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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꼬로이께냐라 다행이다

소박해서 아름다운 것들

by 별나

꼬로이께냐(Coroiqueña)란 볼리비아 꼬로이꼬 지역에 엄청 오래 살거나 꼬로이꼬에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볼리비아에는 이와 비슷한 말이 꽤 많다.

빠세냐(Paseña), 융게냐(Yungueña) 등과 같이 한 지역에 오래 살거나 태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맨 뒤에 스펠링을 바꾸면 꼬로이께뇨, 빠세뇨, 융게뇨(Coroiqueño, Paseño, Yungueño)가 되는데 이는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 된다.

스페인어에는 단어에도 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보통 a로 끝나는 말은 여자, o로 끝나는 말은 남자를 뜻한다.

한국에는 전혀 없는 언어처계이니 생소하면서 어렵지만, 새롭기에 재밌다.

이 지역에 대한 나의 감정은 스페인어와 비슷하다.

생소하면서 어렵지만, 재밌다.

광장.jpg 꼬로이꼬의 중심 광장

꼬로이께냐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조금 거주한 시점이지만, 그래도 난 자칭 꼬로이께냐다!!



입구.jpg 꼬로이꼬 마을 입구

꼬로이꼬가 너무 좋아 나는 자칭 꼬로이께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시골이고 인프라가 좋은 곳은 아니지만, 터를 잡고 살고 있어 그런지 애정이 간다.

이제 꼬로이께냐가 들려주는 꼬로이꼬의 좋은 점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1.jpg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1. 자연 공기청정기

꼬로이꼬는 산에 둘러싸인 지형으로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한국처럼 미세먼저농도 측정 기능 같은 것은 없지만, 풀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곳은 동네 전체가 공기청청기를 빵빵하게 틀어놓은 듯 깨끗하다.

광장에서 조금만 나가면 아름다운 대 자연이 펼쳐진다.

자연 속에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복잡한 생각 따위는 사라진다.

한국보다 훨씬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곳은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는 맑은 곳이다!!



2. 적당함

볼리비아는 크게 고지대와 저지대로 구분 지어진다.

높은 곳은 해발 3000m~4000m까지 다양한 고도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살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게 특이하고 그 때문에 매력적인 자원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고산지대에 살다 보면 건강상의 부작용이 꽤 많다.

실제로 단원 중 한 사람은 1년 넘게 고산에 거주한 결과 심장 비대증이 왔으며 나의 경우에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갑자기 고산병이 도졌다.

고산병의 대표 증상으로는 숙취같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심한 경우 숨을 쉬기 힘들기 때문에 산소마스크가 필요할 수도 있다.

고산지대에 살다가는 나도 모르게 몸이 망가질 수도 있을 만큼 리스크가 크다.


꼬로이꼬는 해발 1600m의 고도로 볼리비아 내에서는 저지대해 해당한다.

설악산 정산이 1700m이니 설악산 정상에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고도가 적당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후도 너무 좋다.

많이 습하지 않고 그렇게 덥지도 않으며 그렇게 춥지도 않기 때문이다.

연평균 기온이 18.4도로 1년 내내 가을 날씨 정도다.

기후만 보자면 꼬로이꼬가 한국보다 훨씬 좋다.


적당한 고도에 적당한 습도, 기온까지 나는 이곳의 자연환경이 좋다.



3. 도시수혈

시골에서 수도랑 가깝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 있다.

도시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시골에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첫 시골살이가 작은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이곳은 관광객이 꽤 방문하는 곳으로 여러 상점들이 몰려있다.

물론 좋은 물건이나 수입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라파스로 가야 하지만, 웬만한 물건을 수급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

다우니 섬유유연제도 있고, 키친타월, 콘푸라이트시리얼, 물티슈 등 여러 가게를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찾을 수 있는 물건이다.

파견 오기 전 가장 큰 문제는 고기였다.

이곳은 냉장시스템이 거의 안되어 있어서 고기를 생으로 밖에 내다 놓고 파는데 위생상태도 불량할뿐더러 상한 고기를 섭취할 수도 있어 고기를 사 먹지 않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냉장고에 고기를 보관하고 마트에 파는 것처럼 깨끗한 팩에 들은 고기를 파는 곳을 찾았다.

나는 요즘 그곳에서 요리하기 쉬운 닭가슴살을 구매하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삼겹살 같은 돼지고기는 구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가끔 라파스에 들러 삼겹살과 꼬로이꼬에 팔지 않는 야채들을 사거나, 한인마트에 가서 라면 등의 한국음식을 구매하기도 한다.

특히 중요한 한인마트! 와 가까운 지역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미니벤을 타고 가면 30 볼리비아노(약 5500원)에 2시간 30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땅이 넓은 이곳에서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편이다.

라파스에 사는 친구 단원도 있고 다양한 맛집과 내가 좋아하는 빵집도 있으니 도시 수혈 장소로 아주 완벽하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4. 새로운 식구

꼬로이꼬는 여가 시간을 보낼 곳도, 문화생활을 할 곳도 없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하지만 조그마하기에 단원들끼리의 거주지도 다 모여있다.

때문에 우리는 쉽게 모일 수 있다.

꼬로이꼬 단원 중 집에 초대하여 음식 대접해 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그 집이 넓고 좋은 편이기도 하여 자주 그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집을 내어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덕분에 우리는 모여서 집주인 요리해 주는 밥을 먹거나, 각자 집에서 요리를 해와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한다.

다들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우리는 꽤 풍족한 식사를 하는 편이다.

볼리비아에서 이렇게 잘 먹을 줄 몰랐는데 다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덕분에 살도 올랐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식사를 마친 후에는 과자를 까서 영화를 틀고 꼬꼬시네마를 개장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은 빠질 수 없다.

