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기대, 가장 바보 같은 짓인걸

평범한 기대조차도 실망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직장현실임을..

by 김파랑
나는 몇 겹의 포장지로 둘둘 말린 꽃다발보다는.. 한송이 한송이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꽃이 좋다.
그리고 그런 꽃들이 어우러져 향기를 내뿜는 그런 사회이기를 언제나 염원한다..

당진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집에서 가까운 시청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로망이었다. 주말마다 집에 가서 시청을 지날 때면 저 안에서 일하면 그냥 모든 것이 행복할 것만 같았다.

이곳도 지방은 지방이었지만 시골스럽지 않고 나름 광역시라는 대도시이자 시청은 높은 빌딩이었다. 오피스룩을 입고 또각또각 시청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매일매일 하곤 했었다.

나의 수습 발령지가 바로 그 상상 속의 시청이었다..

사실 첫 발령은 시청보다는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9급 공무원의 현실이지만 수습발령이기 때문에 시청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수습이라는 아직 신분보장도 안 되는 상태이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시청이다.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 걸까? 나는 시청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배정되었다. 바로 시청의 가장 꼭대기층.


뚜벅뚜벅..

시청의 가장 꼭대기 층으로 향한다.

너무 설렌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근무지에 도착했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 너무나 인상 좋은 여자 두 분이 계셨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여유가 넘친다.




나는 당진에서 휴직하고 재학하던 당시.. 주말마다 동네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때 만화책부터 소설까지 그저 재미 위주의 책만 즐겨봤지만 정말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지만 서점 아르바이트가 내가 가장 오래 했고 가장 잘 맞는 직종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책이 있는 이곳에 왔다. 읽지 않아도 책이 있는 곳은 좋다.. 그냥 책냄새가 참 좋다. 사람들도 참 좋다.

하루 이틀 근무를 해보니 더더욱 좋았다.

시청도 공직이라 사실 허례허식의 공문서 쓰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왔고 그만큼의 피곤함 정도는 예상하고 왔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책 관련 일이기 때문에 그런 문서 작업은 없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도 모두 너무나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라 나는 금방 마음을 열을 수 있었다. 그분들도 모나지 않은 내가 맘에 든다고 하였다. 서로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셋이 모여 평화로운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할 일 없는 주말엔 집이 너무나 심심하여 그냥 출근하는 게 더 낫겠다는, 직장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편안함이 오랫동안 지속될 리가 없었다.

6개월 후 바로 합격생 반절쯤 1차 발령을 내고 그 빈자리로 남은 수습들이 자리 옮김을 했다. 나는 도서관이 아닌 정식부서로 수습 발령이 났다.

다행히 시청 본부 소속이었다.

그놈에 시청시청 시청출근 집착증... 시골에서 일해서 얻은 나의 집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정책과.'

먼가 대단한 일을 하는 느낌이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경제와 정책과 가장 담쌓고 살아온 나에겐 더더욱 크고 멋져 보였다. 앞으로 이 경제정책과에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치르게 된다.





# 두 번째 수습생활


나는 7층 경제정책과로 발령이 났지만 실제 근무는 2층 민원실에서 경제정책과 소속 주무관님을 도와 민원업무를 보는 것이었다.

처음엔 오히려 과장님 국장님과 떨어져 더 숨통이 트이고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상대로 그러했다.

아침마다 7층을 가서 인사를 하고 내려와야 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번 공직생활은 먼가 평범함이 없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구조로 굴러가는 듯했다.

시청에서 근무하지만 도서관 소속.

민원실이지만 민원업무과가 아닌 경제정책과 소속.

계속 소속과 실근무처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냥 좋았다. 시청에 있는 것으로 소속이니 머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을거라 여겼지만 점점 마음의 짐덩어리가 될 너무나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아침인사!!! 그것이 문제였다. 민원실에서 아침 업무를 보기 전 본래 소속인 곳으로 가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와야만 했다. 며칠하다 끝날 줄 알았건만 아무도 그만 하라고 편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인사는 받고 싶나 보다.

책상도 없지만 그 소속이라는 이유로 아침마다 7층에 가서 23명 남짓한 과 사람들에게 혼자 인사를 하고 내려와야 했다.

하는 일은 그냥 인사하러 가서 인사를 마치면 커피를 마시거나 그냥 내려온다.

싹싹함이라곤 1도 없는 나에게, 그리고 그런 어색한 인사라면 질색하는 나에게 그 어떤 근무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하아..... 오늘도 갔다 와야겠죠... 다녀오겠습니다.!!”

아침에 민원실로 가면 같은 소속 1명의 주무관님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그 민망함이 무엇인지 아는 주무관님은 항상 키득거렸다. 공감의 키득이다.

