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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Jan 20. 2023

원리적 앎이란?

원리적 앎 Causal cognition

원리적 앎이란?


원리적 앎은 사실과 함께 원리를 같이 인식하는 방법이다. 세상은 ‘원리’와 그로 비롯된 ‘현상’으로 되어 있다는 전제이다. 하나 또는 몇 개의 원리에서 수없이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는 구조다. 원리와 현상은 ‘인과관계 causality’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원리를 알면 현상이 설명되고 현상을 관찰하면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원리적 앎 causal cognition'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현상적 지식과 정보만이 아니라 그 속에 흐르는 '원리'를 함께 봄으로써, 대상을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며 진실에 긴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우리는 본래 이런 방식으로 앎을 얻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또 바쁘다는 이유로 정답만 찾고 현상만 보기 쉽다. 그래서 '원리적 앎'이란 사실은 본래의 앎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우리는 본질적 원리를 얻음으로써 비슷한 다양한 현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인식을 확장할 수가 있다. 또 진부화되기 쉬운 지식과 정보에 기대는 불완전한 앎이 아니라, 원리에 바탕하는 근본적 앎을 얻게 된다.


지식과 정보는 계속 쌓여 무거워지지만, 원리는 본래 가벼워 쌓일수록 앎은 커지고 섬세해지며 밝아진다. 또 원리적 앎은 '원리의 원리'를 알게 함으로 근본적 앎에 이르는 힘을 준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는 앎의 '전략'은 자명한 것이 된다.

우리는 대개 자신이 만든 ‘관념’의 울타리에 자기를 가두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관념의 내용은 지식과 정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것은 앎의 편이를 제공하지만, 진부화되어 선입관과 편견으로 작용하기도 쉽다.


이들이 우리의 마음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한 진실이 들어 올 공간은 작아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진실과 진리로부터 소외되기가 쉽다. 이렇게 작아진 인식 세계로는 정보의 홍수와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를 헤쳐나가기는 원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보화 시대는 '지식과 정보' 중심의 앎을 '원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또 현실은 피할 수 없이 그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는 중이다. 본래의 우리의 앎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적 앎'을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상식적 앎의 지침이 있다.


1. 진실은 입체다.


먼저, 입체적으로 대상을 보는 일이다.


남산의 서쪽에 있는 사람은

남산은 해가 뜨는 산이다

남산의 동쪽에 있는 사람은

남산은 해가 지는 산이다

남산의 동서남북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다른 남산을 가지고 있다


진짜 남산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남산들의 합이다

이것이 우리가 나와 다른 남산을

본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배척한다


2.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현상에는 그만한 이유 reason가 있다. 현상과 함께 그 이유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복잡하게 보이는 현상도 간단하게 이해된다. 이유란 인과 원리 causality다. 현상은 원리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3. 전체를 본다


입체로 보면 원리를 알게 되고, 원리를 알게 되면 입체로 보게 된다. 그래서 전체를 균형 있게 알게 된다. 전체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임을 알게 된다.

진리는 전체다

Das Wahre ist das Ganze

- 헤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개별 대상을 보는 미시적 앎의 방법이었면, 다음은 전체를 보는 거시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앎은 이 두 방법으로 완성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앎은 세계라는 큰 ‘진리체계’를 쫓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나의 인식체계로 진리체계를 쫓아가는 방식이다. 우리의 앎은 이 두 체계를 가깝게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가 있다. 이 두 체계가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삶은 풍부해지고 윤택해지며 편리해진다. 때로 복잡하고 난해한 우리 삶은 이렇게도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5)는 진리체계를 절대진리인 수학의 ‘공리체계 system of axiom’로 이해하여 세계를 성명하려 했다. 이것이 근대 과학 철학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있더라도,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로또처럼 ‘한방의 기적’을 바라지만 그런 기적은 환상 속에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최고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노력 못지않게 이것을 뒷받침하는 성실한 태도를 줄곧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계속)


#메타인문학1.0

#아포리즘Cafe

#why와what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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