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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낯선 환경, 사람으로 적응하다

인복이 많은 나란 사람

by 별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라파즈에서 살아남기란 꽤 힘들다.

오르막길을 조금만 올라도 한국이랑은 다르게 금방 숨이 벅차오른다.

운동을 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한국에서 그나마 조그만큼 있던 체력은 반토막이 되었다.

평소 남용하던 산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래도 즐겁다.

볼리비아 사는 내내 즐겁기만 했다.

같이 봉사 온 동기들은 모두 쾌활했고 함께 지내는 동안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같이 관광지 구경도 가고, 밥도 먹고, 게임도 했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들 개성이 강해서 그런지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우리는 낮에는 공부하고 코이카가 주는 일정을 소화했고 가끔은 밤에 모여 게임을 했다.

쉬는 날이면 사람들을 모아 관광을 다녔다.

티티카카호수와 마녀시장
볼리비아의 교통수단, 텔레페리코


동기들과 마니또도 하고 아플 때면 서로 챙겨주며 그렇게 가족화가 되어갔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곳들을 뽈뽈 돌아다녔다. (볼리비아 관광지 소개는 따로 글을 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에서 체력이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알차게 보냈다.


파견 후 6주 동안은 현지적응교육을 실시한다.

때문에 임지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 모두가 수도 라파즈에 모여 교육을 받는다.

현지어교육, 규정교육 등 다양한 교육이 진행된다.


스페인어는 20살 때 발음이 멋있다는 이유로 잠깐 배우고 손을 뗀 지 오래라 초급 중에 초급 수준이었다.

볼리비아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번역기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 할 만큼 고생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느라 매일 춤을 추듯 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지어교육은 필수사항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마다 공부를 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는 매일아침 어학원에 간다.

우리 반 선생님인 바니아는 매일 색다른 게임을 준비해 주셨다.

스페인어 노래도 틀어주시고 해석도 해주시며 지루한 수업이 되지 않도록 매번 노력해 주셨다.

처음에는 온통 스페인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에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하다 보니 신기하게 들리고 이해가 됐다.

아는 게 없어도 소통이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간혹 선생님이 쓰는 영어로 이해가 쑥쑥 잘되기도 했다.

밤에는 피곤한 몸을 이 끌로 숙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선생님과 함께했던 추억은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구) 학원 선생님 (현) 온라인 과외 선생님이 되셨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일리마니산에 얽힌 사랑이야기
닭을 선물 받으면 애인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셔서 나는 더 큰 것을 선물해 드렸다.)
겉은 마태체처럼 생겼고 딱딱하지만, 속은 감과 비슷한 맛의 Pacay라는 과일! 수업시간 중 갑작스런 시식타임


이제 혼자서 주문도 할 수 있고 미니부스(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를 혼자 탈 수도 있다.

특히 미니부스가 이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류장이 따로 없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면 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Esqina Por favor.(모퉁이에서 내려주세요)

하나씩 현지화할 때마다 뿌듯함이 배로 올라간다.

어깨와 입꼬리도 하늘을 찌르듯 올라간다.

이게 새로움의 적응하는 맛이구나.



주말에는 버디프로그램이 있다.

현지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현지인들이 우리를 재밌는 곳으로 데려가 준다.

덕분에 나는 Vella de la Luna(달의 계곡)도 가보고, 현지인들과 다 같이 피크닉도 했다.

피크닉에 가서는 다 같이 게임도 하고 김밥을 나눠먹었다.

무려 버디가 직접 만든 김밥이었다.

당시에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없는 호텔생활 중이었기에 한식만 보면 눈이 돌아가버리던 나였는데, 그 마음씨에 감동받았다.

내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외국인이 만들어준 김밥이라니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올라왔다.

우리는 먼 나라에서 나고 자랐지만, 김밥하나로 연결되었다.

달의 계곡
버디가 만들어준 김밥



금요일, 토요일이면 Camacho광장에서 케이팝 랜덤플레이댄스장이 열린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뛰어나와 춤을 춘다.

다음 노래도, 다다음 노래도 전부 다 아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인인 나도 절반은 모르는 노래였는데 어려운 동작까지 춤을 춰내고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케이팝 문화를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타나자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 요청만 한 100번 정도는 받은 것 같다.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인 우리를 보며 부끄러워하며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광장에 갈 때면 연예인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스트레이 키즈의 소리꾼 노래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흥이 오른 나는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아는 노래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춤을 추러 나가자 들려오는 환호성에 되려 민망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민망한 감정은 사라지고 내가 이 순간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즐겼다.

행복함 그 이상의 이상한 감정이 몰려왔다.

안무 중에 다 같이 모이고 흩어지는 순간, 하나로 움직이는 사람들... 한 팀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몇 사람들과는 이야기도 나눴는데 케이팝만 10년을 췄다는 사람, 누군가의 팬이라는 사람, 우리에게 BTS춤을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가 모여 케이팝으로 하나가 될 수 있구나,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몸으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그날만큼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다.

"나 한국인이다."



그 외에도 나는 현지교육기간 동안 볼리비아 전통 춤, 전통악기도 배웠다.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사간들을 보낸 덕분이다.

볼리비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안전했고, 따뜻한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볼리비아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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