“다녀와요 파이팅..! 크크크 ”

7층 경제정책과 앞에 서면 입구에서부터 각 팀별로 5번 정도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말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굽신 구부리며 인사한다. 여러 명이 있어 누구를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은 인사는,진짜 인사라면..

인사를 하고 나면 먼가 기분이 좋아지고 인간관의 소통이 되는 따뜻한 느낌이어야 한다.

굳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인사란 그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인사는 정말 희한하다.

인사를 5번째 하고 나면 항상 비참해지고 그 생각에 얼굴이 빨개진다.. 마치 부끄러워 빨개진 사람처럼..

인사를 마치고 내려오면 그날의 가장 큰 업무를 마친 셈이고 반절정도 진이 빠진다. 이제 진짜 업무는 사실 힘도 안 든다.


인간이란 참 미묘한 동물이다..

정신적이 노동이 언제나 더 지치게 만든다.

매일매일 나는 이해를 못 했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구 하나 이제 그만 와도 돼~라고 못 박아 주지 않을까..

사실 그들도 민망할 텐데,,, 나라면 그 인사를 매일 받는 것도 민망할 것 같다.

누구를 위한 인사일까?

매일 보는 사람과 굿모닝~! 이처럼 가볍게 인사하면 얼마나 좋을까?


인사가 인사가 아닌 의무가 되어버려 인사가 가장 큰 짐덩어리처럼 되는 이 이상한 현실

첫 수습발령 전 총무과에서는 수습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었다.

“인사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잘 보여야 한다.. 여기서 찍히면 공직생활이 힘들어진다..” 등등

생각해 보면 이보다 권위적인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알아서 설설 기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나는 시청에 대한 환상의 착각섬에서 점점 빠져나오게 되었다.

내가 그 섬에서 나와 허우적거릴 때 동기들은 그 섬에서 내쳐질까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인사는 90도로.. 군인처럼 힘차게! 그리고 누군가 부르면 1 초각으로 응답하고 발 빠르게 심부름을 해낸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비위 맞추는 말로 기분까지 업시켜줘야 한다. 물론 내가 너무 단면을 보고 오버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이 조직이 저렇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나처럼 가만히 가만히 있는 성격은 눈밖에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점점 그러해지고 있었다.

'에헴' 소리가 표정으로 들린다.. 뒷모습에도 못마땅이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그것을 모조리 느낄 수 있는 내가 싫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삶이라는 것은 그저 그 자체로 힘들다는데,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더불어 앉아서 서로서로 그렇게 더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편안하게 지내면 안 될까..

편하자고 하는 것이 일도 안 하고 안방처럼 누워있고, 그런 걸 바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서로가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어야 하는 짐정도만 짊어지면 안 될까?

말도 안 되는 짐을 굳이 첩첩이 쌓아주면서 고통에 고통을 더해주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인간사이에 군더더기 빼고도 깔끔하게 일하고 어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인간사이 장식을 하느라 죽을 맛이다.

사회생활 아니 더 정확히는 공직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그 군더더기를 너무나 바란다는 것이다.. 존경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간을 꽃에 비유하자면 꽃 한 송이에 3~4가지 색깔의 포장지를 씌우고 비닐로 또 씌우고 리본을 달고,, 결국은 꽃다발이 아니라 포장지다발이 되도록 꽃보다 포장지를 더 강조한다.

나는 그냥 한송이의 꽃이고 싶었다. 장식이라면 꽃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 비닐 포장지 하나 정도? 사치를 부리자면 그들을 묶는 예쁜 리본정도..

화려한 포장지를 바라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어딜 가나 내가 갈 곳은 없다는 결론은 참으로 인간으로서 우울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언제나 그랬다. 기본만 했다. 꼭 해야 하는 인사만 했다. 꼭 해야 하는 말만 했다. 군더더기 말은 친구하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말을 하나도 안 할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업무 관련 이외에 꼭 해야 할 말 따위는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소외당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죄, 말이 없는 죄, 그리고 여자로서 싹싹하지 못한 죄일 것이다.

그 죄로 이 사회에서는 특히 공직세상에서는 나를 절대 울타리 안에 넣어주지를 않았다.

성인군자는 언제나 말을 아끼라고 하였고 수많은 책들에서도 그렇게 외치고 있건만.. 현실에서는 말 좀 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


혼란스럽다.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살고 싶지만 조직생활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 자신이 좀 유별나고 좀 더 나아가 이상하다.'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면서도 다른 이들과 어울리기도 해야겠고 어울리면 힘들고, 피했다가도 다시 어울리려 노력했고 또다시 도망 나왔다를 반복하는 나는 점점 더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keyword
이전 10화포기, 그리고 다시 시작이 반복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