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 어떠한 형태의 경쟁에서든 그 경쟁의 터전에서 지정된 성공요인들을 획득하여 실제로 우승하진 못했지만, 그 패배의 위치에서 나름의 함의들, 내면의 성장이든, 도전의 경험이든, 사람을 얻었다는 등 부수적인 요인들에 높은 가치를 매기며 '비 제도권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신승리는 사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사실 삶은 '정신 승리'가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행복도달 수단일 수 있다. 정신승리 단어 자체가 정갈한 표현도 아니다. 이것을 해설하는 철학적 종교적 설명들이 있다. 종교나 철학적 용어를 바탕으로 그 정갈한 설명들을 들으면 '정신승리'가 가지고있는 그 어떤 부정적 느낌을 이겨내고, 진리를 좇는 도반들의 깨달음처럼 오히려 깊은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표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성장이 정체되어 긴 시간을 경제적으로 멈추어 있던 경험을 나타낸다. 근래 일본을 보면 드디어 깊은 저성장의 늪에서 조금이나마 헤어나오는 것 같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한국 국민들의 노력과 함께, 지정학적, 국제정치적, 역사적 우연도 함께 겹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초 단기간안에 초고도 성장을 이루어낸 기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그 운도 다해 가는 듯한 모양새다. 곤두박질 치는 인구 구조와, 발전이 일정부분 포화상태에 이른 세계 흐름을 개개의 노력 정도로는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조심스레 예상하건데, 기나긴 저성장이 시작되는 징조가 선명하다.
저성장의 시기에는 노력과 함께 회사 조직이나 사회의 성장이 함께 상승곡선을 그리지 않을 수 있다. 매우매우 노력하면 그러할 수도 있는데, 전국민 중 매우매우 노력 가능한 '재능인'은 소수다. 보편인들도 모두 치열히 노력을 한다. 다만 고도성장기는 100만원의 노력을 하면 집단도 100만원치 함께 성장하여 이듬해에는 200만원의 보상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체된 사회에서는 100을 노력하고 100의 현상유지만 해도 기특한 것이다. 한국은 그런 시대의 서막을 앞두고 있는데, 과거의 성공문법을 몸으로, 정서적으로 계승한 채 머물러있다. 피 터지게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스토리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수천의 시체 위에 우뚝 선 용사 한명의 이야기지만, 대부분은 수천의 시체로 배경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근데 우리가 치열한 이유는 무엇이냐? 섬세하게 나뉘면 수만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극도로 단순화 시키면 생존을 보장받는 가운데 최대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문제는 한국은 어떤 물질적 성취와 지위적 도달을 그 대표 지표로 여기는 것이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행복에 닿는 중요한 요소라면, 이런 접근들이 과연 대다수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다. 기독교를 깊이 신앙하고, 일반 철학과 불교철학을 좋아하는(수준은 물론 얕지만), 주로 국제정치나 톺아보는 사회과학도에 불과하다. 종교를 말한 이유가 있다. 종교만큼 인간의 고통 문제를 전문적으로 풀어내는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에서는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에 큰 틀에서의 공통점과 각자의 차별점이 있다.
불교에서는 고통을 마주하는 첫걸음으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태어남에서 시작해 늙고 병들고 죽는 일까지,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고(苦)’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는 고통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탐욕, 분노, 무명에서 비롯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마음은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팔정도의 길을 따라 해탈이라는 해방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방식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분리해서 바라보며 집착하지 않는, 해탈의 길을 이야기한다. "아 내가 취업이 안되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구나", "아 내가 급여가 적은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이 고통스럽구나"를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그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이 상황보다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었으나, 두눈이 있고, 두 발이 있고, 그 낮은 임금을 받는 직장조차 없어 길바닥에 나앉는 사람도 있을터인데, 그렇지 않다는 점만으로도 오히려 만족스럽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고통에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독교는 고통을 하나의 하나님이 주신 형태의 훈련과 선물로 볼 수 있다. 나에게 처해진 이 고통이라는 '광야 훈련'을 통해 추후 받게될 영광의 면류관을 위한 하나의 훈련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Good보다 더 좋은 Best를 주시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다가올 영광앞의 훈련이고, 되려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접근이다.
