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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집주인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

어쩔 수 없잖아, 잘 지내야지

by 별나

그녀는 나를 화나게 했다가 미안하게 만들고 다시 답답하게 한다.

그러고는 짜증 나게 하며 결국 혼자 전전긍긍하게 한다.


첫 만남은 좋았다.

친절한 인상과 여유로운 제스처 그리고 다 좋다고 괜찮다고 얘기하는 긍정의 언어까지 그녀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이미지는 무너져 내렸다.




바야흐로 4개월 전

나는 살 집을 찾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발품을 팔고 있었다.

이 좁은 마을에 괜찮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살 곳을 찾는 것이 힘든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개발도상국인 볼리비아에 그것도 시골인 꼬로이꼬 내에 괜찮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집이 비어있는 것 같으면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서라도 집주인을 알아냈다.

볼리비아에는 부동산이라는 개념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도시지역은 그래도 꽤 체계가 잡혀있는 듯싶었는데, 시골인 꼬로이꼬에서 체계를 바라기란 무리가 있었다.

에어비엔비에 올라온 집도 한 채가 없고 페이스북에 부동산 광고를 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꼬로이꼬는 아무 검색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돌아다니며 건물 입구에 붙은 임대표시를 보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거나, 비어있는 듯 한 괜찮은 집은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 집주인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만나게 된 우리 집.

첫인상은 '휑하다.'였다.

사람의 온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넓고 파란 집.

집주인이 내가 들어오면 다시 벽 페인트 칠을 해준다고 했기에 하얀색 벽으로 칠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입주를 결정했다.

파란벽은 도저히... 차가운 느낌에 정을 못 붙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늑한 내 공간이 필요했다.

필요한 가구들을 넣어주는 것에 동의했고 수압도 세고 물도 잘 나오니 '이 집이다.' 싶었다.


그렇게 입주 전에 내가 살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놨는지, 약속은 지키고 있는지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 답장이 없었다.

심지어 현지직원의 물음에도 답장이 없었다.

나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일주일 만에 현지 직원에게 다 잘 되고 있고 괜찮다는 답장이 왔다.

고대하던 답장이 왔지만, 나에게만 답장을 해주지 않았던 것은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일까.

나를 못 믿어서일까.

아니면 스페인어를 못해서...?

그렇게 혼자만의 문자를 멈추고 다 괜찮다고 한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니 벽은 파란색 그대로였다.

더러웠던 흔적이 지워진 것을 보니 그 전과 같은 색을 위에 덧칠한 것 같았다.

벽 색깔은 내게 은근히 중요한 것이었는지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약속한 가구를 설치해 주고 있어 감사함을 느꼈다.


집주인은 물건을 사러 나간 지 1시간이 지났고 다른 단원의 집은 입주 첫날부터 아얘 공사 중이라 우리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라면 물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집주인은 동기 단원에게 키를 주고는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30분 후 받은 문자, 여행 중인데 급한 일이 생겨 가야 한다는 것을 통보받았다.

바로 답장을 보냈지만, 그 문자들은 꽤 오랜시간 씹혔다...


덜컹 거리는 화장실 창문에서 샤워하는 것이 밖에서 각도 별로 다 보이는 것을 파견 첫날 확인했다.

잠금장치도 없어 외부인이 침입하기 딱 좋은 구조였다.

커튼도 없어 집안에 훤히 다 보였고 이대로는 위험할 것 같아 호텔살이를 시작했다.

떠돌이생활 청산을 위해서는 마냥 집주인의 답장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집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문자를 보냈고 또 매일이 실실망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화가 났다가 우울했다가 사정이 있겠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렇게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지 못하고 3일째 되는 날 알게 된 집주인의 동생, 아브람.

그는 우리 집 근처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하길 집주인이 주로 거주하는 다른 지역에 홍수가 크게 나서 집이 다 잠겨버렸다고 했다.