볼리비아의 와인은 저렴하고 맛도 좋기 때문에 나는 와인에 관심조차 없었지만,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너무 즐겁다.

다 같이 모였을 때의 우리는 조화가 좋다.

팀꼬꼬 파이팅!



6. 관심 속에 안전함

라파스에도 살아보고 꼬로이꼬에도 살아본 결과 꼬로이꼬가 치안이 훨씬 좋다.

조그마한 동네라서 그런지 누군가의 이름을 대면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물론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거의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느낀 꼬로이 꼬는 치안이 좋다.

내가 생각한 남미가 아닌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위험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헬스장에 핸드폰을 잠시 두고 잠깐 한눈팔아도 아무도 내 핸드폰에 관심이 없다. (물론 이러면 안 된다.)

가방 문을 열고 다니고, 지갑을 그냥 손목에 걸고 다녀도 아무도 내 물건에 관심이 없다. (물론 이러면 안 된다.)

라파스에서 살 때도 생각보다 치안이 좋다고 느꼈지만, 가방의 지퍼는 꼭꼭 잠갔고 백팩을 멜 때면 앞으로 매는 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방에 지퍼도 잠그지 않고 편하게 다닌다.

그리고 또 치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늦은 밤과 이른 아침에 밖에 절대 나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을 시각에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어느 지역에 파견되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동양인인 내게 관심이 많다.

이곳에 오는 외국인들은 거의 서양인들이며 나 조차도 우리 봉사단 외에 동양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동양인인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을 자주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 관심과 시선은 악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날 신기해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면 부끄러워한다.

이곳은 순박한 사람들이 가득이다.



7. 주름이 아름다운 사람들

이곳은 꽤 느리게 흘러간다.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은 당연하고 마냥 기다려야 일이 진행될 때도 많다.

그럴 때면 빨리빨리 국가에서 온 나로서는 엄청난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느림이 이곳의 또 다른 장점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유가 가득하다.

이것이 느림의 미학일까.

쫓기듯이 바쁘게 일을 하지 않고 천천히 주변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하며 일을 진행한다.

이들이 여유로운 삶을 살아서 인지 대부분 쉽게 미소를 보여주고 웃음이 많다.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이 있던가.

비록 관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사람 인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나다.

꼬로이꼬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상이 매우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그들의 살아온 인생대로 주름이 지기 마련인데, 다들 인자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도와달라고 하면 외국인이고 봉사자인 것을 알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보이고 대부분 호의적이다.

4개월 전 남미에 대해 가졌던 편견들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들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만 알았고 매일매일이 강도와의 전쟁일 줄만 알았다.

살아보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많지만, 그 관심은 위협적이지 않고 따스하다.

도시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꼬로이꼬, 그 속에는 여유를 머금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8. 지구 반대편의 정

지구 반대편 작은 마을 꼬로이꼬에도 정이 있다.

우리 집 앞 가게 언니, Rosa와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첫인상이 좋아 보이길래 나는 여기 봉사자고 이름은 뭔지 등등 스페인어 연습하는 겸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 무슨 자신감으로 남발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친해지고 싶었다.

그랬더니 만날 때마다 먼저 내 안부를 물어봐준다.

물을 많이 사갈 때면 단수가 됐냐고 물어봐주고 먼저 지역의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날 맞이해 주는 그녀에게 이미 정이 들어 나도 만날 때마다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묻는다.

얼마 전에는 번호도 교환했고 사진도 같이 찍었으며 사적인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Rosa는 내가 꼬로이꼬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연 현지인이며 앞으로의 재밌는 일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수입물건을 많이 취급하는 가게가 있다.

아무래도 내게는 수입물건이 친숙하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어느 날은 포도 이야기를 막 하셔서 포도가 맛있으니 사 먹으라는 영업인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알고 보니 정말 맛있는 포도라며 서비스로 주신 것이다.

짧은 스페인어만 구사할 줄 알았던 나는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바로 경계의 눈빛을 장착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 포도는 정말 맛있었고 감사한 마음에 그 뒤로는 더한 단골이 되었다.


시장의 야채가게 할머니는 항상 기특한 눈빛으로 나를 봐주셨다.

대화도 제대로 나눠본 적 없고 그분에 대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 날은 호박을 서비스로 그냥 주셨다.

할머니의 마음씨를 보여주듯 싱싱하고 빛깔 좋은 호박이었다.

그 할머니는 왜 나에게 자애로운 웃음과 호박을 내어주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사셨는지는 얼굴을 보니 대충 알 것 같았다.

눈가, 입가의 주름은 할머니가 어떤 표정을 주로 지었는지 너무도 쉽게 표가 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분은 어렸을 적부터 웃음과 마음을 베풀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나는 단지 물건 하나를 받는다고 해서 정을 느낀 것이 아니다.

서로의 눈빛과 마음이 동화되어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정이라는 단어를 이 글에 쓸 수 있었다.

그들과 나는 원활한 대화는 되지 않았지만, 외국인인 나에게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와 눈빛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느낀 꼬로이꼬는 상상 이상으로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다.



나는 "꼬로이꼬"라서 건강을 잘 챙기고 있으며 진정한 여유로움을 배우고 있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 속에 나는 무럭무럭 잘 자라는 중이다.

작은 마을만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이미 이곳에 정을 퍼다 나르고 있다.

떠날 때가 된다면 아마 많은 그리움을 남기고 갈 것 같다.

남미에 대한 편견이 산산이 부서지는 여기는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꼬로이꼬다.

2.jpg 꼬로이꼬의 하나 뿐인 헬스장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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