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찐낭만 김강만

평소보다 버스에 사람이 없다. 비좁은 자리에 낑겨 앉은 사람들이 없다. 오늘은 기필코 창가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찍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을 때도 자리는 텅텅 비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는 삼삼오오 게임을 하는 남자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혼자 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은 너무 피곤했다.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때에도 나는 비틀어진 자세로 자고 있었다. 앉는 것과 눕는 것 사이의 불편한 대각선을 느끼며 몸을 가장 편하게 기댈 방법을 찾았다. 창가 쪽에 앉으면 머리를 옆으로 기댈 수 있지만 왼쪽 팔이 벽에 끼고 만다. 편하게 가눌 수 없는 왼쪽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어깨가 뭉쳤다.


마음 같아선 복도에 두터운 패딩을 깔아두고 눕고 싶다. 불편한 근육이 잠을 깨울 때마다 나는 앞자리에 앉은 사람을 봤다. 머리 위로 얹은 헤드셋이 보이다가 어느새 뒤통수가 사라졌다. 몸을 당겨서 앞자리를 봤을 때 그는 누워있었다. 다리를 접고 오른쪽 좌석에 머리를 눕혔다. 나도 곧장 따라 했다. 느슨하던 안전벨트가 옆구리를 조였다. 다리를 펼 수도 없고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상황. 다시 자세를 고져 앉았다. 내 앞자리에 누운 남자도 과연 편할까? 아마 그도 나름의 사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차 뒷좌석이 좋았다. 다리를 펴고 한쪽 팔을 접어 머리로 깔고 누웠다. 태동처럼 흔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잠에 들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뒷좌석에 타셨다. 그의 허벅지 위에 누우면 그것 역시 푹신했다. 배와 허벅지 사이의 접히는 틈 사이로 나는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리 얼굴을 들이밀고 뒤집어 봐도 찢어지지 않는 아늑한 틈이었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 10살까지 이사를 9,10번을 다녔으니 나는 1년에 한 번꼴로 집을 옮겨 다녔다. 때문에 우리 집에는 침대가 없었다. 두꺼운 이불을 안방 안에 깔아두고 가족 모두가 그 위에서 잤다. 나와 동생은 방 문에서 멀리 떨어진 벽 쪽에 누워 자는 것을 좋아했다. 베란다와 가장 가까운 벽에 누우면 찬 바람이 얇은 벽을 뚫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가장 추운 자리에서 자는 나와 동생을 말렸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자리가 좋았다. 동생도 같은 이유로 그 자리를 좋아했을 것이다.


너무 차가운 벽 때문에 어머니는 내 몸집만 한 베개를 벽에 붙이셨다. 그럼 나는 딱딱한 벽 대신 푹신한 베개에 몸을 파묻었다. 일부로 베개에 몸을 파묻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그 푹신함은 찢어지지 않았고 나는 아늑한 우주 속으로 떨어졌다. 자기 전에 씻으면 피부의 신경이 예민해졌다. 반바지와 반팔 사이로 삐져나온 팔 다리는 시원한 이불에 쓸릴 때마다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몸을 시원한 이불에 한참을 문질렀다. 이불이 따듯해지면 시시한 일로 돌아갔지만, 대부분 그전에 잠에 들었다. 나를 푹신한 어둠 속으로 데리고 가려는 그 야릇한 졸음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버스 왼쪽 창가에는 불편한 턱이 있다. 왼쪽 팔꿈치를 아슬아슬하게 올릴 수 있는 턱이다. 팔을 올려둘 수도 없고 팔꿈치만 잠시 기댈 수 있는 턱이 싫다. 옆으로 떨어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딱딱한 유리창을 천장에 매달린 망치로 깨고 싶다. 몸에 힘을 빼고 푹신한 자궁 속으로 떨어지고 싶다. 잠에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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