뉴스도 보여주며 설명해 주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아무 답장도 없으면 여기서 살기 힘들다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거나, 내가 집에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답장이라도 해달라고 아니면 나가겠다고 그렇게 집주인한테 통보해 놨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인의 급한 성질부터 내보인 게 부끄러웠다.

아브람은 집주인도 힘들 것이라며 기다리라고 내게 당부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나는 번역기의 오류 때문에 일어난 오해임을 깨달았다.

집주인은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기에 그저 여행 중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다른 해석을 불러왔다.

그저 나를 버리고 놀러 간 사람의 이미지를 씌우며 미워했는데, 미안해졌다.


결국 집주인의 동생인 아브람이 우리 집의 커튼을 달아주고 화장실 창문을 용접해 주어 이 집에 살기 시작했다.

아브람한테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표현하며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팩과 믹스커피 과자까지 주었다.

드디어 집에 거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렇게 일주일 이상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집을 위한 생활을 했다.

원래의 집이 거의 공사장 수준으로 흙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가득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집 계약할 때가 돼서야 겨우 만나게 된 집주인.

그날도 오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왜냐하면 계약일은 현지 직원이 꼬로이꼬에 출장을 온 날이었기 때문이다.

집 계약이라는 게 한국에서도 큰 일인데, 나 혼자 낯선 땅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과 집을 계약하는 것은 두려웠다.

하루종일 제 시간 안에 와주기를 기도했다.

결국 집주인은 현지직원이 떠날 때가 돼서야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했고 집계약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 잘 지내고픈 마음에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팩과 믹스커피를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얘기했다.

일이 생겨도 방치하고 매번 무언가를 물어보면 문자에 답장을 안 하는 것도 답답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잘 지내야 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쌓여버린 오해로 미한함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계약서에 싸인을 끝낸 후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 건지 물어봤다.

문자로는 분명 1층에 두면 버린다기에 쓰레기를 전부 1층에 쌓아뒀는데 몇 주째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페트병과 유리 외에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음식물쓰레기까지 함께 버린다.

때문에 그대로 1층에 쓰레기를 둔다면 바퀴벌레가 우리 집까지 올라와 벌레 소굴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쓰레기처리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였다.

집주인의 말로는 아침 6시마다 쓰레기차가 우리 집 앞 길로 지나가니 음악소리가 들리는 차가 지나가면 버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소 번거로운 방식에 귀찮음을 느꼈지만, 다른 대책은 없었다.

그리하여 쓰레기 대장정이 시작됐다.

다음 날 아침 5시 40분에 기상하여 창문을 열고 쓰레기차를 마냥 기다렸다.

하지만 고요하고 해도 안 뜬 검은 거리에는 이른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뿐이었다.

그렇게 첫날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다시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꼬로이꼬에 잘 오지 않으니 정확히 모른다면서 아브람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호언장담하는 말투로 쓰레기에 대해 잘 알려줬었는데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 허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서 아브람 가게에 찾아가 무작정 물어봤는데 쓰레기차는 매일 오며 아침 6시에 골목을 지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 건물 지하에 사는 사람은 또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월, 수, 금만 쓰레기차가 다니니 꼭 그때 버려야 한다는 것.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다 달라 혼동스러웠지만, 일단 다음날 아침에도 이른 기상을 했다.

이번에 나는 창문을 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1층으로 내려가 차가운 공기를 직접 마시며 기다렸다.

해도 다 뜨지 않은 아침이라 무섭웠고 외진 거리었지만, 지금 내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 외에는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는 조용한 거리는 더욱 쓸쓸함을 안겨줬다.


부지런히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던 나는 결국 오픈 준비를 하는 가게 주인에게 물어봤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최종 진실은 우리 집 앞 거리로는 쓰레기차가 지나가지 않고 집이 있는 골목 끝으로 걸어가면 보이는 트럭에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러 걷기 시작했다.

골목 끝으로 가는 길은 유동인구가 많이 없는 외진 골목이며 이른 아침이었기에 많이 무서웠다.

