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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19. 2024

10장. 마지막(전환)

나를 위해 산다는 것

마침내, 치앙마이 한달살이의 끝이 다가왔다.

그 끝을 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4주 차가 되니 자연스럽게 한달살이를 정리하고 있었다(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들로 새로운 감정들을 채워나가느라 바빴다. 이국적 풍경, 새로운 사람, 낯선 감정... 그 어느 때보다 삶이 풍요롭게 느껴진 한 달이었다. 빈곤했던 삶에 무언가가 채워진다는 그 느낌은 정말 신기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스스로 좋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로 의해서 좋은 에너지가 절로 채워지는 그것은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가슴 벅찬 일’이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분명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일상을 떠난 이 여행이 매일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차별과 불친절함에 상처받기도 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날도 있었고, 무엇보다 SNS를 통해 일상을 잘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나는 나의 깜깜한 미래에 대해 두려워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은 여행 중인 내가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았다. 그건 잠깐이고 곧 지나갈 것들이라는 것을.


다만, 그 불편한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차별과 불친절은 일상에서도 언제나 있었다. 내가 속한 업계에서도 차별은 있고 유난히 서로에게 불친절하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모드로 사람들을 경계했고, 나도 차별하고 불친절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지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어디를 가나 똑같다. 불편한 상황들은 언제나 있고, 그로 인해 나의 기분을 늘 망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불편하게 한 상대를 어떻게 하면 더 불쾌하게 만들 수 있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좀 더 좋아질 수 있지?’만을 생각했다. 모든 상황의 주체가 내가 되어 보기로 한 것이다.


이곳에 처음 머문 호텔에서 직원에게 은근한 차별과 불친절함에 나는 한번 친절해보길 했다.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친절함은 곧 친절함으로 돌아왔다. 이 묘한 기쁨에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서 발을 굴리며 혼자 웃기도 했다(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렇게 나는 매일을 오직 나를 위해 살아보기로, 그리고 단 하루도 망치지 않길 바라며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다 보니 지금껏 나는 참 남을 위해 살아오느라 늘 피곤했구나를 깨달았다. 참 고되게도 살았다 싶었다. 그러니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마음은 많이 단단해졌고 좋은 기운이 가득해졌다. 이제는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기대 없이 단지 도망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며 온 이곳, 치앙마이.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충만한, 삶의 풍요로움을 잊지 않길 바라며, 혹시나 또 마음이 힘들면 이때를 기억하며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안녕 치앙마이. 또 올게.

그때는 도망이라는 핑계가 아닌 진짜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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