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7. 도망, 그로부터

7. 도망, 그로부터

by lee

7.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불면. 그것은 익숙하고도 불편한 동거인이었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밤에 드린 어둠보다 마음에 드린 어둠 때문에.

거실 깊숙이 붉은 노을이 잔잔한 푸른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요동쳤다. 이글대는 너울처럼 격렬한 감정들에 괴로워했다. 그것은 후회도 아니었고 슬픔도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괴롭다는 것 외에는.

밤새 잠 못 이루다 새벽이 드리우면, 그제서야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면 위에 함부로 던진 돌이 마침내 바닥에 가라앉은 것처럼.

지쳐간다는 것은 천천히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잠식하는 것이었다.


“피곤해 보이네요.”


빨간 눈으로 출근한 아침마다 그는 커피를 들고 내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커피보다 카모마일 티를 좋아했지만.

출근하지 않은 척 문을 잠궈 둔 날엔 커피를 담은 봉투를 걸어놓았다. 나중에 문을 열고 커피 봉투를 챙기다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친 날도 있다. 민망해 하는 나를 보면서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서운한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내 마음이 파도 같다면, 그는 호수 같았다.


“정말 좋아해요.”


정 선생님과 처음 밤을 보내던 날, 그는 마치 여자를 처음 안는 사람처럼 떨었다. 떠는 손끝으로 얼굴을 쓰다듬는 그에게 먼저 입을 맞춘 것 역시 나였다.

그와의 만남은 순조로웠다. 설렘이나 떨림은 없었지만, 착한 사람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있었다. 동료로서 그는 착한 사람이지만, 남자친구로서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카페보다 공원 벤치를 좋아했다. 한낮의 해가 가라앉고 갑자기 찾아온 짙은 하늘과 공기를 좋아했다. 항상 먼저 와 나를 기다리는 그의 손에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귤청 에이드 등이 들려있었다. 얼음이 녹을까 가방을 위에 음료 두 잔을 올려놓은 그의 모습이 안쓰럽고 고마워 그의 모습이 보이면 뛰어갔다.


“뛰지 말아요. 넘어질까 봐 걱정돼요.”


벤치 앉아 누가 들을까 걱정도 없이, 누가 들어도 상관없을 이야기들을 끝없이 주절거렸다. 그리고 선선해진 여름 공기를 맡으며 나란히 공원을 산책했다.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았다. 아니, 이런 것을 좋아했었던 나를, 그를 통해 새삼 발견했다.

가끔은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운전을 못 하는 나에게 두 시간이 거리는 먼 곳이었지만, 운전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가까운 곳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없다는 나를 태우고 속리산과 월악산, 비슬산을 찾았다. 올챙이 국수를 먹어 본 적 없다는 말에 곧바로 강원도로 나를 데려 간 것도 그였다.

이제 나는 집 안에 드리우는 이글거리는 석양을 바라보지 않았다.


“주말에 뭐할까요?”

“글쎄요.”

“지영 씨, 영화 좋아해요?”

“예전엔 자주 봤었는데.”

“어떤 영화 좋아하는데요?”

“무서운 영화요.”

“무서운 영화요?”


뜻밖이라는 반응. 그의 되물음에서 수혁이 떠올랐다.


“너는 왜 공포영화만 봐?”


수혁이 물은 적이 있었다. 감상적인 그에게 공포영화는 취향이 아니었기에.


“공포영화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

“막 썰고 피나고 그러는 게?”

“응. 그런 거 보고 나면 리프레쉬 되는 기분이야.”

“변태네.”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정선생 앞에서 그를 떠올리는 것에 작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예전엔 공포영화 자주 봤었는데, 요즘은 안 본지 꽤 됐어요.”

“잘됐다. 우리 그럼 영화 보러가요. 제가 예매해 둘게요.”


‘처음’, 처음이 아닐지라도 새로운 것을 경험시켜 주고 싶어하는 것이 그였다. 영화관 데이트.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의 영화관이었다.
주말 영화관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름이 끝나는 계절에 맞추어 계절 특수를 노리는 외국 공포영화와 개학에 맞추어 어린이들을 겨냥한 가족영화들이 대거 개봉했기 때문이다.


“팝콘 사야죠?”

“줄이 너무 길어요. 그냥 가요.”

“그래도 영화 볼 때 손이 심심할걸요. 화장실이라도 다녀오세요. 상영관 앞에서 만나요.”


그도 나도 간식을 즐겨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영화와 팝콘이라는, 구색을 갖추어 주려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내 손에 티켓을 쥐어주고는 사람들 사이에 묻혀버렸다. 군중 속에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화관 대부분은 거의 20대들이었다. 사랑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더니, 커플들과 친구 사이는 금방 표가 났다. 이제 갓 스물이 넘어 보이는 어린 커플들이 서로 바라보는 눈길에서 빛이 났다. 그저 무엇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생기로운 어린 연인들의 모습이란.


‘저 커플들에게 정선생과 나는 어떻게 보일까? 데이트 나온 부부? 아니면 늦게 만난 아저씨 아줌마? 불륜처럼 보이진 않겠지?’


뒤에서 누군가 톡톡 어깨를 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수혁이 서 있었다.


“선배?”


놀란만큼이나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인지, 돌아보는 주변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나와 상반될 정도로 수혁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이런 데서 다 보네.”

“네, 영화 보러 왔어요.”


대답을 한 후에야 그것이 바보 같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에서 만난 사람에게 영화를 보러 왔다는 설명이. 낯선 상황과 낯선 만남이었다. 수혁과의 재회를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기대한 적도 없었기 때문일까? 이 당혹감은.


“나는 가족이랑 왔어.”


그가 말했다.


