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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12. 2024

7장. 동행(2)

그렇게 한달살기를 결정했다

치앙마이 살이 2주 차, 한국에서 예약한 마지막 숙소로 짐을 옮겼다.

마음이 점점 편해졌고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어쩌면 2주 살이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 5시까지 이어진 동행들과의 술 자리가 있기 전까지는.    


올드타운에서 나와 옮긴 곳은 신시가지인 님만해민이었다. 숙소만 벗어나도 관광의 시작이었던 올드타운과는 달리 님만해민은 여행이 아닌 매일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자극 없는 일상을 원하긴 했지만 인간이란 늘 그렇듯, 익숙해지니 무료했고, 그 무료함을 살짝 자극하고 싶어졌다


‘오늘 치앙마이대학교에서 산책하고 저녁 드실 분 계실까요?’

오픈채팅방에 특을 전송하자마자 나는 동시에 후회했다. 그리고 답이 안오길 바랐다.

하지만 오고야 말았다. ‘저요!’ 이어, ‘식사는 어디서 하실 건가요?’


2명의 친구가 나의 식사 초대에 응했고 우린 치앙마이 대학교에 있는 저수지 입구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화 중 나는 두 친구에서 재밌는 공통점을 알게 되는데, 치앙마이 살이 3주 차에 접어든 이들은 적잖은 심심함과 외로움에 힘들어했다. 특히 한 친구는 혼자여행을 즐겨했고 스스로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여기 와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의 돌발 행동도 이 친구들처럼 심심함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알고 보니 나도 혼자 여행의 즐거움이 끝나가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우린 내일을 약속했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의 최애 재즈바로 친구들을 데려갔다. 이날 따라 재즈바 분위기는 마치 밤과 음악 사이 그 어디쯤이었고 우린 열심히 그 분위기를 따랐다. 하지만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을 닫는 치앙마이의 밤. 흥이 오를 때로 오른 한 친구가 갑자기 집에 술 있는 분 없냐며 2차를 제안했고, 나는 뭐에 홀린 듯 집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수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름부터 시작해 나이, 직업(직장생활), 치앙마이를 오게 된 진짜 이유, 치앙마이 여행의 장단점 그리고 그간의 연애사까지. 마치 그간 못한 수다를 쏟아내듯 우린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우린 어줍지 않게 서로를 조언하고 또 응원했다.  


그렇게 대화는 새벽 5시까지 이어졌고 나는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신이 들었다기보다는 정신력이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다. 친구들을 보니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해야만 했다.

”너네 이제 니네 집에 가 “


다음날, 아니 그날 나는 역대급 숙취로 사경을 해맸고 언제나 그랬듯 다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만...). 그리고 그날을 통으로 날렸다.


그날 이후 나는 며칠간은 일부러 사람을 만나지 않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선택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혼자만 있을 때의 고요함이 필요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소비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이틀간 고요함을 잃었고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을 소비했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시금 몰려왔다. 이곳에 오기 전 느낀 두려움이 다시 튀어나오고 있었다.  


동행들과의 만남이 싫었던 것이 아니다. 여행 2주 차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고요함이 필요했고 감정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2주의 시간은 너무 부족했고 그렇게 나는 치앙마이에 좀 더 머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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