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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Feb 15. 2023

앎의 두 방법


#인문 #뇌과학 #인식론 #불교


앎의 두 방법


직관과 논리

우리가 앎을 얻는 방법은 크게 2 가지인데 직관과 논리이다. 직관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진 다섯 채널의 '오감'을 바탕으로 빠르고 총체적 인식을 얻는 장점이 있지만, 논리적 검증이 어려운 단점을 가진다. 그리고  '논리'는 특정 부분에 관해 논리적 정확성이 가지는 장점이 있지만, 부분적 인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본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우리는 익숙하거나 편한 쪽으로 치우치기가 쉽다. 이미 길들여진 습관 때문이다. 우리에겐 이 둘의 장단점을 이해하여 장점을 살려서 균형 잡힌 앎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직관은 선천적으로 얻는 '자연원리적 앎'이라 할 수 있다. 논리는 주로 후천적 경험과 학습으로 얻어지는 앎이다. 바람직한 앎은 자연원리적 '직관'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균형을 이루고, '논리'로 검증된 정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우리가 다양한 경험 속에서 조화로운 지혜를 얻고, 체계적 인식을 쌓으며,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종합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은 인위적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운영된다. 무성한 인위적 논리는 본래의 건강한 자연원리적 직관을 손상시키거나 상처 주기가 쉽다. 심지어 논리에 자연원리적 직관이 압도당하고 위축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기서 앎의 토대가 뒤바뀌어 인간의 존엄보다 소유를 앞세우는 가치의식의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이 물질문명이 만드는 근원적인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삶은 앎에서 시작하여 앎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균형되고 협력적이어야 할 직관과 논리의 대립을 두고 이미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경험론과 합리론

이 논의는 일찍이 서구의 철학에서 있었다. 근대에 와서는 직관적 앎에 주목한 경험론자인 존 로크 John Locke와, 논리에 주목한 합리론자인 데카르트 René Descartes의 주장이 그것이다. 칸트 Kant는 이 둘을 종합하여 '순수이성'이라는 개념으로 서구 인식론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그의 관념론을 완성한다.  우리는 오감으로 직관한 '경험' 자료를 바탕으로, 선천적인 자연 원리적 '논리'로 그리는 '관념'으로 앎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통氣通과 이치통理致通
또 이것은 서구보다 200년 이상 앞서 우리의 전통 (유교) 사상에서도 논의되었다. 직관을 '기통'으로 논리를 '이치통'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기통은 오감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 앎이다. 이것은 '몸'에서 태생적으로 일어난다고 보아 기통氣通이다. 이치통은 지성의 작용인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논리적 앎이다.
이 둘은 서구에서와 같이 서로 자기가 앎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근대 조선 시대를 관통했던 '이기론理氣論'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혹자는 조선 시대를 '철학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율곡 이이는 '기통氣通'을 보다 근본으로 보았다. 율곡의 견해가 이 논쟁의 학문적 결론으로 모아졌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理'를 앞세운 성리학이 정치를 주도했고 자연원리적 진리에 반했던 조선은 결국 망국을 맞는다. 이것이 '앎의 역사'였다.

돈오頓悟와 점오漸悟 
'마음의 과학'이라 할 수 있는 불교에서도 이 이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떻게 진리세계에 도달하느냐의 중요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돈오'는 단박에 깨닫는 직관적 앎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선禪 불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인식이다. '점오'는 마음공부와 경經의 공부를 바탕으로 얻는 점진적인 깨달음이다. 이것이 일반 대중이 가지는 생활 속의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도 논쟁 끝에 직관적 앎인 '돈오頓悟'를 깨달음의 근본으로 삼게 된다. 성철 스님의 견해도 이를 뒷받침한다.

뇌과학 brain science
이처럼 우리의 인식은 중심 된 사유 과정을 살펴 설명될 수가 있다. 또 최근 생물학적 기반의 '뇌과학  brain science'에서는 인식의 물리적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하고 있다. 뇌과학은 한 때 우리가 뇌 기능을 좌. 우로 나누어, 우뇌가 직관과 감성능력을, 좌뇌가 논리와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편견을 극복하게 했다. 뇌의 기능은 좌우로 도식화해 특정하기 어려우며, 좌. 우의 뇌는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직관과 논리의 종합
직관과 논리는 서로 협력해 앎을 완성한다. 장점을 살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다만 선. 후 관계는 있다고 보아진다. 직관은 생물학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훨씬 오래 동안 진화한 인식의 원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직관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눈앞의 이익과 '논리'에 현혹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우리의 균형을 잡아 준다. 우리에겐 자연원리적인 직관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공감 empathy 또는 동감 sympathy라고 말해지는 '자연 원리적 직관'은 우리의 공통된 인식 바탕이자 소통의 토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관의 많은 부분을 감성이나 감정, 느낌, 기분 등으로 아는 것은 오감이 전해주는 종합적 정보를 분해하지 않은 채, 총체로 이해하는 불분명성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 같은 감성과 정서 역시 자연 원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해석이 가능함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직관과 논리의 종합을 이끌어낼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온전한 앎을 누리며 조화롭고 섬세한 감성을 즐길 수가 있다.
특히 자기와의 대화와 성찰 그리고 명상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다음 말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 정서는 자연적 사건들이다.
모든 자연적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나며, 그 법칙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
-스피노자




그림/ 메타 인문학 1.0p.12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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