결국 두 전통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불교는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해탈이라는 자유를 말하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두가지 모두를 배우자. 두 정신을 내면에 체화한다면, 고통이란 의외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된다.
실무적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을 흑과 백, 0과 100으로만 봤을 때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중간의 넓은 범주의 회색지대와 1~99의 범주는 고려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 의사가 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지만, 동사적인 목표로 받아들인다면 사람을 살리는 것의 명사적 직업은 너무나 다양하다. 심리상담사, 소방사, 종교인, 심지어는 라면 회사의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도 서민의 배를 채워 생명을 살리지 않는가. 위 두 종교의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을 체화하는 것과 함께 또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과 시선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떄로는 주로 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높은 수준의 지적 단련이 필요한 것에 비해 달리 직업적 TO가 없다시피 한 사회과학 박사이다. 그런데 또 박사만큼 정신승리 하기 좋은 것도 없다. 주변이 인정 하든 안하든 공식적인 지성인이라는 면허증, 여기서 혼자 즐기는 지적 유희가 있다. 근데 여기서 "박사학위도 있는데 교수나 연구원도 되지 못한 나, '남들이 보기에' 쪽팔리지 않는가"에 집착하면 그냥 그런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나름의 만족과 함의를 찾아가고, 실무적으로도 배운 바를 잘 사용한다면 유의미한 것이다.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면 고통이지만, '내가 의사가 되지 못해서 괴로웠구나'를 불교적으로 직시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또 다른 생명 살리는 길인 '응급구조사'가 되었는데, 기독교적 시각으로 삶을 관망하고 보니 이 구조사가 나에게 너무나 즐겁고 잘 맞는 직업이면서, 직장의 경험 가운데 의사가 되었다면 얻지 못할 큰 상급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엄청나게 압박적인 사회에서 영웅적인 자질로 원하는 바(위 예시에 따르면 의사 등)를 이루어 낸 사람이 있다면, 그 성취를 굉장히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됨으로서 그 또한 더 곱절의 행복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정신승리 하자. 길고 긴 저성장의 늪에서 흑백과 0과 100에 감금되어, 1개의 우뚝 솟은 화려한 나무보다는 그 주변을 이루는 그저그런 숲속의 한그루가 되는 것이 확률적으로 뻔한 세상에서, 그저그런 나무면 어떠한가. 사람들은 자기 잎사귀에만 관심이 있지 옆사람 잎사귀에는 사실 대부분 관심이 없다.
본질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기나긴 저성장의 늪에서, 1시간에도 수십명이 자살하는 대한민국의 행복도를 돌려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아니 세계의 풍요를 약속할 수 있는 '구도의 길'은 오직 정신승리가 아닐까 한다. 물론 나에게 그 정신 승리는 내가 가진 기독교 신앙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내 가족과 주변의 가까운 소수의 친구들, 내 동역자에게만 따뜻하고 깊은 친분과, 적정한 격려와 적정한 인정을 받으면 족하지 않을까.
# 이종길 작가는..?
한민족글로벌통일포럼 대표이자 북한학, 러시아/CIS지역학, 경영학, 노어노문학을 전공한 사회과학 박사입니다. 북한 등 사회과학과 관련한 다양한 아젠다들, 인생 이야기, 대학원 이야기, 삶과 철학 이야기, 신변잡기 등을 글로 녹여내어 독자들과 소통하고 소정의 흥미와 가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한민족글로벌통일포럼은..?
한민족글로벌통일포럼은 이념이나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질적 가치와 미래 전략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제안하는 민간 싱크탱크이자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활동단체를 지향합니다.
많은 회원가입과 후원 바랍니다
[접속 클릭] 한민족글로벌통일포럼 (creator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