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2
3주간 배달하며 느낀 점
재수 이후 치킨집, 고깃집과 같은 여러 알바들을 전전했다. 내 성격상 장시간 기름때를 묻어가며 일할 정도의 인내심이 없고 탁 트인 공기를 좋아해 오래 못하고 그만뒀다. 또한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은 대학에 붙어 기분이 떨떠름하고 잉여인간마냥 비생산적으로 집에만 있는게 한심해 배민커넥트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말연시 특수를 누려 100만 원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3년 동안 타지 않았던 자전거도 다시 꺼내 바람 빠진 앞바퀴 튜브를 2만 5천 원 주고 수리를 받았고 , 배달할 때 음식을 고정할 수 있는 몸에 매는 배달가방을 3만 원 주고 샀다. 그리고 네비를 보고 배달해야 하기에 5천 원 주고 핸드폰 거치대를 샀지만 오토바이용인 걸 못 보고 5천 원 주고 다시 새로 자전거용 핸드폰 거치대를 5천 원 주고 샀다. 배달하려고 벌써 6만 원 5천 원을 쓴 내 모습을 보니 배보다 배꼽인 상황이 말 그대로 벌어졌다.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첫날에 장비 풀세팅하면서 밖을 나섰지만 정작 배달 한 건도 받지 못하고 돌아왔기에 ‘계획만 세우고 제대로 실행 못하는’ 나 자신을 푸념하며 2시간 동안 추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거리를 활보했다. 재수 실패 후에 앞으로의 계획과 꼬여버린 20대 초반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고 매번 허탕만 치며 부모님의 꾸중까지 듣게 되니 다음날에 마지막 한 번만 해보고 도보로 배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에도 허탕 치는 줄 알았으나 2시간 만에 김밥천국 배달을 받았고 3천 원의 배달료를 받고 자취생이 살 것 같은 빌라주택단지에 들어서서 배달완료 사진 찍고 빌라 밖으로 나갔다. 느낌이 묘했다. 내가 잘 배달했는지부터 자전거 타면서 다른 차를 긁은 건 아닌지 하는 사소한 걱정을 하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때 이후부터 자신감이 붙어 밤마다 배달을 나가게 되었고 점점 배달일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특정 시간대에 어디에 가야 배달을 많이 할 수 있는지, 평소 2500~3000원 하던 배달료가 기상조건 및 공휴일등 할증이 붙어 4500~5000원까지 받게 되니 궂은 날씨에도 쉬지 않고 계속 배달일을 세 시간씩 했다.
그리고 알래스카보다 추웠던 1월 10일에 6건에 38000원가량을 벌 수 있었다. 많지 않지만 어느 정도 짭짤한 수익을 얻고 다리 허벅지도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지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고 코 끝이 박하사탕 먹은 것처럼 시원해져 다시 태어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느껴도 상처를 받았는데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가 배달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치면서 많은 인간군상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행동을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나를 존중해준 사람들, 날 엽신여기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배달 가방을 메며 배달하는 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며 서툰 내 모습에도 화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상냥하고 느린 템포로 천천히 말해주며 ‘수고하세요.’, ‘처음이시죠?’,‘맛있게 먹겠습니다.’등으로 말해주는 분들이다. 그리고 문도 잡아주시고 엘레비이터도 내가 올 때까지 잡아주시는 친절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분들 덕분에 나도 친절하게 말하게 되고 짜증도 덜 내게 된 것 같다.
반대로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화내며, 언짢은 표정과 높아진 언성으로 '아니요, 잘못 오셨어요, 전 몰라요.'라고 말하며 좁쌀 같은 눈으로 날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쏘아보며 상대하기 싫은 얼굴을 한 사람도 봤다. 그리고 늦은 내 잘못도 있지만 배달음식을 배달하고 나서 다음 배달하러 핸드폰을 봤을 때 내가 배달했던 음식을 취소하는 사람도 봤다. '돈을 내지 않고 음식만 받아먹겠단 건가?'라는 생각이 될 정도로 어이없는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고(시스템 오류일 수도 있다.) 좁은 길에 자전거 종으로 두 번이나 쳤는데도 비켜주지 않은 사람도 많이 보았고 아파트 공공현관문 앞에 공공현관문 비밀번호도 맞지 않고 경비실에, 주문자에게 전화해도 안 받고 있어 어쩔 줄 몰라 서있는데 공공현관문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날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엘리베이터가 오니 쌩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또 배달하러 가고 있는데 중•고등학교 일진 같은 어린 친구들이 날 보고 '이 신종 딸(딸배:배달원의 멸칭)은 뭐냐'하며 비웃고 지나가는 상황을 보기도 했다. 자기보다 먼저 갔다고 발로 땅을 쿵쿵 치는 사람도 봤다.
직업에 귀천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능상 전문직 고소득이 선망받는 사회라는 점과 일부 무개념 배달원(난폭운전, 귀 아픈 배기음)들로 인해 배달하는 직업을 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고 이로 인해 내가 이런 말을 들은 것 같다. 또 장갑 끼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내 모습 때문에 그런 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편견, 선민의식의 끝판왕인 학벌에 집착해 재수까지 했으니.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무례하게 대놓고 멸칭을 쓰거나 종을 여러 번, 경적을 울려대도 비키지 않은 적은 없다. 즉 내가 느낀 건 편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편견을 몸을 표출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고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며 막 대하는 사람들. 남녀노소 막론하고 도덕적인 마음이 결핍돼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보면 어떨까.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한 말투로 대하면 어떨까.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군 적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버럭 화내고, 내가 하지 않았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따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성찰을 한 것 같다. 공감보단 내 주장이 옳고 너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고 서로 갈라지는 요즘 세상에서 급박함을 줄이고 마음속 정원을 기르며 사람들을 초대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