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욕에 사로 잡혀 괴로운 밤
나는 언니가 많다.
그리고 식구가 많으니 탈도 많다.
각자 결혼을 하고는 남편에 자식들까지 생기니 즐거운 날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불화가 생겨 명절까지 안 보게 된 것은 1년이 넘어 2년 정도 되었을까?
어릴 적부터 삐그덕거리던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심하게 다툰 건 2년 전쯤 설 명절이었다. 버릇없는 자식교육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고 자연스레 가족은 두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내 딸이 첫째 조카와 친하다는 이유로 첫째 언니와 소통하게 되었다. 그렇게 첫째 언니 둘째 언니로 편이 나뉘어 갈라져 지내온 우리는 명절이면 부모님은 만나러 가는 팀과 만나지 않는 팀으로 나뉘었고 엄마와도 사이좋지 않았던 첫째 언니는 더 이상 명절에 친정에 가지 않았다.
잠깐 말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설 명절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한 넷째와 다섯째 가족을 빼고 첫째, 둘째, 셋째 언니 가족들이 모였고 아이들이 각 어른들께 돌아가며 새배를 올렸다고 한다.
그중 조금 세상 물적을 빨리 알아 유독 아이답지 않았던 둘째 언니의 딸이 갑자기 기분이 나쁘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영문을 모르던 가족들이 모두 정지된 상태였다.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설득하는 둘째 언니가 못마땅한 첫째 언니는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지금 어른들 있는 데에서 머 하는 거야? 따끔하게 혼을 내고 나와야지! 멀 들어주고 있어!!! ~!”
언니를 말리려던 엄마는 첫째 언니 아들이 제지하며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정말로 기분이 나빠진 둘째 언니와 첫째 언니의 본격적인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본인이 잘 말하고 있는데 왜 남의 애한테 소리를 지르냐며 둘째 언니가 폭발해 버렸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왜 받아주냐고~! 혼구녕을 팍 내도 모자란데 , 밖에 어른들 우두커니 만드는 게 정상이니??!!”
자식을 비정상으로까지 몰고 간 말에 식구들 모두 첫째 언니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정작 아이의 잘못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듣고 있던 둘째 언니 딸이 이모는 나가라며 소리를 질렀댔고 첫째 언니도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양쪽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게 개판오분전이 된 상황에서 둘째 언니네는 서둘러 짐을 싸서 나갔다.
엄마와 셋째 언니 모두 따라나섰고 첫째 언니네만 그렇게 남겨두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는 그 당시 첫째 언니네와 매우 친하게 친목을 다지던 중이었고 어찌 되었던 첫째 언니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다른 식구들은 함께 모여 있었다는 사실에 정의감이랍시고 첫째 언니 편에 서 있었다. 그렇게 첫째 언니는 우리 가족과의 만남에만 집착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있기에 다른 식구들과 화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둔해 주는 한 명을 믿고는 선을 넘어선 행동을 엄마에게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엄마의 욕을 그렇게 하는데도 함께 동조하며 남편과 아들과 더욱더 똘똘 뭉쳐 친정욕을 하는 것을 나는 지켜만 봐야 했다.
그들의 대화화 행동은 정말로 연을 끊을 것처럼 굴었다.
나는 싸움이 있고 열받으면 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화해라는 것도 하고 나이가 들 수록 내가 그저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기에 가족을 원수처럼 대하는 언니가 점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건 그것이고 어찌 되었던 우리 두 가족은 사적인 만남과 더불어 여행을 가끔 다녔다. 첫째 조카가 우리 아이들과 잘 놀아줬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사촌오빠를 따르며 좋아했기에 나와 남편은 그거면 됐다라며 만족하며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사람은 너무 자주 만나면 안 되는 것이 진리,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조금씩 우리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언니도 처음에는 가족 중 유일하게 자기편을 들어주는 우리들이 좋아 선의를 베푸는 듯했지만 점점 이기적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째 언니는 아들이 왕이었다.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인데도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돌았고 잠자리 역시 아들과 자기가 가장 편안한 자리를 택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항상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라고 유도했고 한두 번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나도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행 가서 잠자리가 불편하니 여행 자체가 힘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삐그덕거림을 모른 척도 해보고 아닌 척도 해보던 중 마지막 여름휴가 때 나의 참을성은 바닥이 났다.
이번에 잡은 숙소는 생각보다 너무 작았고 두 가족이 어떻게 자야 할지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들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언니에게 나는 이젠 안 떨어진다고 못을 박았다.
중2씩이나 된 아들이 당연히 혼자 간이침대에서 자고 언니와 형부가 함께 자고 남은 자리에 우리 가족이 알아서 끼어잔다고 제안했다. 물론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매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에도 언제나처럼 그 정도는 감내하고 아이들을 침대 한 곳에는 재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들이 걱정되면 아들과 형부가 한 침대에 자면 된다고 했더니 조카가 본심을 들어냈다.
"아빠랑 자면 아빠보다 먼저 잠들어야 하는데..;;;"
이유인즉슨 형부의 코골이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형부 옆에서는 소리에 둔한 내 남편조차 밤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할 정도이다. 온 방이 떠나가라 심하게 코를 골기 때문에 웬만하면 형부는 격리를 시켰어야 했다. 가족들이야 매일 듣는 소리니 나는 안 들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카의 말을 듣고 심각한 코골이 소리는 모두 인식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면 머 할까? 인식은 인식일 뿐, 잠들 시간쯤 잠시 밖 산책을 10분 정도하고 돌아와 보니 형부를 우리 가족침대 옆 간이침대에 올리고는 조카와 언니가 한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게 머야??"
