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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1. 2024

8장. 공포체험

방금 무엇을 본 거지?

치앙마이에서 좀 더 머물기로 결정한 후, 나는 다시 올드타운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난 계획에 없던 공포체험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숙소를 옮겨 다니다 보니 비용 지출이 꽤 커져 한주는 가성비가 좋은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곧 다른 지역인 빠이(pai)로 갈 예정이었기에 당장은 깨끗한 침대와 화장실만 있어도 충분했었다. 그렇게 큰 고민 없이 선택한 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사진과 똑같은 외관과 분위기에 잠깐 안도했다. 아늑하고 편안한, 그리고 친절하고 깨끗한.


그런데 배정받은 객실에 들어갔을 때 순간 나도 모르게 '헐'이 튀어나왔다. 환한 대낮인데도 어두운 객실에는 딱딱한 매트리스가 위협적으로 위치했고, 곰팡이 하나 없을 것 같은 깨끗한 화장실에선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무엇보다, 객실과 객실이 마주하고 있는 이 숙소의 구조는 아주 사소한 사생활도 보장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뭐, 내가 선택한 것이고 숙소 실패는 늘 있었던 일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낮에는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조금 더 부지런해보기로 했다.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니고 해가 질 때쯤 저녁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하 세상에. 너무 무섭잖아. 돌아오자마자 나는 처음으로 공포심을 느꼈다. 원래도 어두웠던 숙소가 저녁이 되니 묘한 분위기를 내는 적막까지 가져왔다. 그래도 이건 견딜만했다. 문제는 밤이 되니 들리기 시작하는 화장실의 이상한 소리였다. 바람 소리라기엔 넘 규칙적인 소리를 내었고, 기계의 소리라기엔 생전 첨 들어도는 기괴한 소리였다. 물론, 나는 심야괴담회를 비롯한 공포 영화, 범죄 다큐멘터리 등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혼자 볼 정도로 담력은 없다. 놀이공원에서도 절대 귀신의 집 따위엔 들어가지 않는다(들어갔다 하면 거의 반 기절해서 나온다).


'아니 잠깐, 내가 지금 뭘 본거지?'


방 안에 사람 소리(라디오)를 채우며 나름의 방법으로 공포스러운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그때! 반불투명한 화장실 유리창에서 무언가가 번뜩하더니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밀의 문(화장실을 사용하며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물이 있었다)이 열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까지. 아니, 너무 무섭잖아.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울 만큼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는 '나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일까, 주인공의 친구일까? 주인공은 뭐 죽진 않겠지? 아니, 주인공의 친구면 어쩌지?'라며 상상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상상이 상상을 더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는 이 처음 느껴보는 이 공포심에 이상하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깟 공포물로 나의 하루를, 아니 앞으로 남은 이곳에서의 내 일상을 망치려는 건가? 그건 안되지' 그리고 마치 자각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누구야!"


누구한테 '누구야'를 외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너의 존재를 확인해야겠다 싶어 화장실 문을 벌컥 열며 대화를 신청했다. 다행히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고, 당연히 누가 들어온 흔적 따위도 없었다. 그렇게 확인하고 나니 역시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쫄보인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 아니 왜 그렇게 나는 화가 났던 걸까.


하지만 나의 용감한 행동이 무색할 정도로 밤새 나는 화장실에서 여전히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다. 화장실의 온수 장치를 꺼보고, 냉장고의 콘센트를 빼보기고 하고, 옆방과 사이의 벽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어제 들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 소리의 정체는 뭔지는 몰라도 해가 지면 나는 소리임은 분명했다. 여기에, 낮이 되니 마주한 객실 구조가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나에겐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못 지낼 것 같은데 어쩌지? 하지만 나는 이 숙소를 일주일이나 예약했고, 숙소에 더 이상 비용을 들이는 것은 부담되었다. 무엇보다 이런 이유로 이 숙소에서 도망치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이때부터 나는 내가 좀 이상한 사람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의미 없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로 버텨보기로 했다. 대신 낮에 내 몸을 혹사시켜 저녁에 쓰러져 자게 만들어 버리자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3일 동안 나는 교통수단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고 최대한 먼 거리의 식당과 카페를 다녔고, 하이킹 투어까지 신청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녔다.


하지만 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매일 나는 말 그대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건 뭐 귀신이 아니라, 피곤해서 곧 죽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3일 만에 숙소를 나와 4일이나 앞당겨 빠이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타국에서의 공포 체험은 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케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빠이에서 만난 위기를 가뿐히 넘기게, 그리고 남은 치앙마이 살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이따금 그때 나를 공포케 한 불빛과 소리는 무엇이었는지를 상상하곤 한다. 만약 그곳에 더 머물렀다면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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