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요??
대학 때부터 서울로 항상 오고 싶어했던 나는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나이 27세에 서울삶을 살게 되었다.
현실과 이론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다르다는 진부하지만 무조건 맞는 말이 있다. 게다가 나는 그저 환상만이 있었다.
백조는 매우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있지만 그 물길 아래에는 치열한 발길질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백조의 우아함만을 보고 달려온 나는 이제 그 보이지 않던 치열한 발길질이 무엇인지 맛볼 차례였다.
모아놓은 돈 한 푼 없이, 어찌 되었든 월세는 벌 수 있다는 자신감과 패기 하나로 올라온 나는 가진 것 없는 서러움을 일을 시작도 하기 전 친구와의 동거생활로 느꼈다. 말로만 듣던 룸메이트와의 전쟁이 한 달도 가지 않아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지방에서 올라와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밖에 없던 차였다.
만나면 이야기가 항상 잘 통하고 헤어지기가 싫을 만큼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고 생각했던 친구와의 밤낮없이 진행되는 서울투어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결국 갈등의 문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녀도 보았다. 일자리도 갈 곳도 많은 서울..
서울은
밤이 없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람도.. 밤새도록 보인다..
버스도 지하철도 밤 12시까지 다닌다. 내가 20년 동안 살던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꿈꾸던 밤의 북적임이다..
밤의 휘황찬란함이다..
눈이 부시다..
그런데.. 어딘가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워지는 것 같다..
나는 목표가 있었다. 바로 쇼핑몰의 완성을 이루는 것. 그리고 그 사업의 성공.
그러자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친구와 나의 상황에서의 예산으로는 충분히 멋진 집이었지만, 너무나 좁았다. 누우면 꽉 차는 면적의 복층집에 두 명의 성인 여자가 산다는 것은 기본 필수품만 놓고 살아도 남는 공간이 없었다. 나의 여유 공간이라고는 없었다.
옷을 사입해 와도 머리에 이고 잘 판이다. 사실 사입은 쇼핑몰의 마지막 단계인 것을 안다. 그래서 그것을 위안 삼아 다른 것부터 해보려 했다.
옷을 좋아하는 나에게 서울은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어딜 가도 쇼핑할 곳이 천지였다. 그저 책 한 권 읽으러 서점을 들어갔다 나와도 신발 구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 많은 곳을 다니자니 이쁜 옷을 입고 꾸미고 싶기도 했다.
당진에서 청춘을 보내면서..나의 청춘은 어두웠었다.
어두운 시골에서 너무나 무서웠기에 이쁘게 꾸미기는커녕 평생 안 입던 옷장 속 옷만 입고 다니던 나였다.
물론 내가 지레 겁먹고 소심한 마음에 자초한 일이었겠지만 가장 어여쁠 나이에 꾸며보지 못한 한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서울은...이곳은 꾸미고 또 꾸며도 절대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멀 입어도 초라해 보이고.. 시골처녀 같아 보이기만 했다.
나의 목표는 따로 있는데 자꾸만 잿밥에 신경을 쓰고 남의 시선에 조금씩 신경을 쓰면서 자존감이 점점 작아졌다.
그 작아진 자존감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겉치레를 위해 모든 생활비를 다 써가는 나였다.
내 인생에 사치란 있을 수도 없고 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사치할 만큼의 돈도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던 나였다.
'돈에 욕심이 자꾸 생긴다.. 서울은 돈이 없으면 너무나 초라하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힘들다... 빈부격차가 느껴진다..'
'좋은 차도 사고 싶고.. 좋은 집에 살고 싶고 좋은 옷이 입고 싶다.'
당진에서는 그냥 굴러만 다니는 차 한 대면 만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그런 차는 줘도 못 탈 것 같았다.
허기지는 마음을 달래려고 나는 혼자서든 친구와 함께든 언제나 서점을 들락거렸다.. 자기 계발서는 모조리 꺼내서 드문드문 읽어보았다.
모두 다 별로였다..
나는 마음의 길을 잃었기 때문에 어떤 책도 와닿지가 않았다..
그래도 술보다는 책이 더 나았기에 겉표지만 보더라도 서점을 들락거리던 나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어떤 불그스름한 책에 시선이 꽂혔다.
한 두 장 펼쳐보고는 바로 나의 마음을 뺏어간 책...'시크릿'이었다.
그리고 다시 꿈꾸었다.
시크릿의 힘은 대단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희망없이 하루하루 견디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이에게 대단한 힘을 주는 책이었다.
