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망친 곳
3.
졸업 후, 나는 언어치료사로 지역 복지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소속 언어치료사는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경력을 쌓은 후 내 센터를 차리는 계획도 있었다. 나의 상상 속 미래는 밝았고, 그때까지 나는 티 없이 맑았고 꾸밈없이 명랑했다.
첫 면접을 봤던 복지관에서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다른 곳에 면접을 보지 말라며 넌지시 합격을 알려주었다.
순조로운 직장 생활이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환자를 담당했고 가끔 있는 까다로운 케이스들에서는 배제되었다. 관장님의 지시 사항이었다. 이따금 동원되는 봉사활동 지원이나 야근에서도 막내라는 이유로 빠지곤 했다. 관장님은 나에게 친절했다. 가끔은 과하다는 느낌을 나 역시 느낄 정도로.
겨울이었던 어느날, 다섯 시면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은 여섯 시만 되어도 깊어졌다. 가로등 없는 복지관 운동장을 잰걸음으로 걸어 나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켜진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눈이 부셨다. 관장님의 차였다.
“지금 퇴근해요?”
“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나가는 길인데 태워 줄까요?”
“괜찮아요. 바로 앞에서 버스 타면 한 번에 가요.”
실례가 될까봐가 아니라 정말 그것이 더 편했다. 조용히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날씨도 추운데. 그러지 말고 타요.”
시계를 보았다. 지금 걸어나가면 버스 시간에 딱 맞게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타요.”
관장님이 재촉했다. 버스정류장과 관장님을 번갈아 보던 나는 검은 세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00역까지만 태워다 주시면 감사드릴게요”
목적지를 묻지 않는 관장에게 가까운 역 이름을 댔다. 관장은 대답없이 차를 몰았다.
“요즘 일하는 건 어때요?”
“네, 좋아요. 다들 잘해주셔서……”
“저는 힘들어요.”
관장 말을 시작했다. 그 내용은 뜻밖의 것들이었다. 그는 최근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며, 상실과 우울로 시작한 이야기는 불행한 부부관계까지 이어졌고 그사이 차는 내가 말한 역을 지나치고 있었다.
“관장님, 여기서 걸어가면 돼요. 내려주세요.”
“어디서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매우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친구가 죽었다며, 아내가 집을 떠났다며, 그것을 막내 직원인 나에게 털어놓는 관장에게 말하지 못했다. 차는 이미 시내를 벗어나 있었다. 관장은 인적이 없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요즘 내가 힘드네요.”
그의 말 내용은 한탄이었지만, 뜻밖에 그의 손은 내 무릎에 닿아있었다. 얼어버린 상태에서 관장의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자동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달렸다. 수치심보다 먼저 들었던 것은 공포였다.
다음 날 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했다. 예정된 언어치료 환자들과의 세션을 마치고 연말 결산으로 바쁜 행정 업무도 도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리고 약 반 년 후, 나는 복지관을 그만두었다. 공식적인 퇴사 사유는 결혼이었다. 결혼이 퇴사의 사유가 되었던 것은 이민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직장을 구한 남편을 따라 이민을 떠났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도망치는 것이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은, 나는 더 이상 친절한 사람도, 친절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