너무 황당한 나머지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언니는 말했다.
"아들이 혼자 못 자겠데~ 자기 옆에서 잔다고 여기 내려온 걸 어쩌지..ㅎㅎㅎ"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너무 황당하여 대꾸할 힘조차 잃어버렸다. 속으로 욕 한번 하고 그냥 올라가 아이들 발밑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형부의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두 시간가량 잠에 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무엇보다 왜 자기 남편을 우리 가족에 떠밀어놨는지 이해를 하려야 할 수조차 없었다.
짜증과 분노와 피곤이 뒤섞이고 나의 피붙이의 행동이라는 것이 창피하고 그래서 더 화가 치밀었다.
내가 퇴사를 맘먹었을 때의 분노수치와 비슷했다..
그렇게 짜증 섞인 여행을 간신히 마치고는 언니를 당분간 보지 않기로 맘먹었다.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 맘에 들지 않는 그런 행동을 보며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노력했는데 금세 그 다짐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더더욱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연휴에 신라호텔을 잡았으니 같이 와서 수영도 하고 놀자고 전화가 왔다.
신라호텔도 신라호텔이지만... 수영장!
내 돈으로는 신라호텔에서 호캉스를 할 여유도 없었는데 게다가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영장이 있다는 소리에 그만 혹해버렸다.
언니들의 싸움이 있고 명절에 친정에 안 가도 되면서 언니는 호텔을 잡아 놀기 시작했고 우리들을 간간히 초대했다. 한번 그 호텔에 끼여 놀았던 어느 하루가 조금은 재미있기도 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바뀌었고 언니와 거리를 두려던 나는 미리 이번 추석 때는 못 만날 것 같다고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말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언니는 '신라호텔'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다가왔다.
나와 남편은 더 이상 함께 다니지 말자고 다짐을 해놓았지만 신라호텔 더하기 수영장이라는 말에 무너져 내렸다. 언니의 무기가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회사 다닐 때 나의 발목을 계속 잡았던 것이 안정적인 수입이었다. 그 수입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못 본 체 하며 지내다가 어느 날 마음의 무게가 물질욕을 짓눌러버릴 만큼 커다래졌을 때 사직서를 냈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속에 다짐했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군더더기는 보지 말자...
물질적인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정말 나를 충만하게 채워줄 것들로만
앞으로 채워가자. 그런 것들에만 욕심내자.
이런 생각으로 나의 다짐을 충실히 지키며 퇴직 후 물질적으로는 궁핍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공짜 신라호텔에 현혹되어 그 안에서 기생충처럼 놀고는 밤새 잠이 들지 못했다.
이 화려한 곳에서 거지 같은 대우를 받은 우리 가족..
일단 수영장 초대는 2명밖에 되지 못한다 하여 남편만 아이들과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를 못했다. 수영장에서는 하필 비가 내렸고 언니네 가족들이 썬베드를 모두 차지하고 있어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밥조차 비 맞은 밥을 먹어가며...
그것까지는 좋다. 그럴 수 있다. 원래 침대에 집착했으니, 또 우리는 놀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카와 노는 것만을 기대하던 우리 딸들은 물에는 들어오지 않고 누워서 게임만 하는 오빠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며 쓸쓸히 놀았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는 남편의 말을 전해 듣고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언니가 그렇게까지 남을 의식하지 못하고 본인과 자기의 가족들만을 챙길 거라고는.. 그 정도까지는 내 예상밖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번 휴가지에서의 모습이 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심지어 룸서비를 시켜놓고는 나와 남편은 한입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니네 가족 셋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정말 비참했다.
더러워서 내가 먹지도 않았지만 남을 불러다 놓고 그렇게 행동하는 언니를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고 내 결정이었을 뿐이다. 남탓 할 것도 없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곳에 와서는... 작은 물질욕도, 그리고 남들 눈을 의식하며 회사생활하며 그 고통을 겪고 퇴사까지 했건만.. 너는 벌써 그때의 마음을 잊었던 거구나!!'
그랬다. 결국은 모든 것이 다 내 욕심이었고 욕심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 거였다. 남루해도 발 편히 뻗을 수 있는 곳이 천국이거늘.. 나는 신라호텔이라는 것에 눈이 멀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진짜 거지 같은 꼴을 맛보게 해 주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나가 한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언니에게 화를 내고 돌아서기엔 언니는 큰 오해를 할 것만 같았다. 본인이 왕따를 당했다며 아직도 피해의식 가득한 언니는 내가 다른 언니에게 붙어먹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돈을 다 냈으니 우리가 불편해야 함을 당연시 여기는 언니는 나의 짜증을 배은망덕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남편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깔끔히 하고 헤어져야만 했다.
가슴이 문들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덕분에 너무 잘 놀았어~ 즐거웠어..."
라고 인사해야만 했다.
비참함은 그렇게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쉽게 이뤄진다. 내가 아무리 풍족하진 않아도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살지는 않았다.
나에게 비참함을 주었던 회사도 끝내는 내 손으로 끊어내고 와서는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다 했건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비슷한 비참함을 맛보고는 헛웃음이 났다.
나를 언제나 물질욕으로부터 경계하라는 어떤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아침 햇살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나 꼭 명심해야 해! 네가 퇴직했던 진짜 이유를~!"
엉뚱한 것에 욕심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참함 뿐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라며..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신라호텔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