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과 고백 사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멋있게 차려입었다. 집에서 가장 비싸고 멋진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몸에 씌웠다.
그 사람은 나의 다섯 번도 넘는 여러 번 데이트 신청 끝에 바쁜 평일 오후 시간을 내어 커피 한잔을 응해주었다.
감사했다. 내가 그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그 사람도 어쩌면 나에게 호감이 조금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 어쩌면 오늘, 나의 마음이 그에게 깊이 닿아 연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도 혹시 나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망설였던 것은 아닐까.
긴장되면서도 설렜다.
말문이 막히면 안 되니,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20개는 준비했다. 혹시라도 물어오는 질문에 어색하게 답하거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니 예상질문 여러 개와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대답도 여러 개 답안지처럼 외워놨다.
카페에 들어섰다. 약속보더 30분이나 더 일찍 도착했다. 그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리에 차분히 앉아 긴장하고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그녀와의 대화 첫 시작과 끝을 예상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집에 데려다주며 굿바이 손인사를 멋지게 하는 상상까지 마치고 잠들기 전 카톡으로 다음 약속을 기대하는 상상까지 추가로 마쳤다.
그녀가 카페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분하게 오늘 나만의 시나리오대로 커피를 시키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커피가 나오고 나서 예절 바른 공학적 미소와 무거운 질문으로 대화를 먼저 시작했다.
“저를 좋아하세요?”
“네.”
“아.. 그래요..”
“여러 번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하셔서 제가 영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
“아 네.. “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해 마음이 있어서 커피에 응한 거라고 응당 생각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1시간 동안의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 일정이 있던 그녀는 오래 나와 함께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좋은 물꼬를 텄다고 생각했다. 집에 데려다주는 상상은 상상에서 끝난 것이 되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오늘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카톡이 왔다.
“저.. 죄송하지만 제 타입은 아니시라서요.. 사귀는 건 아니지만 제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좋은 분 만나세요”
마음이 무너졌다.
짝사랑. 사랑에 앞글자만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인데도 애처로운 단어로 변하는 단어. 내 오늘 하루의 로맨스가 그녀의 거절로 점철되며 이렇게 끝이 났다. 왜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로맨스마저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며 쿨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오늘 그래도 커피 마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면접에서 차였다.
데이트에서 떨어졌다.
어느 것이라도 짝사랑은 실패가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나만의 이유가 충분하다면, 그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데이트에서 차였다고 억지 부리면 스토킹이다.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진상부리면 얻을 것이 없다.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다면, 회사는 뽑고 싶은 사람을 뽑고 싶은 인사권이 있다.
모두 고유한 권한, 즉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는 권리이다. 다만 그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절차상 사회적인 관습과 격식 절차를 필요로 할 뿐이다.
예전 리크루터 시절 어떤 면접자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왜 본인이 떨어졌는지 명명백백히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떨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떨어뜨린 회사의 무능력꺼지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항의였다.
글쎄. 나는 이미 그 항의 전화에서 그가 떨어진 이유가 이미 증명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면접자는 아마도 그가 이 회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응당 회사도 그에게
결과적 애정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를 좋아하는 회사가 분명 있을 것인데, 만약 이 회사만 좋다고 짝사랑을 이어 나가면 그것은 집착이 되고 스토커가 되고자 하는 결정이다.
많은 면접자들을 탈락시키고 탈락 메일과 전화를 하면서 되도록이면 탈락자들이 회사에 주었던 관심과 애정의 좋아하던 순수한 마음을 폄훼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으려고 했다. 탈락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 탈락시켜도 좋다 라는 사회적 뜻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그 탈락자들이 느끼는 심정을 나도 수차례 겪었기에. 심지어 어느 시점엔 탈락자가 아닌 합격자가 될 수 있거나, 어느 순간에는 면접자보다 이 회사가 그들을 더 애정해야 하고 구애해야 하는 시기가 올 수 있기에. 심지어는 그 탈락의 의미가 이제는 구직자와 기업이 아닌 고객과 기업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기에 등의 여러 이유로, 나는 최선을 다해 탈락메일을 썼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은 다른 것이다. 세상에는 여성할당제 군 가산점 장애인 고용 할당제 등 많은 사회적 장치의 결과적 평등을 고려하는 요소들도 여럿 있어왔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기회적 평등에는 관대한 반면 결과적 평등에는 다소 엄격하고 야박하기까지 한 경우가 있다.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지만 누구나 다 기회를 잡을 수는 없다는 현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구직자가 다시 취업을 위해 커리어를 위해 새로 자기 계발을 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실패를 거름 삼아 새로 도약하고자 하는 기회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한번 차였다고 연애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면접에 떨어졌다고 취업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새로 시작할 힘이 남아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힘을 길러지게 하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고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애게 주어진다.
채용 담당자로 일하며 면접은 어쩌면 연애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처음엔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력서라는 한 장의 편지를 건네며, 나는 당신의 관심을 끌고 싶다고 고백한다.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날, 가장 빛나는 사진을 골라 프로필에 올리는 것처럼, 우리는 자기소개서에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아 담는다.
서류 전형은 첫눈에 반하는 단계다. 글로만 마주하는 사이에서도 묘한 끌림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면접관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읽어내려 애쓰고, 지원자는 그 안에 자신을 투영해 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다음은 첫 만남, 면접이다. 몇 마디 말, 눈빛, 자세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는다. 여기서부터는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인지, 어울리는지를 가늠하는 시간이다. 한쪽은 말 속에서 진정성과 태도를 읽고, 다른 한 쪽은 질문 속에서 회사의 온도와 방향을 느낀다. 이 짧은 대화에서 얼마나 깊은 인연이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서는 길은 연애에서 고백 후의 기다림과 닮았다. 간절하지만 조급하지 않으려 애쓰고, 좋은 인연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때론 연락이 오지 않아도, 그것마저도 인연의 한 방식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채용은 마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고백의 순간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걸어갈 수 있을지를 말하고, 함께 만들 미래를 약속한다. 시작은 늘 설렘이지만, 그 뒤엔 함께 풀어나가야 할 현실이 기다린다는 것 또한 같다.
면접도 연애도 결국은, 나라는 사람을 알아봐 줄 단 한 사람을 만나는 여정이다. 가면을 벗고 진짜 마음을 보여줄 용기, 그리고 그 마음을 존중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만남 앞에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