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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Jul 22. 2023

4차 산업혁명의 기회

#인문 #역사 #4차산업혁명


Why와 What의 역사

- 역사의 비전을 찾아


4차 산업혁명의 기회


21세기에도 약탈적인 자본주의 체제와 억압적인 전체주의 체제 간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 두 '주의'는 모두 물질적 소유를 앞세우는 관념적 이데올로기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체제에도 너무 닮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성의 근본적 소외다. 그 대표 주자는 오늘날의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만든 관념이라는 허상에 자주 얽매인다. 일종의 자가발전이다. 심하면 자기 합리화와 자기도취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최대한의 소유'를 목표로, 전체주의 체제는 '최소한의 소유'를 목표로 했다. 이러한 면에서 전자는 사실상 가해자로, 후자는 피해자로 이해될 수가 있다. 그래서 후자는 동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동정에 의지했기에 계속 실패했다.


문제의 본질은 '최대한의 소유 - 탐욕'을 충동하고 지원하는 상업주의 사회의 시장적 메커니즘에 있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시장적 척도로 평가하는 문화적 도덕적 '빈천함'이다. 인간이 가진 안일함이 만든 굴레다. 이것은 감각과 판단의 부족을 뜻한다. 물질문명이 마비시켜 놓은 무디고 왜곡된 자기 각성이다.

삶의 궁극적 책무는 결국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사회적 책무 또한 개인의 각성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데서 찾을 수가 있다. 각성할 틈과 여유를 빼앗아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메랑이 되어 사회에 되돌아온다. 사회의 수준은 구성원의 수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 존립과 발전 역량은 구성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점점 뚜렷해진다. 독일과 북유럽 등의 정치 선진국들은 이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들이 채용한 방법론은 시민들의 철저한 정치적 각성과 현대 문명의 총화인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의 활용이다. 우리에게도 처절할 만큼 압축된 정치적 각성이 쌓여 왔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창조적 기술들은 이미 새로운 기회의 블루 오션을 열고 있지 않는가?


우리에겐 때로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있다. 물질 문명의 부작용은 이를 강화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은 기술로 대응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고민하여 노력할 일은 문명의 도구를 온전히 다룰 줄 아는 '주인'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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