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는 고군분투했다.
집에 알리지 못하고 무작정 사표부터 쓰고 나온 나였기에 갈 곳이 없었다.
다행히 프리한 집안의 친구 한 명이 나를 받아주었다.
며칠 친구집에서 친구와 함께 지내던 중 당진우체국의 전화 한 통으로 엄마도 가족들도 모두 나의 퇴사 소식을 알았고 나는 민망한 얼굴로 집으로 들어갔다..
나를 내칠 것 같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그저 한숨은 쉬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게다가 그동안 주말마다 내 얼굴이 어땠는지 몰랐을 리가 없었다.
(일요일은 눈뜨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표정으로 1년 넘게 보냈었다.)
너무나 무서웠지만 엄마는 엄마였다..
포근했고 밥도 주었고 날 받아주었다..나는 엄마를 머라고 생각한 거지?
먼저 그만두라고 말해주지 않았고 참고 견디라는 말만했던 엄마라서 나를 이해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우리가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
자기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것과 비교하기 때문에 절대로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전혀 틀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렇게 튕겨 나온 딸내미를 내칠 엄마는 아니었다.
앞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거나 금전적으로 의지하는 일 없이 혼자서 다 헤쳐나가겠다는 야속한 약속을 또 한 번 하는 나였다.
그래야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인서울을 하기 전.. 집의 온기를 받으며 이곳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쇼핑몰을 하려면 포토샵 정도는 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해야겠지'
4가지로 굵직하게 할 일을 정리해 본 결과 가장 어려운 숙제는 당연히 컴퓨터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독한 컴맹이었으니까.....
하필인지 기적인지 운명처럼 *직업전문학교. (일러스트레이션 포토샵 등의 강의를 해주고 취업까지 시켜주는 국비지원학원) 광고가 붙은 버스가 눈앞에 지나갔다.
바로 그 직업전문학교라는 학원을 찾아가 등록했다. 그런데 이건 거의 정말 학교다. 9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주 5일 들어야 한다.
출석체크가 무료수강의 조건이다.
그 조건만 채우면 가르치고 매달 적당한 용돈도 주고 취업까지 시켜주는 곳이다. 정부의 지원이 빵빵하다. 정말 좋다. 실직자들 관리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서울 사는 친구 따라 간간이 동대문도 가보았다.
언제나 동대문 시장은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직과 비교하자면 더더욱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그 시장에 처음부터 빠져들었었다.
'다리가 아파도 잠을 안 자도 밥을 못 먹어도 좋다. 재미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인어공주의 마음이 이랬을까? 자스민 공주가 이런 마음일까? 세상밖에 나온 세상물적 모르는 공주님의 마음이 바로 그때의 나였다.
그저 시장조사처럼 둘러보기만을 몇 차례.. 도매가 아니라 소매로 옷 몇 벌 사보기를 해보고 본격적으로 사입을 하러 갔다.
차도 없고 경험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나에게 사입은 그냥 옷사기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몇 푼이라도 남기며 팔기 위해 정한 하한선을 맞추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사장님들은 나처럼 풋내 나는 그저 일반소비자 같은 사람에게 싸게 옷을 내줄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전 시장조사를 다닐 때 가장 싸다고 생각했던 시장을 돌며 적당한 품질의 적당한 가격을 부르는 가게를 찾아내었다.
겨울옷이라 그런지 색깔별로 5개만 샀는데도 한 보따리 가득이었다.
점점 체력에 한계가 온 나는 서둘러 소품으로 쓸 모자 몇 개 구입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혼자 동대문을 누비고 다닌 건 엄청난 의지가 있기에 가능했고 말그대로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인 거 같다.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짐을 풀어보니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내가 데려온 아이들의 단가는 단돈 몇천 원을 붙여야 그나마 오픈마켓에서 가격경쟁을 해볼 만한 수준인 것이 문제였다.
'남는 게 없더라도 일단 올려보자. 주문이 들어오기까지 한 루트 도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가격문제는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했고,
이번엔 두 번째 난관이다.
모든 사진이 조명이라는 것을 사진을 찍어보고는 알았다. 포토샵으로만 될 일이 아니었다.!
언니에게 빌린 DSLR 사진기 하나 들고, 사입옷 5벌 들고 모델처럼 키 크고 마른 동생(내 눈에)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분명 사람이 없는 곳이 있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 조명이 가장 많고 공짜로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곳은 백화점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 찍기엔 왜 이리도 창피한지... 인적이 드문 곳을 빠르게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곳이 있다..!? 아니, 그런 곳은 없었다... 항상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구석진 곳도 사람이 없진 않았다. 당연하지만 백화점에서 계속해서 사람이 없는 곳이란 없다.
'그래! 내가 지금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다!!'