게다가 가는 길에 술인지 마약에 취한 사람인지 모를 눈빛의 남자 3명과 눈이 마주쳤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쓰레기차를 눈으로 확인하고 집에 가려는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해코지를 당할까 별의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식은땀을 숨기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태연한 척 걸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우리 집 1층에는 이사쓰레기들과 음식쓰레기, 온갖 쓰레기들이 섞인 큰 박스가 3개가 날 반겨주었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들고 가기도 무거울뿐더러 취한 사람들까지 있어 안절부절하던 중에 우리 집 건물의 1층에서 가게를 하는 주인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바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가게주인은 차 트렁크에 쓰레기를 모두 싣고 같이 가줬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차를 타고 가다 납치를 당하지는 않을지 온갖 생각들이 들었지만, 친구에게 남의 차 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는 그저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그 두려움을 감수했고 결국 성공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너무도 다행인 그날 아침.

그날 아침을 떠올리면 나는 용감한 머저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 외의 것은 위험하더라도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나.

용감한 머저리 그 자체다.

지금은 그 외진 거리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광장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처리한다.

집주인이 잘 몰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힘들어졌지만, 위기를 극복한 나는 더 성장했을 것이다.

쓰레기차를 기다리며 본 캄캄한 이른 아침


그 뒤로는 6편에서 말한 물 전쟁이 시작됐다.

물이 심각하게 자주 끊겨 해결해주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물탱크가 생겼고 나는 물과의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집주인은 나를 돈으로만 본 것일까?

그렇게 힘들다고 했을 때는 답장조차 없던 그녀가 집을 나간다고 하니 공사를 바로 해주었다.

해준 것에 감사했지만, 인간적으로 그녀에게 실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명백하게 그녀는 나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줄 것은 해주는 그녀다.

그래서 다시 고마워진다.

우리 집은 수납공간이 거의 없는 집이었다.

약 3개월 동안 나는 옷장과 책상, 냉장고 위, 내가 약 8만 원 주고 산 화장대, 그리고 박스들에 내가 가진 소지품들을 넣어야만 했다.

화장대는 웬만하면 안 사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1년 치 화장품들과 소지품들을 수납할 공간이 도저히 없어 거울 달린 수납장을 하나 구매한 것이었다.

꼬로이꼬 가구점에서 약 8만 원 주고 산 화장대 (수납공간이 생겨 신났다.)

물건 정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집에서 3개월을 살았다.

원래 주방에 많은 수납공간을 만들어준다고 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1달 넘게 반복했기에 라면과 같은 음식들을 전부 박스에 넣어놓고 살았다.

드디어 방문한 목수는 주방의 치수를 재갔다.

공사하기로 한 당일, 나는 약속도 잡지 않고 오직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잠수를 탄 것이다.

목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하고 문자를 아무리 연락을 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마냥 미뤄졌고 그동안 답장 하나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2일 뒤에 온다는 목수의 문자.

그마저도 약속시간을 1, 2시간 정도 지나 들이닥친 목수는 2일 내내 6시간씩 힘들게 공사를 마쳤다.

약속시간을 쉽게 어기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열심히 일해주는 모습을 보고 싹 풀렸다.

거주한 지 4개월 차, 박스생활 청산이다.

2일 동안 6시간씩 공사한 끝에 생긴 주방수납장


하나 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관리비가 얼마 나왔는지 알려달라고 해도 2달 치 관리비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물론 다른 지역에 산다지만, 내 윗집이 집주인의 집이고 꼬로이꼬에도 자주 온다.

올 때마다 물어보는데도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결국 알려주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꼬로이꼬에 오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나만 답답하다.


그래도 천천히 해줄 것은 해주기에 밉다가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그녀.

미웠다, 좋았다, 짜증 났다, 감사했다, 답답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앞으로도 집주인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계속되겠지만, 그녀와 잘 지내보고 싶다.

남은 기간,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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