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인간

by 백오

선악은 뒤집혀왔다.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없었다. 선악의 세계는 진동해왔다. 인간은 전복되어왔다.


그러나 사람의 본능은, 언제나 제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선악을 믿으며, 선의 무리에 파묻히는 한편 악의 무리를 혐오한다.


선악은 뒤집혀왔다. 뒤집힘은 언제 이루어졌는가? 공동체에 퇴폐의 분위기가 감돌 때였다. 그때마다 선은 악이 되고 악은 선이 되었다. 또한 선의 일부가 악에 귀의하였고, 악의 일부가 선에 귀의하였다.


선악이 뒤집힐 때, 사람들은 피를 흘렸다. 그들은 매몰되었다.


총기가 사라진 눈은 충혈되어 증오가 핏줄을 타고 감돌았고, 최악일 때의 인간이 자랑스레 스스로를 드러냈다.


그들은 투명성을 저버렸다. 참을 수 없는 거부감에 눈은 스스로 백내장에 걸려버렸고, 귀는 스스로 난청을 일으켰다. 이제 그들이 믿을 것은 자신의 정신세계. 그 밖의 물리계는 정신이 씌운 멍에에 질려 달아나버렸다.


그러나 선악에 머리를 묻고 투명성을 저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어째서 정신을 믿는 것인가? 정신 속의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니다. 그 안의 어떤 것도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눈 앞의 세상을 보라. 정말로 존재하는 그 사물들, 물리계의 견고한 고정됨을 보라. 정신세계란 단지 물리계로부터 갈라져나와 각자에게 주어진 부유물일 뿐이다. 그 안의 고정됨은 부유물 위에서만 참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 혹은 사는 동안 무언가를 믿어야만 한다. 이는 사람에게 주어진 틀이자 토대이다. 그러나 그 틀에 얼마나 충실히 맞춰지느냐는 개인의 손에 달려있다. 믿어야만 할지라도, 믿음의 정도를 조절할 키는 인간의 본래성이 아닌 개체의 운동성에 달려있다.


그 키를 쥐고 우리는 과학과 종교의 사이를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전복-전복-전복-전복---의 끊임없는 순환은 단 한 번의 초월적인 전복으로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선악의 철폐와 실재성을 향한 관조로서 인간은 타자화와 계도주의를 탈피하여 공동체를 바라보는 개인이 될 것이다. 그로써 집단에 종속되어버린 인간의 불행은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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