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시작

feat 푸른 바람을 기다려

by 찐낭만 김강만




- 푸른 바람이 너를 기다려-를 읽고 나서 2025 07 29 20:03




19살은 정직하게 찾아왔다. 미러 두었던 숙제를 언젠가는 해야 하듯이 나는 3월부터 진로 고민을 시작했다. 19살이 되고 나서 부랴부랴 시작한 진로 고민은 어색했다. 나의 학교생활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 좋은 날에는 공을 차러 나갔던 내가 쉽게 발을 떼지 못했고, 방학이면 놀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쉽게 승낙하지 못했다. 다들 무엇인가 시작하는 시기에 나는 망설이기만 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와 같은 평범한 질문은 졸업을 앞둔 나에게는 날카로웠다. 나는 그 날카로운 질문에 매일 찔렸다. 선생님을 찾아가고 조언을 들으면서 그 질문을 포용하고 싶었다. 나는 그 질문의 해답을 갈망했다.


여름 방학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 나는 학원을 등록하러 서울로 갔다. 속전속결로 학원을 등록했다. "졸업 이후에도 글쓰기를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려진 결론일 수 있겠다. 진로를 고민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학원을 등록하는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가 아닐까? 요 며칠 내가 한 고민이다.


갑자기 농담을 줄여버린 친구, 기숙사 공부방에서 더 이상 떠들지 않는 친구, 이른 아침부터 교과서를 피기 시작한 친구.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전까지의 여유와 나름의 재미를 자신들의 인생에서 잠시 청산한 것처럼 보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친구들의 태도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내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포용하기 위해, 늦추지 않기 위해, 어쩌면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내려졌다. 그리고 학원을 등록했다. 평생을 여유 부리며 살아온 내가 속전속결로 진로를 결정하고 학원을 등록한 것은 내 인생의 이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또 하나의 밀려버린 숙제를 다급히 해치우는, 게으른 인생의 표본을 나 스스로에게 보이는 듯했다.


문창과라는 결론이 났다. 마음이 편해졌다. 남은 별무리 생활 동안 내가 해야 될 공부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시비를 건다. 내가 내린 결론과 결정한 사항들이 오직 불안감에 근거하여 탄생된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쁘게 보지 않기로 했다. 하나님에게 내 결정을 말씀드리고 그의 답변을 경험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나님께 나의 길을 묻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민만 하고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 어떤 길이든 나아가면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목사님의 말을 떠올렸다.


'푸른 바람이 너를 기다려'는 대한민국 고3들에게 나팔을 분다. "실패해도 되는 나라가 있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어" 나는 하루아침에 입시생이 됐다. 입시생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수시생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가는 길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다. 이 길은 푸른 바람의 나라와 반대편에 서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친구들을 볼 때 희망을 느낀다. 좁은 눈동자를 가지고서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다. 트랙 위에서도 노래가 되는 음표들이 있다. 푸른 바람의 나라의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할지라도 트랙 위에서도 그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친구들을 본다. 새로 들어선 이 길은 빠르고 낯설다. 풍경을 보기 힘든 길이다. 그래도 이 길 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1주일이 됐지만 나는 구역질 나는 꿈을 꾼다. 이름 높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꿈, 대학교 풀 네임도 잘 모르는 그곳의 가죽 잠바를 걸치는 꿈. 나는 숙제를 미루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이러한 역겨운 상상을 한다. 인생에서 피해야 하는 사람 1순위. 그게 바로 나다. 상상만 하는 사람. 노력하지 않고 매일 밤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 엎친 데 격친 격으로 망각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이러한 소름 끼치는 망상을 나도 모르게 시작하면 하나님에게 119를 친다. 세상 꼭대기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 사람들 위에 서서 군림하고, 겉으로는 겸손을 떠는 사람. 세상 높이 올라가서 태초의 동산에 발을 딛고 다시 사과를 따먹을 상상을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푸른 바람이 제시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이번 연도 3월부터 알고 지냈지만 나는 심각한 망각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순간, 쓰지 않는 순간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길 소망합니다.


즐거운 노예,

뿌리 뽑히는 나무,

그 나라의 시민권을 목에 걸고 사는 사람


그렇게 살길 원합니다.


아, 지금도 안개가 차오릅니다.

글을 완성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사과나무로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갑니다.

불편한 뿌듯함, 악마의 신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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