

/클릭클릭..../

합격자명단!!! 사실 이번 시험엔 140명이라는 역대급 최고 많은 인원을 합격시켰기 때문에 몇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게다가 수험번호로 나열해 놓아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없는 건가?? 긴장감과 절망감이 왔다 갔다 하던 찰나 나의 수험번호를 발견했다!!

다시 한번 수험증을 들고 수험번호 하나하나 맞춰보았다! 그렇다 바로 내 수험번호이다!!

당진으로 들어가게 했던 6년 전 합격당시엔 그렇게 기쁨도 없더니 이번에는 너무나 기쁘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 찾아온다.


그래 바로 이거지!! 합격의 기쁨은 이런 거여야지!!!

눈물은 안 난다.. 당진에서 아니 지난 6년 동안 청춘에 흘릴 수 있는 눈물은 다 흘렸는지 이제는 울고 싶지 않다.

그냥 손발이 조금 달달 떨릴 뿐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어둠의 터널을 잘 통과했다. 아니, 나는 이 터널이 마지막 터널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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