(서울생활에 파김치가 되어 쉬어가던 나를 일으켜준 시크릿 저자에게 매일 감사해한다. )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정신을 차렸다.
친구와 로션 한통으로도 싸우고 말도 안 되는 사소함으로 부딪히면서 짐을 싸서 나가기를 여러 번, 고시원을 구해보기도 했다. 방황하며 밤에 나가 유흥을 즐기고 꿈에 그리던 모든 것을 다 해본 나에게 더 이상의 방황과 환상은 없었다.
그 방황의 끝엔 허무함만이 남아 이제는 나를 유혹할 잿밥도 없었다.
해보면 별거 없다.. 사람은 언제나 그렇다..
못하면 더더욱 그 환상이 커져서 아쉬워한다..
한 번쯤 경험하고 별거 아님을 아는 것도 참 좋은 것이다..
이젠 직진이다.
오픈마켓 강의를 찾아보니 무료강의도 많았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걷고 걸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강의도 들어보고 동대문에 일자리도 구했다.
아침 8시부터 4시간만 일하는 황금같은 일자리 었다. 이쪽에선 무경력자인데도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동대문의 사입 흐름을 다 파악할 것이다!'
갑자기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다시 한번 열정을 뿜어내는 되었다.
'역시 된다니까 , 나는 될 놈이지 ~! 안 되는 건 없어.'
쇼핑몰 CEO가 되어 말로만 듣던 억대 매출을 올리고 멋지게 사는 나를 그려보았다.
조그마한 불안감이 올라오려면 다시 한번 시크릿을 읽고 되뇌며 미래를 상상하고 긍정적인 혼잣말을 몇 번이고 했었다.
처음 일주일은 참 순조로웠다.
그러나 어리숙한 나의 짧은 생각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바로 이주일째부터 시작되었다.
도매상은 당연히 호객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저 옷이 이쁘면 사입해 가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물건으로 승부를 본다고 오산했다.
사실 나의 오산은 아침 지옥철을 경험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기도 했다.
두 번째 오산,
동대문! 그곳은 내가 생각한 그저 활기만 돋는 그런 곳도 아니었고 나라는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소매몰보다 더 피 터지는 경쟁과 그곳에서 악착같이 일해야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쇼핑몰계의 거상이 지나가면 말 그대로 그 사람 잡기 전쟁이 시작된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하는 호객행위와는 차원이 다랐다.
정말 바짝 엎드리고 알랑방구를 뀌어야 한다. 특히 거상에게는 옷도 반값에 주었다. 왜냐하면 그 거상의 손에 들어가면 주문량이 폭주한다는 고정화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상 잡기 등 큰 업체의 사장이 이곳에서의 고객이 되어 어차피 여기도 호객행위를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나는 판매하는 옷을 한 두벌씩 모델처럼 입고 일을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업이었다. 당연히 매출은 급격히 줄었다.
그 당시 어리숙한 나의 변명을 둘러대 보자면, 직접 옷을 입어본 나는 옷의 질이 굉장히 좋지 않음을 느꼈었고 그래서 옷의 칭찬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 옷을 사가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세상 이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스스로 진주를 찾아내는 사람은 없구나.. 그래서 과대광고가 생기고,, 물건의 값어치보다 광고가 중요한 것이다.'
영업사원을 그리도 많이 두는 이유도 다 똑같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꿈의 세상은 없었다.
'나의 생각이 잘못된 걸까? 퇴근하면 조막만 한 방에 앉아 생각하다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나라는 사람은 샌님 같은 존재였고 너무나 어리석고 그저 눈에 힘만 잔뜩 준 새끼고양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호기심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자 무리에 들어간 꼴이었다.
잡아먹지 않았어도 잡아 먹힌 것 같았다.
양반 같은 나는 이곳에선 답답한 존재가 되었다. 답답이가 이번엔 내가 되었다.
내가 공직 생활하며 답답이와 소심한 공직자들을 보듯이 이곳 사람들이 나를 딱 그렇게 보았다.
뿌린 만큼 거두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월급이 들어오던 날 해고 통지도 함께 받았다. 태어나서 사표는 써봤어도 해고는 처음 당해보았다. 해고와 함께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육체는 이미 불규칙한 식생활과 인스턴트식으로 망가졌고 마음마저 갈퀴갈퀴 찢겨졌다.
'돌아가야 한다.. 일단은 돌아가자.. '
도망갈 생각부터 했던 나였다.
참으로 사는 게 무엇 하나 쉽지가 않다
어디서도 적응 못하고 견뎌내지 못하고 돌아가는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결국 여기서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 같은 내가 너무나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