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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Mar 19. 2023

Why와 What의 역사 10. 문자의 탄생


#역사 #인문 #언어


Why와 What의 역사

문명의 진화


10. 문자의 탄생


문자는 시각화된 언어이다. 이것은 인간의 말이나 생각과는 달리 인간으로부터 독립한 객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스스로 독립된 기록자가 되고 미디어가 되어 시공을 넘나드는 전달자가 된다. 언어는 진실을 모사하므로 진리를 따르는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언어는 진리의 '그림자'이다. 


진리가 소박하듯이 언어도 본래 소박하다. 진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이를 표현하는 언어 또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것은 우리가 어릴 때 언어를 쉽게 습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옛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상들을 구분한 뒤, 각각에 그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대상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하여,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세계에다 자기의 언어로 하나씩 담았을 것이다.


또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상징적 이름표를 하나씩 붙이게 되는데, 이것이 문자였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서 문명을 전파하고 복제하고 창조하는 주역이 된다. 그리하여 문자는 문명의 원자原子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필요의 산물이다. 문자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받는 효율적 소통의 수단이 되자 그 효용성을 안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면서 더욱 쉬운 개념과 논리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문자는 마침내 소통과 협력의 필수적 수단이 되었다. 
언어의 핵심 구조와 기능은 '논리 logic'에 있다. 언어 기능은 진실을 알기 쉽게 논리의 틀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인 ' logos'와 상통한다. 언어를 뜻하는 'languge'의 어원도 이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현대의 컴퓨터 언어들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컴퓨터 언어가 만든 소프트웨어들이 오늘날의 첨단 기술 문명을 창조하고 운영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문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것의 놀라운 능력을 놓치지 않은 것은 권력이었다. 권력은 자기들의 힘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유력한 도구로 문자를 활용했다. 문자가 국가 경영에 중요한 수단이 됨을 알고 문자를 정비하고 보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문자 사용에 개방적이었던 나라는 흥했고, 문자를 권력층의 독점물로 삼았을 뿐 대중화를 이루지 못한 나라는 사라져 갔다. 이런 의미에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한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IT 강국이자 문화 강국인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역사시대의 시작
문자를 갖게 되자 인간은 기억과 마음속에서만 존재했던 정보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머리와 가슴속에서 꺼내어 들여다보고 만져보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문자는 스스로 손발을 갖추고 날개까지 달게 되어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날게 된 것이다.
인간이 문자를 안 뒤에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전파하는 일이 것이다. 또한 생활의 필요에 따라 사실을 기록하거나, 권력의 요구에 따라 문자를 활용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문자는 신神과 인간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이 말씀 Logos은 신神의 뜻과 인간의 생각이 미치는 모든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게 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역사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문자는 BC 2,300년 전후 청동기시대에 현 이라크 남부지역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에서 발명된 '설형문자'였다.  설형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길가메시 Epic of Gilgamesh' 서사시이다. 이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남부 도시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 Gilgaméš의 영웅적 모험을 노래한 것이었다.

그들은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통해 왕을 찬양하고 권력의 권위를 대중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이처럼 권력은 문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세계에 그들에게 유리한 권위와 유호적 관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문자는 역사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함께 기록했다. 인간의 영광과 실패를 함께 그렸다. 

문자는 사람들의 '약속'이다. 생각과 정보를 담는 공동의 그릇 ware이다. 문자 체계의 완성은 대규모 사회의 성립과 함께 공동의 약속을 규율하는 '권력'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록했던 역사서는 그리스의 헤로도토스(BC약 484~425년)가 BC430년 전후에 쓴 '역사 History'와, 중국의 한나라 무제 때 사마천(BC145~BC86년 경)이 BC91년 경 완성한 사기史記로 각기 동서양의 최고最古의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에게 불의 사용이 하드웨어적 '빅뱅'이었다면 문자의 사용은 소프트웨어적인 빅뱅이었다.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물리적 도구인 하드웨어적 진화와 더불어 마침내 소프트웨어라는 도구로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소프트웨어라는 근원적 도구를 만들어 하드웨어를 움직이고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문자는 상징인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나타내어야 하는 불완전한 도구이다.  가령 '책 book'이라는 보편적 언어로는 책의 다양한 유형을 모두 포섭할 수가 없다. 요즈음은 '이북 ebook'도 있으니 전통적 개념의 책이란 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언어와 문자가 지닌 근본적 한계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적 책의 개념에 쉽게 의존하고 다양한 특수성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앞서 습득한 '부분'에 의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선입견' 또는 '편견'이라 부른다. 그래서 인간은 그가 만든 불완전한 문자의 울타리에 뜻하지 않게 갇히게 된다. 


원리적 앎 causal cognition, 지식에서 원리로

세상을 마음에 담으려 익힌 문자가 자신을 가두게 된 것이다. 우리는 글과 책, 관념과 지식, 생각과 사상에 의존하고 구속되기 쉽니다. 언어와 문자에 가려서 오히려 본질과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안다고 착각할 뿐 진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앎은 제자리에 맴돌기가 일쑤다. 문자에 너무 의존하면 생각을 게을리하기 쉽다. 가짜 뉴스는 이러한 허점을 파고들어 진실을 호도하고 감춘다.
최고의 앎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앎에 대한 정의는 이렇듯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이 근본적 문제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

먼저 말과 글이 가지는 물리적 한계를 충분히 알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레거시 legacy' 미디어인 문자와 책과 방송과 풍문의 권위에 쉽게 굴복하거나 진실을 빼앗기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본연의 '직관'을 회복하고 단련하는 일이다. 일방적 세뇌와 암기식 교육에 길들여져 허약하게 된, 자신의 태생적 직관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지식을 좇아서는 끝이 없는 길이 있을 뿐이다. 지식 의존적 앎에서 '원리적 앎'으로 앎의 방식을 전환하는 일이다. 지식 중심의 앎을 원리 중심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형 데이터에서 진실을 찾는 비능률과 낭비를 늘 현재형인 '원리적 앎'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진부해진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

-메타인문학 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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