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습작-3

by 보스니아의 병사

-가지치기-


모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간절했던 친구가 있었다. 인생을 같이 하고픈 그런 사람.


여러 종류의 친구 관계가 있지만 나에게는 3가지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관계이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은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관계이면서도 상대도 같이 호응하는 관계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나는 문을 열었지만 상대는 문을 굳게 닫아 내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관계이다. 설사 내가 다시 용기 내어 접근해도, 마음의 문조차 열 여유를 갖지 못한 그 사람의 증오와 경멸로 달궈진 손잡이를 잡다 손이 덴 경우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이 세 번째 사람들에게 상처 입곤 했지만 성장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인 것을 이해하면서 쉽게 가지치기를 하게 되면서 신경 쓰거나 상처받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첫 번째 사람들에게 당한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지금도 상기된다. 그때는 첫 번째 사람들 때문에 심장이 타오르듯 가슴이 답답하고 '내 마음을 이리도 모를까?' 하는 심정이었고 1이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에 답장 오길 기다리는 전남친, 전여친처럼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답답해 터져 버릴 것 같은 폭탄을 지닌 적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가지치기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자르려고 하는 순간 주저하며 냉정함을 내려놓고 펑펑 울기도 했다. 그 사람 때문에 우는 것인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왜 이리 한심할까?' 하는 한탄 섞인 심정으로, 나 자신을 내팽기치는 나 때문에 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손에 박힌 가시를 계속 방치할 수는 없기에, 첫 번째 부류에게 대한 역겨운 나의 비굴하고 찌질한 행동을 끊어낼 겸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지치기를 단행했다. 접목시킬 마음도 생길 여유도 없이 싹둑 잘랐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부류인 사람들에게 시간을 쏟았다. 작은 풍파에도 쉽게 휘어지는 관계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큰 사건이 있음에도 생채기만 나있는 가지들에만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이 두 번째 부류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져도 첫 번째 부류인 한 친구만큼은 쉽사리 끊어내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서, 오랫동안 만나서, 유쾌해서, 힘들었던 순간에 많은 도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삶의 활력을 안겨준 그런 친구여서 쉽게 끊어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 친구를 대했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도 관심 갖게 말도 붙이고 장난스러운 인터넷 짤이나 웃긴 사연 등을 공유하며 친목을 다지려 했다. 나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나의 아픔과 그 친구의 아픔을 서로 공유하고 같이 여행하고 밥 먹고 그런 절친의 관계로 맺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8년 지기 10년 지기 친구들이 있으면 나보다 그 친구들을 우선시했다. 내가 양보하기도 하고 그 다른 친구들의 얘기도 듣고 그랬다. 그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그 아이는 내 얘기를 집중해서 듣지 않고 날 주변에 있는 사람 1로 취급하고 그 친구들만 많이 지냈다. 나는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장난 하나 치지도 않고 그냥 가볍게 인사만 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단념했었어야 했다. 그와의 경계를 확실히 긋고 제한했어야 했지만 내 성격이 그러지 못했다. 그 친구는 못 느꼈지만 나는 계속 속에서 끓었고 그 친구에게 서운함이 느껴지게 되었다. 그런 불만을 솔직히 토로해도 그 친구는 '알겠다 신경 쓰겠다'고만 말하지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행동이 의무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끙끙 앓았고 인스타 게시물에도 좋아요 하나도 누르지 않은 그 친구가 야속했고 이런 게 쌓이다 보니 자주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사과하고 끝났다. 그 친구가 사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도 바로 받는 게 아니라( 바로 안 받을 수는 있지만..) 1주일, 1달 동안 내 사과메시지를 읽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미련했다.




- 그리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그 친구와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 어린이정원