‘가족?’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아이가 있다는 것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만남에, 동행을 묻지도 않은 상황에서 굳이 가족의 존재를 먼저 알리는 것이 어색하게 들렸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가족이랑 있을 때 아는 척 할까봐 걱정한 걸까.’


그는 밤을 보낸 이후, 정확히 그 다음 날 일 분이 채 되지 않는 통화 이후, 우리는 연락이 없었다.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주친다 해도 구태여 나를 불러 세워 인사할 만큼 친밀하지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가족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저도 남자친구하고 왔어요.”


빠르게 머리를 굴린 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나 역시 굳이 남자친구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뱉을 때 나의 목적은 분명했다. 선을 긋고자 하는.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남자친구가 있구나.”


그가 말했다. 조금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보다 시선을 끈 것은 안경 너머 찡그리는 그의 눈이었다. 그의 습관이었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 나오는.


“네,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그를 뒤에 뒤고 앞을 향해 걸었다. 그곳이 상영관 쪽이 아니라 출구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영화관 바깥, 한 여름의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그는 보았을 것이다. 남자친구를 찾는다며 영화관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을. 그때 주머니 속 전화벨이 울렸다. 정 선생님이었다.


“지영 씨, 어디세요?”

“아……상영관을 못 찾아서요.”

“어디 신데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저 그러니까,,, 여기가,,, 영화관 밖이에요.”

“네?”


입출구가 같은 영화관 앞은 안쪽보다 더 붐볐다. 나는 한쪽 구석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체구가 큰 정 선생님은 쉽게 눈에 띄었다.


“왜 여기 와있어요?”

“제가 길을 잘 못 찾아서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정 선생님의 표정이 흔들렸다.


“미안한데, 오늘 영화 안 보면 안될까요?”

“네?”


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수혁과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남자친구랑 왔어요, 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정 선생님과 함께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몸통만 한 팝콘을 들고 있는 내 앞의 사람에게 얼마나 실례되는 말인지 알면서도.


“무슨 일 있어요?”


정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의 팔에 안긴 팝콘을 대신 들고 밖으로 나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날 이후, 정 선생님은 이렇다 말이 없었다. 그날의 일을 묻지도 않았고, 화를 내거나 이별을 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닝커피를 가져다 주는 일도, 퇴근 길 숨어서 나를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다.

모든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받아들여야 했다. 제대로 대처했다면, 그러니까 수혁 선배에게 심플하게 인사하고 상영관으로 갔다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이었다. 요 앞에서 예전 선배를 만났다며, 신기한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수혁에게 이제 다시 보지 말자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 했을 수도 있다. 그 대신 내가 취한 행동은 회피였다.


‘도망가자.’


그것은 나의 방어기제였다. 불편한 사실을 눈감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마치 없는 일 인양 최면을 거는 것.

아이들의 숨바꼭질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꼭꼭 숨은 양 서 있는. 알고 있다. ‘도통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라고 속아주는 것은 길어야 여섯 살까지라는 것을.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을 때면, 여전히 잠시 눈을 감고 그것이 사라진 양 숨어버리고 싶었다. 언젠가는 더 커진 존재로 맞닥뜨려야 할 지라도.


‘그건 좀 너답지 않네.’


이혼을 이야기 했을 때 수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9시 업무 시간을 기다리던 중, 조용하던 휴대폰에 문자 알림이 울렸다. 카톡도 아니고 문자라니, 광고문자이겠거니 생각하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켜지 않아도 미리 보기로 문자 내용이 읽혔다.


‘시간될 때 전화 줘.’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휴대폰에 저장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반말을 쓸만한 사람.

외국 생활 동안 한국 지인들과는 연락을 끊었었고, 돌아오고 난 후에도 좁고 얕은 관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시간될 때 전화 줘.

권수혁.’


나는 휴대폰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 놓았다.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대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완강한 거부는 거부하지 못할 것에 대한 의미 없는 저항이라는 것을. 급하지 않은 서류 작업들을 시작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자꾸만 그가 떠올랐다.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생각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수건으로 덮어놓은 생쥐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며 숨쉬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듯 최면을 거는 것처럼.


‘혹시 전화라도 하지 않을까?’

‘전화가 온다고 해도 받지 않을 거야.’


나의 상상은 이미 생기지도 않은 일에 혼자 마음에 벽을 세우는 것에까지 발전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것을 아닌 척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갈망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일까, 아니면 허기일까?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저 욕망하는 것일까?

명확한 것은 하나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것.


“여보세요.”


수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굵은 목소리.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창 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틀리기만 하던 일기예보도 맞는 날은 있다. 번번이 비 소식에 우산을 챙길 때마다 무겁게 그대로 들고 오는 날이 잦아 우산을 챙기지 않은 터였다.


“지영이구나.”

“……”

“끊지마.”

“……할 말 있으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어요.”

“만나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싫어요.”


마침내 꺼낸 대답이었다. ,네, 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것은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쉬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일까. 하룻밤 상대처럼 쉽게 쓰고 버리더니, 이제 좋은 연애를 시작하는 듯 보이니 연락하는 그가 괘씸해서일까?

문득 그를 거절해야 하는 이유들 중, 정 선생님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답은 정해졌다. 그를 거절해야 하는 이유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그 떨림이 스스로에게도 느껴져 휴대폰을 바로 쥐었다. 떨림. 몰아치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 무어라 말하면 그 떨리는 입술이 전해질 듯하여 말할 수도 없었다.


“만나자.”


수혁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대답 대신 전화를 끊었다. 약하게 숨이 찼다. 흐트러진 호흡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원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욕구의 충족인지, 추억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이 있었다. 나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

이전 06화치유 6.목덜미에 짠 땀이 흐를 듯한 팔월이었다