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짓수 여정

주짓수 한 달 체험기

by 석원진

주짓수에는 오직 현재만 있다.


이제 주짓수를 한 달 한 주린이이기 때문에, 주짓수에 대해 무언가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주짓수라는 평생의 여정에서 극히 일부를 체험하고 말하는 모습이, 도쿄 여행 3박 4일 하고 온 사람이 일본은 어떻다, 저렇다 모든 것을 아는 듯 떠드는 모습처럼 보일 까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비록 아직 한 달이라는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주짓수에서 느낀 경험이 놀라웠고 이를 기쁘게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주린이의 감상을 너그럽게 봐줬으면 좋겠다.


시골로 이사가게 되며, 집중할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던 나는, 격투기를 새로 배우려 했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스테이지 위에서 뿜어내는 열정에 크게 감동했기 때문이다. 남자로서 그런 모습을 보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된다.


마침 집 근처에 주짓수 도장이 있어, 주짓수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첫 체험을 간 나에게, 관원들은 굉장히 친절하게 환영해 주었다.

다 큰 성인이 처음 격투기를 체험하러 오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번째 세션은 기본 드릴로, 주짓수 기본기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그중 주짓수에서 상대 압박을 탈출할 때 가장 기본으로 사용되는 동작중 새우 빼기라는 것이 있는데, 동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하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낑낑대며 새우 빼기를 할 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보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기술 연습에서 스파이더 가드를 배웠는데, 살면서 처음 해보는 동작이라, 직관적으로 하기 무척 어려웠다. 초보자로서 주짓수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이런 본능적으로 하기 어려운 동작들이 많다는 점 때문인 거 같다. 주짓수는 정말 복잡하다. 직관적으로 무언가 시도는 할 수 있는 타격과 달리 주짓수는 모르면 시도도 못하고 막지도 못한다.


이후 스파링에서는, 고등학생, 여성, 블루벨트 관원과 스파링을 경험하였는데, 시작하자마자 바닥에 깔려 허우적대는 거밖에 할 수 없었다.

스파링 때 주짓수식 압박을 처음 당해보면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살면서 체험해 볼 수가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감히 표현하자면, 이러다 압사당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압박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하루 종일 바닥에 깔리다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편안해져 있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힘쓰는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의 몰입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몰입은 마법과 같다. 아무리 바쁘거나 중대한 고민이 있을지라도,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게 해 준다. 바쁜 일상은 사라지고, 하얀 매트 위에는 나와 상대만 존재하게 된다.


스파링을 몇 번 하고 느낀 점은 중학생, 고등학생, 여성까지, 내가 체육관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파링에서 멋지게 서브미션 승리를 하는 것은 나에겐 꿈만 같이 먼 일이다. 결국, 스파링에 들어갈 때는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게 최선이다. 어제보다 탭 1번 적게 치기, 어제와 같은 가드 패스 안 당하기 등이 그렇다. 초보자라도 작은 목표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 이런 작은 성취가 비록 매일 모든 사람에게 지더라도, 집에 돌아갈 때 작은 성취감을 가지고 돌아가게 해 준다.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항상 배우려 하며,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스파링이 끝나고 나서는 내가 놓친 디테일에 대해 질문하길 계속하면 정말 실력이 쭉쭉 는다. 모든 스포츠에 해당하겠지만, 특히 주짓수에서는 자기 객관화와 겸손함은 너무나 중요하다. 상대에게 배우고 배운 것을 공유하는 문화는 주짓수 커뮤니티가 특히 협력적이고 친절하게 되는데 공조한 것 같다. 열정적으로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문화는 주짓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겸손히 배우고 나누는 과정은 결국 내 안의 태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짓수는 문제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깔리고 탈출하는 것이 반복된다.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끊임없는 시도 끝에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언제부턴가 놀라울 정도로 회복탄력성이 강해진 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본래 무언가 문제에 직면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전부 받아들이게 됐다. 대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매일 묵묵히 집중하기로 했다. 실패나 문제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령 인생에 어떠한 문제들이 닥치더라도 100kg 근육질 남성에게 마운트 당하는 압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받아들이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는, 어느 순간 주짓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몰입으로 이어졌다. 평소보다 힘을 빼고 상대방의 움직임에 집중할 때, 나는 어느 날 상대방의 무게중심과 프레임 구조가 마음속에 선명히 느껴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주짓수가 주는 몰입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 사이 현재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게 만들어준다. 주짓수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현재만 존재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주짓수 시작한 지 3일 차에 첫 가드패스 경험을 하게 됐는데, 의식 없이 찰나의 순간을 노려 본능적으로 패스를 성공하게 됐다. 이틀 동안 깔리기만 하다, 첫 가드 패스를 성공한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첫 키스보다 달콤한 게 첫 가드패스다. 첫 가드패스의 짜릿함은, 나를 시간 날 때마다 주짓수 영상을 보게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의 그리고 도장에서의 마지막 날, 첫 서브미션을 성공한데 이어, 3명에게서 6번의 탭을 받아낼 수 있었다. 첫 가드 패스에도 그렇게 기뻤는데 첫 서브미션은 어땠겠는가?

이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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