교통사고를 당하고 내서 다른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그 친구에게도 전했지만 방식이 잘못되었다. (다른 친구들과 장난치며 지내고 인스타를 활발히 이용한) 그 친구에게 장난 식으로 ‘밤길 조심해’라고 보냈다. 하필 그때 내가 소설책을 읽고 있었고, 핸드폰도 무음이었다. 40분이 지난 후 다시 보니 수십 통의 메시지가 장문으로 쌓여있었다. ‘지금 날 가지고 협박하는 거냐’ ‘나랑 장난치는 거냐’. ‘더 이상 너랑 친구 해주기 힘들다.’ ‘그동안 잘 지냈고 앞으로 보지 말자’라는 식으로 다는 기억은 안 나지만 원색적으로 나에게 욕설과 따지는 말들로 가득 찬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경황스러웠다. 보통 다른 애들한테는 서로 죽어라는 식의 장난도 치고 때리기도 하는데 내가 보낸 ‘밤길 조심해’는 그 친구에게 용인되는 범주가 아니었다. 내가 밤 8시에 보낸 문제이기도 했지만 너무 속상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장난도 치는 것도 안 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에, 그리고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정황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이런 것들은 안 물어보고 무조건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한 메시지를 받아야 할까? 하는 괴로움에 너무나도 슬펐고 3년의 시간이 지금 이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히니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바로 해명했다. ‘사실 교통사고를 당해서 너에게 위로받고 싶어 연락한 거다.’ '너에게 살해협박한 것이 아니라 너와 소통하고 싶었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 등 구구절절 이런 식의 글을 쓰고 내가 링거 맞은 모습과 다리를 붕대로 맨 이 현 상황을 사진으로 첨부해 메시지를 보냈지만, 1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내가 퇴원할 때까지도 읽지 않았다. 그때서야 난 느꼈다. ‘날 친구로 여기 지도 않는구나.’ '얘의 다른 친구가 이랬다면 달랐을까?' 내가 잘못한 거지만 이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어떻게 1달이 다 되도록 답을 하지 않고 다른 친구(b)에게 부탁해 사건의 전황을 설명해 달라고도 부탁했는데 어떻게 그 친구의 말도 듣지 않았는 거지?‘라는 고뇌의 뫼비우스에 날 가뒀다. 다른 친구에게도 부탁했지만 날 이해하려고도 않았고 인스타에 자신이 붙은 대학 증명서만 스토리에 올린걸 보니 화딱지가 났다.


그날 이후 난 그 친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걔의 전화, 카톡, 메시지를 모조리 삭제, 차단했고 인스타도 탈퇴했다. 그렇게 난 자연스럽게 걔와의 접점을 없앤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인간관계도 지웠다. 그리고 재수를 했다. 내가 저 친구보다 훨씬 더 좋은 대학에 붙겠다는 마음과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고독하고 지겨운 상황을 파타 하고자 재수를 시작했다.


재수가 끝나고 비약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수시로 대학에 붙었다. 다른 사람들이 와!~할 정도도 아니지만 인스타를 다시 시작해 나의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추천 친구로 그 친구 프로필이 떴는데 그냥 차단해 버렸다. 너무나도 꼴 보기가 싫은 마음이었고 가지 치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마음이 있었다.

1월 중순 오랜만에 친구(b)를 만나고 근황 얘기 좀 할 겸 여러 얘기가 나오다 내가 그 친구의 안부를 물어봤다. 근데 뜻밖에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가 작년에 나의 근황을 물어봤다는 것이다. 2번 정도를 물어봤다고... 나는 그 소식을 듣자 그 친구에 대한 아쉬웠던 순간들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고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와 어떻게 나에게 무정하게 대했나 하는 아쉬움이 섞인 증오로 내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친구(b)가 한 번 용기 내서 말 걸어보라고, 사과로 접근하라고 말하니까 난 좀 짜증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사과하는 게 옳은 것일까? 나는 그 친구에게 사과를 받고 다시 시작할 마음이 있지만 과거처럼 또다시 내가 먼저 사과해서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1시간 정도 더 얘기하고 헤어지고 나서 걷다가 무심결에 인스타에 들어가 그 친구에 대한 차단을 해제했다.



그리고 설날이 시작되기 전날에 팔로우를 걸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 친구를 다시 연결할 기회를 하늘이 주지 않은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주가 다되어도 수락을 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계정만 꾸미기 급급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관계회복 즉, 접목을 성공하기 위해 나 자신을 굽히고 사과의 메시지도 보냈지만 읽지도 않았다. 팔로우를 걸고 2~3일을 전전긍긍했던 것 같았다. 왜 답장이 없는지, 왜 자신의 계정만 꾸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미칠 지경이었다. 시/도를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배달 알바를 하며 잊어보아도 인스타에 들어가면 변화 없는 팔로우 숫자에 진절머리가 나 인스타를 수십 번 삭제하기도 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상태로 인스타 팔로우 수를 보는 내가 너무 하찮고 가련했다.



다행히도 이 상태는 정확히 3일이 지난 후에 나아졌다.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 ‘네가 그럼 그렇지’하는 생각을 하며 접목하려던 행동을 멈추고 그만 꺾어진 가지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많은 생채기가 있고 휘고 울퉁불퉁한 내 모습을 보며, 화려하지도 않고 수수한 가지가 있어도, 짧아도, 잎이 적어도 끈끈하게 연결된 내 나무를 보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가지치기와 새로운 가지가 생길 날 바라보며 ‘가지치기를 잘했다.’고 씩 웃고 핸드폰을 껐다.

2024년 충북 청주시 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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