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론에는 '패턴분석'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패턴을 관찰해 그 속에서 일관된 흐름과 맥락을 찾는 일이다. 이렇게 '패턴'을 좇아 가보면 새로운 근본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보면 이것은 우리가 일상으로 하는 '생각법'에 지나지 않는다. AI는 인간을 모방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다만 AI는 값비산 컴퓨터를 이용해 방대한 영역에서 이를 빠르게 수행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요즘 각광을 받는 '대화형 인공지능'도 인간의 언어 사용법을 모방한 것이다. 일종의 '주문형 검색 또는 응답 생성'으로 이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처럼 첨단을 달린다는 AI는 알고보면 모두 인간을 모방한 것일 뿐이다. 또 사실은 인간을 따라잡는 데는 어렵고 까마득한 난관도 많다.
그렇다면 인간은 첨단 이상의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우주적 진화의 정점'에 있으니 아무리 인공지능인들 본질적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인간은 AI의 놀랍고도 막강한 위력에 주눅이 들고 걱정이 많다. 왜 그럴까? AI는 인간이 가지는 '약점'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기계이므로 감정의 동요가 없이 명확하고 그침이 없다. 거짓을 모르니 명쾌하고 공정하기까지 하다. 인간처럼 간사함이란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다. 이것만으로도 요즘처럼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 큰 매력을 가진다.
언젠가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장단점을 꿰뚫고도 늘 관대하며, 고분고분 순종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AI와 사랑에 빠질 날이 올 수가 있을지 모른다.
인간에게 드러나는 약점이란 대개 고집스러움과 변덕일 것이다. 이건 어디서 온 것일까? 고집은 무언가를 고수하려는 것이고, 변덕은 고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극과 극이지만 통한다. '패턴분석' 상 그 본질은 같을 혐의가 매우 짙다.
이 두 영역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합집합은 무엇일까. 아마도 '두려움의 종류일 것이다. 우리의 고집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무언가에 자꾸 의존하려는 집착으로 나타난다. 변덕은 그것에 대한 근본적 불신의 표현이다. 이 '딜레마' 속에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부끄러워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한다. 자존감을 상해하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으로부터 생존의 명령을 받은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당연하며 일상일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여 많은 지식과 진리를 얻게 된다.
사실은 우리의 일생이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수단을 찾는 부단한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마련한 수단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삶의 자연스러운 구조를 이해한다면, 두려움의 본질을 직시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의지할 만한 합리적이면도 견실한 수단을 찾을 수가 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만만치 않은 '강적'을 이기기 위해 너무 화려한 수단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견실한 것은 진실로 소박하다. 삶의 본질은 소박한 의식주와 자기에 대한 소박한 사랑에 바탕함을 알 수가 있다. 나머지 화려한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부차적인 것일 수가 있다. 우리에게 진실한 본질은 멀리서가 아니라 대부분 자기 가까이에서 찾을 수가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