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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Dec 07. 2023

위도일손 為道日損

- 도는 나날이 허상을 버리는 일이다.

#인문학 #노자

노자가 깊이 말하지 않은 것


위도일손 為道日損

- 도는 나날이 허상을 버리는 일이다.


도덕경 이 구절은 노자의 인식론과 가치론의 백미라 할 수가 있다. 동아시아 고대의 최고의 자연 과학자이자 사회과학자라고 할만한 노자였지만, 그가 깊이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인간이 허상을 좇게 되는 이유가 단지 그것이 '멋진' 것이라 선망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 가 있어서다. 우리는 이것을 숙명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자연은 ‘물질 순환 계통’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인간은 이것을 정치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필요한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정치 시스템을 통해 인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늘 불안정한 ‘물질 순환 계통’을 지니고 있다. 평소에는 온갖 권력에 착취당하고, 자연재해나 전쟁이 나면 수많은 사람이 기아와 죽음을 맞았다.


자연은 물질 자원을 스스로 생산하고 자연의 거대한 순환 시스템을 이용해 기계적이며 안정적으로(즉 공정하게) 제공하는 주인의 입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원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고 자연에서 가져와야 하는 피조물이자 객의 입장이다. 또 물질 분배도 자연처럼 차별 없이 공정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없다. 결국 인간 사회와 자연은 ‘물질 순환 계통’에서 숙명적이며 구조적 차이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쫓는 '허상'은 사실상 ‘물질 순환 계통’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이다. 이것은 물질 자원으로 생존하는 인간의 숙명이다. 이 과정에서 허상과 환상이 생긴다. 그러나 이 진실을 직면한다면 방법은 있다. ‘물질 순환 계통’을 잘 발달 된 기술적 수단으로 구축하여 사회적 합의로 안정시키는 일이다.


인간의 역사는 많은 부분 ‘물질 순환 계통’을 안정시키기 위해 분투한 역사였다. 역사는 이것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구성 방법을 몰라 비싼 수업료를 내어온 것이다. 우리가 문제를 바르게 정의할 수만 있다면 그 가운데 이미 답은 있다. 21세기의 인간 사회는 이 모두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진전을 이루어 온 것이다.


아마도 노자 시대의 중원은 낮은 인구 밀도와 넓고 비옥한 중원 평야의 생산량 덕으로 ‘물질 순환 계통’을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할 정도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처럼 물질 자원을 두고 다툼이 커질 정도의 결정적 상황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사상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유한계급' 층이 선호했으므로 그들의 취향에 맞춰 편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민감한 부분이라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최소화했을 수도 있다.


유일하게 확인되는 부분은 12장의 '성인은 배(실체, 본질)를 위하지 눈(명분, 현상)을 위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 순환 계통’의 안정성과 공정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노자가 이 근본적인 문제를 부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다. 사실 이는 노자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간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도덕경이 추구한 '근본’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동서 인문학이 줄곧 비켜온 ‘본질’일 수가 있다. 오랜 직무유기일 수가 있다 여기서 ‘물질 순환 계통’의 안정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정치 경제와 사회 생태 원리를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하여도 될 것이다.

역사는 '자연 생태’를 떠난 인간이 문명을 일구어 스스로 ’인공 생태’를 꾸리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오늘도 진행하고 있는 인간 문명의 홀로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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