얼굴에 철판을 적당히 깔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의지로 깔은 철판은 너무나 얇아 유효시간이 짧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셔터를 눌러본다.
많은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다. 그렇게 간신히 간신히 어설프게 백화점 조명을 기대어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와주겠다고 한 동생이 참 고마웠다. 모자는 쓰고 찍을 시간도 없었다. 시간뿐 아니라 여력도 없었고 철판의 유효시간도 지나버렸다.
집에 와서 pc로 사진을 살펴보니 모델하나 빼고 배경이고 구도고 모두 다 엉망이다.
그렇지만 나는 6개월이나 포토샵강의를 듣지 않았는가!!!! 안 되는 건 없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컴퓨터 학원을 다닌 것 아니겠는가?!
서핑하며 봐두었던 가장 맘에 드는 쇼핑몰을 하나 벤치마킹해 원하는 사진으로 다 바꿔버릴 심산이었다.
그렇게 허접한 사진을 포샵으로 살려내고 (나름 그럴싸했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쇼핑몰의 눈팅이 헛됨이 아니었다.) 이제 가격과 몇 가지 정보들을 입력하여 업로드만 하면 끝난다.
그런데... 이 오픈마켓 시장의 가격형성대가 너무나도 낮다. 아무리 마진율을 낮게 잡아도 택배비용 빼면 남는 것도 없는 선이 이 시장에서의 상한선이다. 아니 다시 말해 남는 것이 없게 팔아도 이 시장에서는 비싼 옷이 되어버린 셈이다.
대량으로 들여오는 사업자들이 아닌 이상 오픈마켓에서는 가격경쟁을 버텨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천 원 남기기가 이리도 어렵다. 이건 장사가 아니라 봉사활동 수준이구나..'
포기 아닌 포기처럼 몇 천 원을 붙여 옷을 올리고 심지어 모자는 사은품으로 걸어버린 나였다. 따끈따끈한 신상을 떨이 취급 해버린 것이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것이 이거구나 ’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이다..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옷을 한번 온라인에 올려보는 좋은 수업이었다고 생각하며 포기 아닌 포기를 한 상태였다.
내 생각으론 오픈마켓에 올라오는 옷들에 비해 심히 비쌌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하고 계속해서 컴퓨터 학원만 유유히 다니던 중이었다..
(국비지원학원은 출석, 졸업, 취업이라는 과정을 마치는 조건으로 무료수강인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을 뒤적거리던 중 주문이 들어왔다는 메일을 보았다. 게다가 2건이나!!
지금은 메시지와 카톡으로 바로바로 알림이 온다지만 그 당시만 해도 메일로만 주문현황을 알려주었다.
사실 사입을 한 후 주문이 들어오면 도매상에 재주문을 하여 진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먼가 허접하게 올린 자신의 옷과 단가 등등을 고려하여 데려온 4벌의 옷만 팔도록 재고량을 4건으로 해놓기도 했다.
그런데 2건이나 주문이 들어왔다..!
이런 이런~! 정말 생각도 못했다.!!
나는 적잖은 놀람과 함께 기쁨은커녕 후회가 몰려왔다..
나는 안된다는 생각, 그래서 포기를 한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좀 더 밀어붙였다면 무언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주문도 안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을까? '
나를 믿어보지 못한 후회를 하며 어쨌든 주문자에게 물건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조급해졌다.
'주문 들어온 지 이틀이나 지났네... '
온라인 쇼핑을 하고 결제를 했는데 배송이 지연된다는 것이 구매자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 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더욱 마음이 바빠졌다.
당연히 계약된 택배사도 없으니 우체국으로 달려가 박스도 사고 택배비도 직접 내고 그렇게 물건을 보내주었다..(우체국에서 나와 손님으로 들어가 본 나는 우체국 택배가 이리 비쌌구나라고 처음 느껴보았다.)
남는 것은 마이너스... 당연했다. 나는 사실 이렇게는 안된다는 것을 일을 진행하며 알았다. 좀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고 동대문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여건이 필요했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차가 없고 돈도 없는 나에게 지방에서 서울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동대문이 가까운 '서울'이어야만 한다.!! 시장조사나 인터넷 쇼핑몰에 관한 교육 또한 서울에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을 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역시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 진리는 진리.
마침 예전 사표를 쓰고 나를 반갑게 받아주었던 친구가 때마침 서울로 올라가 집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 친구에게 매일 서울로 갈것이라고 버릇처럼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혹시 서울 갈 생각이면 월세만 반반으로 같이 살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마음이 들떴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무조건 오케이를 했다. 뒤집을 수 있는 결정이 아니란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나름 보수적인 집안이었던 부모님의 허락도 구해야 했지만 상관없이 이미 내려진 결단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서울로 간다!! 기회가 왔다..!!
서울에 살 수만 있다면 머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단순하고 순수한 나의 청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