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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

by Jason Ryoo 류구현

#민주주의 #파시즘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


파시즘은 권력 지향적 전체주의로 이해된다. 파시즘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발견하고 주장한 정치 이념이다. 오늘날도 파시즘은 극우 전체주의로 살아 있어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우리는 내면화되어 있는 경향성을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는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여 사회 속에 자리 잡은 학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의지해 자기 재생산을 계속한다. 파시즘은 시대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해 온 것이다. 그러면 그 실체는 무엇인가?


파시즘은 그 아류로 나치즘과 극우와 심지어 극좌까지도 포괄하는 근본적 속성을 가진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가진 약점을 집요하게 호소하며 공략한다. 인간의 약점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이 "권력 지향적 전체주의"는 우리 내면에 이미 친숙한 모습으로 있음을 발견한다.

파시즘은 서구적 낯선 개념이지만, 우리 내면에서도 크든 작든 자리 잡은 권력 지향과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전통문화에서 유교의 가부장적 가족 주의에도 발견되는 요소들이다.


현대 자유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이미 패배자로 사라졌다고 봤던 극우 파시즘이 좀비처럼 부활하고 있는 것은 최근 세계적 추세다. 파시즘은 권위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적 특징을 가진다. 여기에 민족 국가주의가 강화된 것이 히틀러의 나치즘이었다. 더 나아가 반공주의, 극우와 극좌 지향이라는 정치적 전체주의 굴레를 추가한다. 특히 극좌가 지닌 개인의 자율성과 역량 차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와 도덕적 해이도 함께 주목하는 것이다. 이들은 통칭해 전체주의적 파시즘 신드롬이라 부를 수가 있다. 이것을 권력 지향적 전체주의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권력 의존적 전체주의'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존성과 전체주의의 깊은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파시즘의 본질은 인간의 근본 속성인 '의존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문명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권력에 오래 침식당해, 왜소화된 주관성과 이에 따라 약화한 주체 정신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나 마찬가지다. 삶의 주체로 굳건히 홀로 서지 못한 결과이다. 성적에 의지해 줄을 세우는 교육 제도와 성과에 의지해 자신과 남을 평가했던 취약한 사회의식의 결과였다. "소유"에 의지해 가치의 정점인 "인간"을 보지 못한 가치관 상실이 가져온 필연이었다.


우리 민주주의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존엄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개인의 주체적 주관을 존중하는 가운데 건강한 개인주의가 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는 차원 높은 공동체의 연대를 이루게 된다. 개인이 성장하여야 공동체가 성장한다. 공동체가 성숙하여야 개인이 성숙한다. 우리 역사는 이 어려운 명제에 대한 도전이자 기록이었다.


* 비유,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 :

글의 핵심 주제인 개인의 주체성과 자립 정신은 불교의 "자등명 법등명"과 같은 메시지를 공유한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스스로의 등불을 밝히라"는 가르침은 외부 권력이나 집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과 진리로 삶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다.

자등명 법등명은 동반자이다. 다만, 자등명을 위한 법등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등명을 위한 자등명, 법등명을 위한 법등명은 더 명백한 집착일 뿐이다.


추신 : 파시즘은 단지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극단적 이념의 양극이 결국 동일한 억압과 권력 숭배로 수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비판적 사고와 자율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래픽은 서울대 장문석 교수의 책 표지에서 따왔다. 그의 관점에 공감하며, 여기서는 파시즘과 인간 본질과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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