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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Sep 13. 2023

인생을 바꿔준 35,000원짜리 꽃다발

인생을 바꾸는 건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2007년 어느 날 점집에서 들었던 말

“꽃가게를 하면 잘 맞겠다. “

“네???”

직장이 안 맞아 찾아간 용하다는 점집에서 한 말이었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며 그렇게 흘려버리고는 세월이 흘렀고 직장생활이 맞지 않아 다른 일을 해보겠다며 휴직을 했다.

그리고 백수로 산지 아니 정확히는 전업주부로 산지 반년이 지날 때쯤, 아이 유치원 졸업식 때문에 꽃 한 다발을 사러 갔다.

몇 년 만에 꽃집을 들른 것인지.. 아마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송이를 산 것이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동네에 자그마한 꽃집이 있었고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엄마가 주인이었다.

관심 없는 그 꽃집을 매일 지나다니기만을 하다가 드디어 처음 꽃을 사러 들어갔다. 졸업식 준비로 엄청 분주한 가게 안이었고 주인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꽃 한 송이 안 사보고 살아온 나는 당연히 취향이란 것도 없고 선호하는 것도 없어 그저 우두커니 만들어진 꽃 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나는 주인의 인스타그램에서 골라서 연락해 주기로 약속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원하는 가격선에 있는 꽃은 다 그게 그거인 것 같아 고르기가 정말 어려웠다.

생전 꽃을 가까이해 보았어야 어떤 선호라도 있을 텐데 백지상태에서 꽃을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진 속 꽃들을 몇 번씩 보고 또 보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더 가는 것들이 생겼다. 어렵사리 밤 10시나 돼서야 주문을 했고 (시즌이라 밤 10시까지 주문 줘도 좋다는

주인의 말) 아침 일찍 눈길을 헤치고 꽃을 찾으러 갔다.

아마 아침 7시 30분쯤이었는데 혼자 꽃을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밤 10시에 주문한 꽃이 어떻게 가능한지 너무 신기해 물어보았다. 주인은 퀭한 얼굴로 말해주었다.

“밤을 새웠어요 …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

이건 아니다, 너무 힘들다는 그 말은 뒤로한 채 작은 꽃가게 하나가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구나! 란 생각만 머리에 박혔다.

꽃다발은 꽃 몇 송이뿐이었지만 예뻤다.

하지만 내 눈에만 이뻤을 뿐,

아이의 졸업식에 들고 간 35,000원짜리 꽃다발은

아이에게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했다. 그저 좁은 의자들 사이로 짐덩어리만 되었다. 그래서 순간 내가 몇 송이 사다 만드는 게 낫겠다란 생각도 스쳐갔다.

그런 생각생각들이 엮여서였을까??


그 35,000원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줄은 몰랐다.

졸업식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포장지를 버리고 유리병 하나를 꺼내 물에 담가주었다.

인생 몇 년 만의 꽃이라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난리를 펴댔다. 실제 눈에 보이는 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핸드폰 사진보정 기능의 모든 것을 다 눌러가며 열심히 보정했다.


어느 순간 나는 아!! 이거 재미있다.!!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만지작만지작 만들기 하던 그때처럼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꽃을 만지작거리고 구성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이리 놓고 저리 놓고 하며 놀고 있던 나..


꽃 한 송이 안 사보고 살던 내가 그렇게 꽃을 조금씩 사들여 꾸며보았다.

꽃시장을 도는 것만으로 힐링 그 자체였고 내 손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진 것이 ‘예쁘다!’ 소리를 들을 때면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렇게 나는 꽃이 나의 적성에 맞다며 감히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기웃거렸다. 먼저 플로리스트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꽤나 열심히) 단기간에 플로리스트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격증이라는 실체가 배송되었고 눈앞에 그 자격증을 마주한 순간 나는 정말로 인생의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인생은 어느 지점에서 방향이 꺾일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렇게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삶의 길이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아니 모든 변화가 그렇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15년 전 그 점쟁이의 말을 굳이 상기시키며 이것이 운명이라고 나에게 주문을 걸어 넣기도 했다.

감히. 무모하게. 이 세계에 저벅저벅 들어왔고 또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이 40 즈음에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참 꽃밭으로 보이던 이 길에도 수많은 가시밭길이 펼쳐졌고 아직도 그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지만 꽃을 만지는 순간만은 몰입하는 나를 보며 그래도 진짜 꽃길 한번 걸어봐야겠다는 욕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아이의 졸업식 꽃다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꽃집을 들락거렸고 나는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가장 저렴했던 35,000원을 지불하고 내가 얻은 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이었다. 그것이 꽃길일지도 가시밭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뒤돌아 후회하지 않을 선택임을 확신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다가온 두 가지 목표는 모두 아줌마의 현실적인 일상 속에서 시작되었다.

멍하니 드라마를 보다가 먼 훗날 소설작가가 되어 글로써 사람들을 위로하겠노라 마음먹었고

내 아이의 졸업식 꽃다발을 사고는 플로리스트로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을 주겠노라 생각한다.

그 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성공하는 꿈까지 꾸는 요즘 나의 나날들을 보내며 아마도 진짜 내 인생을 바꾸는데 들은 비용은 35,000원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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