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언제나 '응답하라'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평범한 주부인 나는 요즘 몇 군데 학원픽업을 다닌다. 아이가 수영을 다닌 지 2달째,, 어느 날 몸이 조금 좋지 않은 아이를 일단 다녀오라고 내보내고는 마음이 편치 않아 수영장으로 가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고 그곳에 있는 믹스커피 한잔을 타고는 기대치 않은 여유로운 20분을 보내게 되었다.
대기하는 학부모님들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강의하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가리고 싶어서일까? 음악이 틀어지고 내 가슴을 저격하는 노래가 나왔다.
20년 만에 처음이었고 알고 있지만 가수도 제목도 생각나지 않아 흘러나오는 가사로 바로 검색을 했다.
스페이스 A - again
이 노래 한편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나는 2001로 빠르게 향해갔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평범한 여고생이었고 열심히 친구와 놀기도 반, 열심히 공부하기도 반, 그렇게 고등학교는 후회로 가득한 시절은 아니었다. 내 인생 가장 즐거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하지만 딱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를 선택해 버린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고등학교 선택권이 그리 넓지 못했다. 그저 평범하고자 한다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공부에 뜻이 없거나 조금 공부와 멀어졌다면 비인문계를 선택하면 그만일 뿐, 거기에 특수 고등학교( 과학고, 예술고 등등)를 가는 소수의 아이들이 다였다.
난 희한하게도 어릴 적부터 미술이 하고 싶었다.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제대로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예고가 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만 상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 걸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미술로 예고를 지원이라도 해볼지 아닐지로 고민했었다.
물론 결론은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우리 집 형편상 미술은커녕 인문계 학비도 빠듯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미술로 살아보고 싶기도 했었지만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나아갈 만큼 그렇게 간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빠르게 포기했다.
그 빠른 포기가 평생 나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평범한 대학을 가고 가장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겉보기에는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인 길을 걸어가는 듯 보였겠지만 내 인생은 꼬여가고 있었다.
대학생활부터 한 번도 만족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이 그저 가족들의 기대와 주변사람들의 평가에만 발맞추어 살아가기 급급했다.
내 나이 27살이 되어서야 퇴직을 강행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시작점으로 돌아가보기도 했었다. 내 인생을 그나마 나에게 맞게 재조정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다.
만약 재조정의 시점이 2001년 내 나이 16살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결국 예술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예고로 돌진했고 그렇게 예고를 나와 미술을 전공했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평범하고 얌전하게 생겨 평범하지도 않은 4차원 인간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엉뚱하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평범하지를 않았다.
나는 그렇게 소위 진정한 4차원 인간이었다. 그 엉뚱한 생각들이 나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 부분을 무시하며 나를 일부로 공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얘는 진짜 사이코 같아~!! 하하"
가끔은 그 말에 함께 웃었지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상상하건대 그 엉뚱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묵묵히 나만의 스타일로 밀고 나갔다면 예술의 영역에서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은 더 위대하게 받아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진짜 그 분야의 사람들이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엉뚱한 인간은 개성이 아닌 이상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술계에서는 어땠을까?
나의 엉뚱함이 나만의 브랜드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개인 브랜드 시대인데 나는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를 눈부시게 브랜드화시켰을 것도 같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만의 생각을 상품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화려해지고 나만의 워너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공직에 들어가 엉뚱함이 나올 때면 사람들이 기겁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틀 안에 가두려고 찍어 눌러가며 나를 잡아댔다. 결국은 학을 떼기도 하고 나를 무능력자로 낙인찍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직사회를 욕하고 살아왔지만 생각해 보면 그 사회에서 나라는 인간이 어울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나는 질투나 부러움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평생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다. 바로 예고를 나와 피아노전공을 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바로 예술계로 간 친구이다.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그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한 번씩 내 인생의 평범함이 너무 구질해 보일 때도 있었다.
특히 가장 화려하게 살아가는 그 친구의 20대 시절에 나는 가장 지질한 공무원이 되어 있었으니까.. 의욕도 없고 열정도 없이 사회불만자로 살아가던 그때였다.
그런 친구가 멀어지지도 않고 어느 정도 가까이에 살다 보니 언제나 미대를 가지 못한 한이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해보지도 않아서 더더욱 가늠할 수도 없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나의 20대도 그 친구처럼 화려하게 만들어 놓고는 현실로 돌아와 말 그대로 현타 치고 좌절하기도 했다.
너무너무 평범한 나와 상상 속의 화려한 나...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은 모두 미술과 관련된 일이었다. 뒤늦게 그 비슷한 길을 걷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미대를 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면 벌써 나의 경력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진 않을까,,, 강의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기도했는데~~ 그대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었기를... 아니었나 봐... 첫 번째 상처로 내게 남아있겠죠..."
그렇다. 미술은 그렇게 나에게 첫 번째 상처로 남아있는 영역이다.
만약 내가 예고를 갔다면?
나는 내 안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후회 없이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도, 평범한 아줌마가 아닌 조금은 더 멋짐 폭발하는 엄마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고등학교 선택지점에서 돌아간 나의 미래는 단연코 지금보다 화려하고 지금보다 멋진 모습만이 그려진다.
아쉬움에 쓸쓸함이 지나간다.
여기 내 옆에 있는 누군가도 나처럼 이런 과거를 떠올렸을까?
나에게 고등학교로 데려간 이 한 편의 노래가 다른 누군가는 어느 시절로 데려갔을까? 음악과 함께 인생을 돌아보고 후회하고 아쉬움에 빠져갈 쯔음.. 나를 구해줄 이가 손을 흔든다.
언제나 현재의 나여야만 한다고 붙잡아 두는 유일한 사람.
지금 눈앞에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나의 살 같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예고를 가지 않아 너를 만날 수 있었다며 현재의 행복한 나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