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힘과 카리스마가 아닌, 무례한 사람들을 만났어도, 좌절과 고통을 겪었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에 친절하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강함임을 나는 이해했습니다.
일본에서 거주를 시작하고 2년 차 때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겪게 됐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서 1년을 채우고 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부동산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부동산 회사들에 전화를 돌리던 중,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래를 거절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는 외국인 보다, 내국인에게 부동산을 빌려주고 싶은 집주인과 부동산 회사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무례하게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10개가 넘는 부동산 회사와 통화를 하며 그들 중 오직 2곳만이 정중하게 거절을 하였고,
나머지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태도가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인터넷에서, 일본에서 외국인을 차별하는 영상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차별을 직접 겪게 되니, 왜 차별 문제에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하는지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특히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던 회사는, 전화 도중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자,
곧바로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무례하게 접대한 곳이었다.
그들과의 전화가 끝나고, 몹시 불쾌한 경험에 격앙된 나는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다. 전화가 끝나고 대학교 라운지에 갔을 때(나는 시간 날 때마다 대학교 라운지에 가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을 즐긴다), 무슨 일인지 나는 처음 보는 일본인 학생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고 그들은 고맙게도 나보다 더 화를 내주었다. 그들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까지 화를 내주어 나는 속으로 너무나 고맙고, 잠시나마 일본 전체에 대해 욕을 한 내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어 그들의 일행인 브라질 친구와 미국인 친구들도 라운지에 오게 됐고 그들도 내 이야기를 듣더니, 똑같은 경험담을 해주었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도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부동산에서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고 더 나아가 무례한 접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 중 2명은 내 말에 공감해 주는 거에 멈추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친절한 부동산 회사를 소개해주며(브라질, 미국인 친구가 소개해주었다), 내일 지금 소개해준 부동산 회사에 바로 같이 가주겠다고도 하였다. 혼자 찾아가겠다는 내 말에도 끝까지 무조건 같이 가겠다는 그들을 보며, 정말로 서러움이 폭발해 눈물이 쏟아질뻔했다.
그들은 정말로 다음날 아침 역으로 왔고 그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전부를 내 부동산 계약을 도와주는데 시간을 썼다. 나는 너무 고마워, 저녁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그들이 끝까지 거절하여 결국 사줄 수 없었다.
그들은 알고 보니 ESS라는 학교 내 영어 회화 동아리 서클원들이었고 그날 라운지에서 모임을 가졌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계기로 이 동아리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고 그들과 몹시 친해졌다. 더 나아가 현재 나는 서클 운영을 직접 맡게 되어, 부동산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고마운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나는 다음 달 그들을, 함께 계약한 내 집에 초대해 스테이크와 술을 대접할 계획이다.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당시 부동산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다시는 앞으로 먼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하는 것에 따라 내 태도를 바꾸겠다고 결심했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거친 세상에 대항해 강해지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내 문득 기억난 것이, 일본에서 만났던 수많은 나이 많은 신사들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 험한 꼴을 긴 인생을 살면서 경험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친절하고 신사스럽다는 사실을 알자, 나는 그들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게 됐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불친절한 세상과 사람을 겪고, 복수심과 분노에 휩싸여 물리적 힘 혹은 사회적 지위를 길러 제압하는 사람이 아닌, 불쾌한 경험을 발판 삼아 친절함과 상냥함의 가치를 이해하고 견지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강한 친절함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